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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용운 Sep 24. 2022

최고가 되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2017.10.5 서호주 퍼스 킹스파크에서


 엄마! 며칠 전 내가 퇴사하고 여행 갈 거라고 선언했지. 엄마는 이제 그런 내가 익숙해 보였어. 엄마는 나한테 여행 갔다 와서 뭐할 거냐고 물었어. 나는 개원할 거라고 대답했어. 엄마는 습관적으로 말했어. 최고가 되어야 살아남는다고. 어릴 때부터 무수히 들었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고 싶은 얘기가 있어.



 나 누군가를 해한 적이 있어. 공중보건의 마지막 연차의 어느 늦여름 날이었어. 어깨 인대 파열 때문에 수술한 지 2~3달 정도 지났는데 어깨가 갑자기 다시 많이 아파서 온 할머니였어. 나는 그분의 목과 어깨 관절 주위에 침을 놓고 주변 근육을 압박해서 마사지해줬어. 엄마가 어깨 아프다고 할 때마다 내가 늘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다음 날 할머니가 다시 찾아왔어. 어젯밤부터 숨 쉬기가 힘들고 머리가 어지럽다 했어. 느낌이 좋지 않았어. 나는 인근 병원으로 가서 흉부 X-ray 촬영을 해보라고 했고 할머니는 기흉 진단을 받았어. 할머니가 당황하며 나에게 연락했고 나는 할머니에게 상급병원에 가서 처치를 받으라고 알려주었어. 빨리 조치를 취해서 그런지 수술 없이 산소치료 5일 후 할머니는 퇴원했어. 그날의 치료 장면을 수 만 번 복기했어. 지금도 이해가 가질 않아. 해부학적으로 폐에 문제가 될만한 위치와 깊이에 침을 놓지 않았어. 너무 센 압력으로 어깨 주위를 눌러서 그랬을까. 그 후로 몇 달 동안 료를 할 수 없었고 도망치는 마음으로 10월에 호주에 갔다 왔어. 돌아와서는 의료분쟁조정위원회가 열렸어. 나는 그 당시 진료기록부와 반박 논문 한 무더기를 가져갔지만 흉부외과 의사의 진단서 한 장에 내 과실은 이미 결론난 상태였어. 배상보험을 들어놓지 않아서 보건소 측에서 치료비와 위자료를 부담해야 했지.



 엄마가 보기에 나는 항상 챙겨줘야 하는 막내지만, 밖에서의 나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잘 훈련된 사람이야. 뭐든지 열심히 해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지. 보건소에서도 없는 일을 만들어서 했고 손님들과 직원들은 그런 나를  좋아했어. 나를 구세주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어. 보건소장은 여태껏 일하면서 공중보건의에 대한 불만 민원은 많이 들어봤지만 칭찬 민원은 처음 들어봤다고 했어. 그렇게 신임받던 내가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절망적이고 수치스러웠어. 담당 주사님은 기관에 속해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했어. 지금은 그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그 당시 그 말은 나를 너무나 초라하게 만들었어. 조정위원회가 열릴 때 대기하고 있는 다른 의사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들 지친 모습이 곧 미래의 내 모습 같았어. 내가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고 의욕이 꺾였어.


 호주에 가기 전,  가까운 한방정신과 임상 교수님들에게 상담을 요청했어.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분들 모두 가장 먼저 자신들 크고 작은 사고 경험을 고백하셨어. 그분들은 내 현재 감정과 내가 지금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봐주셨어. 무너진 상태 속에서도 힘이 되어주는 것을 상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추후에는 이 사건이 앞으로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도 생각해보라고 하셨어.



 호주 여행은 몇 달간 초하고 긴장되어 있던 나를 진정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었어. 현지인들 이방인인 나에 친근하게 대해주었고 자연은 말없이 나의 로움을 품어주었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밤, 킹스 파크라는 공원 언덕에 올랐어.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야. 도시의 야경을 보고 있자니 현실 복귀에 대한 두려움과 좌절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괴로움이 내 눈에서 쏟아져 내렸어. 



 엄마! 어때. 최악이지? 사건은 일단락됐고 나는 다시 진료를 할 수 있게 됐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치료 행위를 할 때마다 항상 불안하고 긴장돼. 난 최고가 될 수 없고 최고가 뭔지도 모르겠고 최고에 관심도 없어. 일단 열중해보고, 실패하고, 고, 타인에게 도움을 받고, 자아 수용을 반복하면서 나는 날카로운 강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 이제 에게는 잠깐이라도 나와 주변을 돌아보는 일 더 중요해. 나는 누군가에게 최고인 삶이 아니라 나에게 최선인 삶을 살 거야. 다행히도 나는 도망칠 수 있는 기회와 자유가 있었어. 이제는 고통스러운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잠시라도 탈피와 성찰의 기쁨을 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


2022.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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