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용운 Sep 08. 2022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준 S에게

2017.10.1 서호주 로트네스트 섬에서


 안녕 S야! 오늘도 너는 서툰 아이들과 부대끼고 학부모의 연락에 시달리고 쏟아지는 행정 업무에 짓눌리고 있겠지.



 서호주 여행 중에 로트네스트 섬에 간 적이 있어. 이곳에서만 사는 쿼카라는 동물을 보러 가는 것이 목적이었어. 쿼카 말고도 섬 자체의 지형이나 해변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지. 섬을 구경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어. 관광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버스는 자유도가 너무 떨어졌어. 버스 시간에 맞춰서 구경해야 하니까. 하는 수없이 자전거를 선택했어. 너에게 처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후로 2년 만에 타보는 거였어.



 다른 친구들은 보통 어릴 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것 같던데 나는 그러지 못했어. 나도 필요성을 못 느꼈고 가족들도 바빴고. 너에게 처음 배운 거야. 처음엔 안장에 앉는 것조차 어려웠어. 중심 잡기가 어려웠고 방향 조절이 힘들었어. 1시간 정도 자전거와 씨름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잘 탈 수 있게 되었어. 뒤를 안 잡아줘도 잘 갈 수 있게 된 나를 보며 한껏 기뻐하 너의 표정이 아직도 생각나.



  어쨌든 섬에서 자전거를 다시 타게 되었어. 처음엔 비틀거렸지만 곧 적응해서 섬 구경을 했어. 길은 잘 닦여 있었고 햇빛은 따뜻했고 바다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어. 자전거 타기 딱 좋은 날씨였어. 구경하는 도중 길가에서 쿼카를 만나 같이 사진도 찍고 쿼카에게 풀도 먹여줬어. 해변으로 가서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일광욕도 했지. 자전거에 기대어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너에게 연락하려고 핸드폰을 보는데, 그 찰나에 갈매기가 내 샌드위치를 잡아채 갔던 기억도 나. 네가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없었을 소중한 순간이야.



 S야! 낯선 무언가를 배우고 성공할 때의 뿌듯한 느낌이 그리운 요즘이야. 계속해서 실패하고 힘들어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옆에서 격려해주는 사람이 그리운 요즘이야. 이제는 더 이상 실패해서는 안되고 누군가의 성장과 성공을 도와주어야 하는 입장이 되어가는 것 같아. 부담스러운 일이지. 너도 이런 종류의 압박감 시달리겠지. 그런데 학습의 성패는 결국 사람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아. 조력자의 지지가 단단할수록 학습효과는 빠르고 강하지. 설령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하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생겨. 네가 나를 지지해 주었기에 내가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것처럼. 항상 그랬듯이 아이들을 사랑으로 지지해주면 그들은 힘들거나 기쁘거나 뿌듯한 날에 널 기억할 거야. 그리고 우리가 이제 학습해야 할 것은 우리 스스로를 돌보는 거야. 그 능력 또한 타인으로부터 받은 사랑에서 배우는 걸거야. 너를 지지해주는 사람과 항상 함께하길 바랄게.


2022.9.8

이전 09화 봄에 오지 못한 봄이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