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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on May 09. 2018

어리석을만치 사랑했던 때.

<Like Crazy>


제이콥과 애나는 분명히 사랑했다. 사랑했고 사랑했다. 그들이 어떻게 사랑했는지,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시간과 공간을 넘어섰는지, 그들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은 무엇이었노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들이 불필요할만큼. 그들은 어리석을만치 서로를 사랑했다. 과연 사랑인가 싶었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사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만큼. 그만큼 순수하고 충실한 사랑이기도 했다. 


실수였다. 그렇게 미친듯이 사랑한 나머지 그들은 이성을 잊었다. 잠시 떨어져야 했을 때도 떨어지지 않았다. 서로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한 행동이 되려 그들을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무작정이기도 했다. 그래도 어느 때까지는 절절했으나, 그 절절함을 덜어내기 위해 또 몇 번의 실수를 저질렀다. 그렇게 점점 멀어졌다. 그즈음 그들은 처음 저질렀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들은 마치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서로의 거리를 좁혔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남은 건 사랑이 완전히 가시기 전 남은 여운이었다. 가까이 있으나 완전히 떨어지게 됐다. 그들은 서로를 안았지만 서로에게 눈을 두지 않는다. 어리석을만치 사랑했던 때,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기억은 샤워실에 가득 서린 김처럼 어렴풋하며 그 따뜻함도 이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광호의 <사랑의 미래> 중에 이런 글이 있다. “두 가지 종류의 연인들이 있다. 너무 일찍 만난 연인들과 너무 늦게 만난 연인들. 너무 일찍 만난 연인들은 자신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도 못한 채, 5월의 달콤한 공기 속을 둥둥 떠다니다가 왜 헤어지는지도 모르는 채 헤어질 것이다. 너무 늦게 만난 연인들은 이제야 자신의 원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이에, 그것을 얻기에 그들은 너무 무기력하고 지쳤으며 세상은 두려운 곳이라고 여길 것이다.” 아마 제이콥과 애나는 너무 일찍 만난 연인이자 너무 늦게 만난 연인이지 않을까. 그들은 사랑을 주체하지 못했고, 그것만이 전부인 줄 알았으며,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았을 때는 더이상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됐을 테니. 그러니 사랑으로 만난 어떤 인연들은 결국 사랑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겠지. 사랑은 결코 단일한 무언가로 정의내릴 수는 없겠지. 


 

사랑이 어려운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즉 유한한 존재로서 나는 영원함을 믿는 것이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어떤 것들은 오랜 시간 남아있을 수 있겠지만 결코 불멸하는 존재들이 있을까.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시대에, 그러니까 진리는 없다고 여기지는 시대에, 나는 사랑은 여전히 진리와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 두렵다. 그래서 누군가는 하나의 사랑을 거부한다. 사랑은 독점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내가 사랑을 무너뜨리고 싶은 건 아니다. 그들 역시 사랑을 믿지 못하면서 절절하게 사랑을 원하는 게 아닐까. 사랑만큼은 영원했으면 한다. 사랑 자체는 영원하지 않아도, 우리가 사랑을 영원처럼 생각하는 사실만큼은 영원했으면 한다. 다 안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고, 알면서 모른 척하는 것이, 모르는 것이 우습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다소 성겨보이는 그들의 사랑을 의심할 여지는 충분했으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선연했을 사랑에 지독시리 충실했던 그들을 어리숙하다고 해서 흠을 짚어내고 싶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상투적인 사랑이 부러웠다. 요컨대, 나는 사랑을 믿는다. 아마 결코 설명할 수 없을 어떤 이유들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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