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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용운 Sep 27. 2022

빨리 죽어야 한다고 말했던 할머니께

2018.2.2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피라미드 위에서

할머니! 잘 지내셔? 난 할머니 생각하면 할머니가 맨날 '내가 죽어야지' 소리 했던 것 밖에 떠오르지 않아. 그러면 뒤에서 엄마는 '노인네 맨날 죽고 싶다면서 주는 밥은 틀니 끼고 꼬박꼬박 한 그릇 다 먹는다' 흉봤지. 그러게 엄마한테 잘 좀 하지 그랬어. 나 멕시코 여행 가서 할머니가 죽고 싶다는 말 완전 뻥인 거 몸소 알았잖아.



 멕시코 공항에서 테오티우아칸이라는 유적지에 가는 길이었어. 거기에 엄청 큰 피라미드가 있거든. 택시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옆 차선에 있던 차량이 우리 차 앞뒤를 막아섰어. 우리 차는 멈췄지. 그런데 앞뒤 차에서 갑자기 장총을 든 사람들이 내리는 거야. 강도인가. 여행 첫날 타지에서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 것인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처음 느껴봤어. 내가 죽으면 우리 가족은 어떡하나 생각했어. 죽고 싶지 않았어. 장총을 맨 사람 하나가 창문을 열라고 했어. 우리에게 여권을 달라고 했어. 여권을 꽉 잡고 있었는데 자기가 경찰이래. 무슨 경찰이 사복 입고 장총을 들고 있어. 그 사람은 우리 여권을 확인하고는 기사 보고 택시에서 내리라고 했어. 30분 정도 지났나. 기사는 다시 택시에 탔어. 떨고 있었지. 도대체 무슨 일이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말이 통했어야지. 아무튼 나도 예전에 죽고 싶다는 말 많이 했었는데 그 뒤로 그 말 전혀 안 하잖아. 할머니도 임종 직전에 의식이 없긴 했지만 많이 무서웠을 거야.



 어쨌든 굳은 몸을 이끌고 유적지에 도착했어. 이 피라미드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래. 옛날 원주민들이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살아있는 인간을 죽여 그 피를 밑으로 흘려보냈다는 말이 있어.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 유적지 전경을 봤어. 피라미드 앞에는 인간 제물이 피라미드까지 걸어왔다고 전해지는 '죽은 자의 길'이 나있었어. 희생양이 된 사람들의 심정은 얼마나 비참했을까.



 할머니! 이번 추석 때 차례를 지내는데 상에 할머니 밥 놓을 자리가 부족하더라고. 할머니 다른 아들들은 오지도 않고 말이야. 엄마는 맨날 더 이상 못한다 하면서 이번에도 음식 준비를 다했고 아빠는 이제 절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어. 엄마는 이제 제사 없애버리자 하고 아빠는 내심 내가 당신과 조상들의 영혼을 기려주길 바라는 눈치였어. 실제로 이번에 차례를 지내지 않은 집이 많은 것 같아. 옛날엔 의례 했던 것이지만 요즘은 달라. 가부장적인 풍습 속에서 여성들은 희생양이 되었고 우린 그 고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더욱 이 의식에 거부감이 있는건지 모르겠어. 공포를 딛고 죽음을 맞이한 이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건 의미있는 일이지만 그 방식은 산 사람의 뜻대로, 희생 없이 치러져야 할 거야. 조만간 다시 멕시코에 가 볼 정이야. 3일 동안 전국적으로 죽은 이를 기리는 '죽은 자의 날' 축제가 열린대. 멕시코인의 전통이긴 하지만 거기서 뭔가 배울 점이 있을 것 같아. 할머니도 멕시코에 올 수 있다면 꽃길 타고 내려와.



202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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