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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이 Jan 30. 2021

1. 화학적 유산

난임일기

3월, 결혼식을 한 달여 앞두고 우리 부부는 신혼집에 입주했다. 결혼식 준비와 이사, 살림 장만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정의 연속이었지만 우리 부부는 이것에 더해 3번의 집들이까지 성공적으로 해냈다. 게다가 결혼식을 앞두고 점점 예민해지는 성격으로 인해 자잘한 피부 트러블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했고, 매일이 피곤했지만 이런 혹독한 일정에 당연히 따라오는 훈장이라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가끔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추위를 느끼기도 했지만 꽃샘추위라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문득 나의 생리 예정일이 어느새 지나갔음을 깨닫게 되었다.



무지렁이의 첫 임신테스트기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약국에서 임신테스트기를 사들고 와 화장실 변기에 앉았다. 조용히 화장실에 앉아 설명서를 읽고 설명서에서 시키는 대로 테스트를 한 뒤, 설명서에서 알려준 시간만큼 기다렸다. 결과는 한 줄. 임신 확률이 현저히 낮은 상황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기에 '역시 임신이 쉬운 게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슴 한구석에 서운함이 남았다. 서운한 마음에 한 번 두 번 더 살펴봤지만 누가 봐도 한 줄짜리였기에 나의 첫 임신테스트기는 그렇게 휴지통에 버려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분리수거하는 날을 맞아 한데 모아놓은 플라스틱과 비닐을 분리하다 문득 임신테스트기의 겉면이 플라스틱이었던 것이 생각났다. 당시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철저한 분리수거로 환경보호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휴지통을 열어 버렸던 임신테스트기를 꺼내 플라스틱을 분리하려는 순간, 희미하게 추가되어 있는 한 줄. 가슴이 철렁 앉음과 동시에 나는 다급히 남편을 불렀다.

 

"몇 줄 같아!?"

"두 줄... 근데 너무 희미하지 않아? 불량 같은데? 설명서 다시 읽어봐"

"..... 측정시간이 지나면 부정확할 수 있다네?"

"그렇지? 임신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이렇게 무지렁이 부부는 첫 임신테스트기를 플라스틱과 일반쓰레기로 분해해 버리고 그대로 잊어버렸다. 그때 우리 부부는 분리수거는 참 잘했지만 임신에는 너무나도 무지했다.



화학적 유산


그로부터 이틀 뒤, 생리가 시작되었다. 평소에도 생리통이 있는 편이라 진통제 두 알을 미리 복용했다. 그런데도 스멀스멀 느껴지는 생리통이 심상치 않았다. 진통제를 먹었는데도 점점 아랫배가 어마어마한 고통과 함께 뒤틀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사무실에 앉아있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긴급히 화장실로 대피했다. 조금 기다리면 괜찮아지겠지 싶어 아랫배를 부여잡고 한참을 앉아있었지만 사그라지지 않는 고통에 아무래도 큰일이 난 것 같아 산부인과로 향했다.


"정자와 난자가 유전적으로 약해서 벌어지는 일이니 자책하지 마세요"


결국 정자와 난자가 만나긴 했지만 착상을 못해서 그런 거라는 온화한 의사 선생님의 위로를 들으며 감사했지만 정자와 난자가 대체 어떻게 만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부터 잘 준비하면 곧 임신될 거예요. 오신 길에 산전 검사하시고 엽산 받아 가세요"


멍한 상태로 피를 뽑고 기다리는 동안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인터넷에 검색을 했다. 자고로 젊은 세대라면 유튜브에 검색을 한다는데 나는 각종 검색창에 '착상실패' '임신테스트기 희미한 두줄' 등등 생각나는 대로 검색어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화학적 유산' 사람들은 나의 상황을 이렇게 말했고 이건 정말 존재하는 일이었다. "엄마가 되려면 엽산을 꼭 먹어야 해요" 온화한 간호사 선생님이 손에 쥐어주신 무료 엽산과 강력한 진통제 처방전을 들고 나오면서도 나는 이 상황이 그저 멍할 뿐이었다.



이렇게 된 거 아이를 빨리 낳자


화학적 유산은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정자와 난자의 유전적 결함이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산'이라는 단어는 한참 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처음에는 멍했던 정신이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내 탓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채워나가 졌다. 사실 남편은 괜찮은 줄 알았다. 워낙 속마음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냥 괜찮겠거니 생각하고 그 마음을 바라보려 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저 나만 우울하고 나만 힘들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한동안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그날의 이야기가 흘러나왔을 때, '내 탓인 것 같아'라며 눈물짓던 남편의 모습을 보며 미안했고, 이렇게 가족이 되어가는구나 싶었고, 우리 부부를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우리 부부는 딩크도 아니고 아이를 확실히 낳겠다는 것도 아닌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채 애매모호하게 있어왔다. 각각 장단점이 있기에 어쩌면 생기면 낳고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사건은 우리 부부가 아이를 원하고 있다는 것은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자녀계획을 앞당기자는 결론에 다 달았다.


'왜 화학적 유산이 되었을까'


머릿속을 맴돌던 그 질문에 나는 나의 무지도 한몫을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임신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임신을 도와준다는 두유와 포도와 쑥즙을 먹기 시작했고, 하루에 만보씩 걷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래도 정자와 난자가 만나긴 했으니 임신이 금방 될 거야'라고 생각하며 나의 인생은 임신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갔다. 그런데 임신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생기면 낳고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은 굉장히 오만한 것이었으며, 자녀계획은 내가 앞당긴다고 앞당겨지는 것이 아니었음을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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