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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용운 Sep 18. 2022

어쩌다 맡게 된 프로젝트에 괴로워했던 J씨에게

2017.10.3 피나클스 국립공원에서

 안녕하세요. J씨! 요즘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모르겠네요. J씨는 그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한 프로젝트의 책임자로서 임무를 막 끝내고 도망치듯 친언니가 살고 있는 호주로 떠나왔다고 했어요. 앞에 나서기보단 묻어가기 좋아하는 성격인데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데다가 중소규모의 일 많은 회사에 다니다 보니 하는 수 없이 중요 직책을 자꾸 맡게 된다고 했어요. 프로젝트를 맡으면 방향대로 팀원들을 이끌어가고 팀원들에게 업무를 배분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어요. 자꾸 팀원들의 눈치를 보게 되고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대부분의 일을 자신이 처리하게 된다고 했어요. 이번 프로젝트를 끝으로 퇴사하려고 했는데 회사에서 붙잡아 특별 휴가를 받은 것이라고 했죠.



 J씨! 저한테는 J씨와 같이 했던 2박 3일 여정이 일종의 프로젝트였어요. 서호주에 가기 전 한국에서 정보를 검색하다 보니 서쪽 해안 도로를 따라가면 바다, 사막, 숲 등의 다양한 지형과 국립공원들이 많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혼자 차를 빌리기엔 비용이 너무 비쌌어요. 그래서 동행할 사람을 모집하기 위해 서호주 커뮤니티 카페에 글을 올렸어요. 서호주를 여행하는 사람 많이 없어서 카페 구성원은 대부분 워킹홀리데이 중인 사람이거나 교민이었죠. 다행히도 J씨와 워킹홀리데이 중인 M씨가 모였어요. 동선도 제가 다 짰. 그 당시 운전이 매우 서투른 데다가 호주에선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도로 체계도 한국과는 좌우 반대였어요. 조금 무서웠지만 일정을 포기할 순 없었어요.



 운전을 하는데 자꾸 차가 왼쪽으로 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내비게이션을 봐도 길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회전 교차로가 많았는데 역주행도 한두 번인가 했죠. 그때 많이 무서우셨죠. 그래도 몇 시간 지나니 운전에 조금씩 적응했던 것 같아요. 강과 바다가 만나 신비한 물색을 내는 무어 리버에 갔어요. 하얀색 모래로 이루어진 란셀린 사막에 가서 샌드보드도 타고 모래 촉감도 느껴봤죠. 사막이란 장소를 처음 경험해봤어요. 날이 어두워져서 모닥불이 있는 아늑한 숙소에 묵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죠. 그다음 날엔 노란 땅과 바람에 깎인 바위, 란 하늘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 피나클스 국립공원에 갔어요. 그다음 들른 행오버 베이는 제가 여태껏 여행하면서 본 바다 중 가장 물이 맑은 곳이었어요. 얀쳅 국립공원에선 자고 있는 코알라와 열심히 풀을 뜯는 캥거루를 봤죠. 마지막 날엔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있는 클리프턴 호수와 와이너리, 초콜릿 공장을 돌았죠.



 제가 동행을 모집했고 일정을 제시했기 때문에 사실 신경이 많이 쓰였어요. 운전할 때도 긴장을 많이 했고 장소 간 이동시간이 길기 때문에 시간 분배를 잘해야 했어요. 장소마다 각자의 선호도 고려해야 했어요. 예정된 일정과는 다르게 포기해야 하는 장소도 있었고 장소 간의 순서를 변경해야 하는 경우도 생겼죠. 오래 있고 싶었지만 빠르게 지나간 장소도 있었고 잠깐 머물러도 될 것 같은 곳에서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쓴 경우도 있었어요. 모두가 만족할만한 여행이었으면 했어요. 사람을 모으고 어떤 목표를 제시해서 과정을 이끌어나가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에요. 내가 리더이긴 하지만 나도 처음 하는 일이고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도 다 다르니까요. 낯선 것이기에 시행착오 많죠. 그래서 나를 더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어쨌든 기준은 내가 세우는 것이고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나의 선호, 능력을 충분히 알아야 취할 것, 감수할 것, 포기할 것이 정해지니까요.



 J씨! 같이 했던 여행이 어떤 인상을 남겼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2박 3일 여행이 굉장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낯선 경험의 연속이었기에 발견했던 것이 많아요. 그리고 저는 그 감상을 공유하는 걸 좋아해요. 구성원과의 상호작용도 즐기는 편이죠. 나에 대해 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J씨는 지금쯤 크고 작은 일을 책임져 나가면서 조금 더 자연스럽고 나다운 삶을 살고 계시겠죠. 



202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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