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숨을 크게 들이 마신 다음, 볼이 빵빵해지게 입 안에 공기를 채워 넣는다. 그리고는 삐죽 내민 입술 사이로 작은 구멍을 내어 숨을 길게 내보낸다. 언제부턴가 치료실로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숨을 한 번 크게 내뱉게 되었다. 그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 답답했다. 내 개인적인 고통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바라볼 여유가 없던 때였다.
한숨을 한 번 쉬고 표정 없는 얼굴로 치료실에 들어갔다. 60대 통통한 체격의 그녀가 와 있었다. 그녀는 얼굴도 눈도 몸도 마음도 둥글둥글했다. 내가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면 그녀는 항상 둥근 미소를 나에게 보냈다. 그 부드러움은 까칠해진 내 마음을 무장해제시켰다. 그녀를 향해 미소 짓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상대로 하여금 진심을 다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분이었다.
그녀는 평소 무릎 관절통과 변비를 호소했다. 3주 정도의 치료로 증상은 호전되었다. 그날은 발목이 시큰거린다는 새 증상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음번 예약은 안 했다며 2달 뒤에 봐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2달 동안 쉬어야 하는 이유를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40대 아들이 희귀 뇌질환을 앓고 있는데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어 병원에 가서 아들을 돌봐야 한다고 했다. 진료실에 오는 사람 치고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만 그녀에게 이런 사연이 있는지 몰랐다. 그런 아픔이 그녀의 미소 속에 숨겨져 있었다니.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는 그녀의 신체 상태를 다시 검토했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아침에 일어날 때 무기력하지 않으세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다시 눈을 감고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 눈이 떠지지 않았으면. 숨이 쉬어지지 않았으면.'
그녀는 그녀의 목에 차는 숨을 거부하고 있었다. 24시간 멈추지 않는 숨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 겉에서는 따뜻한 숨이 맴도는 것 같아 보였지만, 그 안에서는 날카롭고 차가운 숨이 그녀의 내장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내가 그녀의 숨을 아끼는 것처럼 그녀도 자신의 숨을 있는 그대로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침을 빼면서 그녀에게 호흡을 같이 한 번 해보자고 제안했다. 당신이 쉬는 숨을 부정하지 말라는 의도였다. 일단 눈을 감게 했다. 그리고 숨을 편히 쉬게 했다. 호흡 명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찰나였다.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가슴이 답답해 죽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언 강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이를 딱딱 부딪치고 온몸을 벌벌 떨었다.
감은 눈을 뜨게 했다. 적외선 조사기를 켜서 그녀의 몸에 온기를 공급했다. 호흡에 집중하니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어떤 작은 집을 봤어요. 옆에 나무가 서있고. 그 안에 아기가 있는 것 같은데 그 안에 들어가면 다시 못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너무 무서워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아들은 언제나 아기처럼 사랑스러웠다. 마흔 살의 몸이지만 이제는 일곱 살 아기의 지능만 남아 겨우 엄마를 알아볼 수 있는 아들이었다. 그녀는 직감했을 것이다. 내일모레 병원에 들어가면 사랑하는 내 아이를 이제는 정말 떠나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숨 쉴 때마다 공기 속에 산재한 공포감이 그녀의 숨길을 막았고,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이 그녀의 세포 하나하나를 얼렸다.
아들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아들을 어떻게 낳았는지, 어떻게 길렀는지. 그는 젊어서 무슨 일을 했으며, 어쩌다 그런 병에 걸리게 되었는지. 그의 투병 과정은 어땠는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아들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녀는 아들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녀의 얼굴에 쓸쓸한 온기가 들어왔고 눈에는 끈적한 액체가 맴돌았다. 그녀에게 숨을 크게 한 번 쉬어보라고 했다.
“숨쉬기 좀 나아진 것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종전의 대화 중, 아들이 입원하고 나서 손자랑 같이 살게 되었다는 대목이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손자 분은 몇 살인가요?” 내가 물었다.
손자에 대해 묻자, 갑자기 그녀의 입가에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밝은 미소가 번졌다. 그늘졌던 피부에 화사한 햇빛이 들어왔다.
“지금 15살인데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철이 너무 일찍 들어서 안타깝긴 한데...”
우리는 계속해서 손자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이야기했다.
“너무 무섭고 눈 뜨기 싫고 숨 쉬기 싫은 상황인데도, 손자 분이 희연님을 살게 하네요.”
“네. 아유. 내가 걔 때문에 살아요. 살아야지. 내가.”
“다시 한번 숨을 크게 쉬어보실래요?”
“어머. 신기해라. 숨 쉬는 게 너무 편해요.”
“병원에서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2달 뒤에 꼭 오세요.”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서 눈을 감고 숨을 들이켰다. 아주 오랜만에 나의 숨을 들여다보며 잡생각에 빠졌다. 나의 숨길은 매끄러운가. 무엇이 나를 숨 막히게 하는가. 나는 나의 숨을 긍정하는가. 무엇이 나를 숨 쉬게 하는가. 나는 왜 숨을 쉬고 있는가. 그녀의 숨처럼 내 숨도 소중한 것인가. 모든 이의 숨은 가치로운가. 누군가가 뱉은 숨을 나는 들이쉬고 내가 뱉은 숨을 누군가는 들이쉬는데, 그렇기에 사람들은 모두 숨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누구나 그 숨의 연결고리 속에서 위로받을 수 있기를.
“후우~”
누군가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당신의 한숨
그 깊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정말 수고했어요
<‘한숨’ 中, 이하이 노래, 종현 작사•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