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봄아! 넌 봄에 오기로 되어 있어서 봄이었어. 그런데 정작 봄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도 난 너를 만날 수 없었어. 그렇게 나는 봄을 잃었고 나의 세계는 붕괴되었어. 계절 감각을 상실한 채 반년을 보내고 나는 봄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해서 그 해 가을 호주로 떠났어. 호주는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거든.
호주는 아직 쌀쌀했어. 햇빛은 강했지만 겨울 끝자락의 바람이 불었어. 퍼스라는 도시의 외곽에 있는 한적한 해변으로 갔어. 깨끗한 모래사장에 눈을 감고 누웠어. 사람이 별로 없어서 고요했어. 햇빛을 머금은 모래는 따뜻했어. 모래의 온도는 너무 뜨겁지도 시리지도 않게 딱 알맞았어. 그 위로는 끈적하지도 날카롭지도 않은 선선한 바람이 불었어. 모래와 바람의 온도가 만나 내 몸을 안아줬어. 파도소리도 잔잔하게 들렸어. 잠이 들려는 찰나, 바다 쪽에서 검게 그을린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웃고 떠드는 소리가 아드막히 들렸어. 마치 아기의 옹알이처럼. 바람이 모래를 쓰는 소리가 스쳤어. 신발을 신고 서툴게 걸음마 하는 아기의 통통한 다리가 느껴졌어. 내가 널 기다리며 사줬던 신발인가. 수건으로 얼굴을 덮었어. 가슴이 들썩였어. 그 해변은 내가 온전히 제대로 슬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어.
봄아. 몇 년이 지났지만 계절은 계속 모호하고 나는 수시로 상실의 기억에 떨어져. 나는 저 바다 밑에 있는 난파선 같아. 다시 떠오르기를 갈망하고 실패에 좌절하며 그 상황을 수용하길 반복해. 왜 나만 이렇게 멈춰있는지 생각하며 널 원망하기도 해. 그러다가 한 번씩 주제넘게 다른 사람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로해. 난파선이 다른 난파선에게 다가가 '너 참 멋지구나. 너는 가라앉았지만 너에게 새로이 다가오는 산호와 물고기를 좀 봐. 너는 아직도 새로운 생명을 낳을 수 있는 힘이 있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면 돼'라고 말하는 꼴이야. 그렇게 다니다 보면 이 세상은 사실 난파선 천지인 심해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 빼고 모두가 잘 나가는 배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만 누가 상처를 통해 더 많은 생명을 품을 수 있느냐가 삶의 관건이지싶어.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다 또 어느 순간 무너지겠지만 봄이 없는 물밑에서한 번 생각해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