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한 달 만에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녀가 휠체어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눈은 풀려 있었고 다리는 비틀거렸다. 진통제에 취한 건지 통증에 취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누가 부축할 새도 없이 갈지자를 그리며 돌진하다가 진료실 침대에 픽 쓰러져 누웠다.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제가 입원해서 경막외카테터로 진통제를 맞았거든요. 디스크 때문에 허리가 아파서. 그런데 관을 빼고 났더니 다리에서 느껴졌던 통증이 허리로 가는 거예요. 디스크가 툭 튀어나와 있었는데 그게 완전히 터졌대요. 3시간마다 발작적인 통증이 왔어요." 그녀는 마치 엄마에게 혼난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훌쩍거렸다.
나는 그녀의 이름이 적힌 차트를 되짚어봤다.
'젠장, 좋아지고 있었는데.'
그녀가 오면 나는 한 시간도 넘게 그녀를 붙들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했었다. 점차 그녀가 느끼는 통증 강도는 줄어들고 있었다. 그녀는 치료를 받는 동안 소원이 하나 생겼다고 했다. 두 발로 서서 허리를 숙여 머리를 감아보는 것.
나는 깊은 호흡을 유도해 그녀를 안심시킨 후, 그녀에게 한 달 전과 동일한 침 시술을 했다. 시술이 끝나고 난 후 그녀는 다시 휠체어에 앉았다. 그녀와 대화를 해보려고 하는 순간, 그녀의 허리가 굽어졌다. 내가 그녀의 이름을 몇 차례 불렀지만 그녀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온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에 물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발을 동동 굴렀다. 얼굴이 새빨개졌다. 관자놀이와 이마에 핏발이 섰다. 꼭 불타는 신발을 신은 사람처럼.
그녀는 응급실로 갔다. 그녀를 실은 차가 떠나서 보이지 않게 된 후에도 나는 한참 동안 문밖을 바라보았다. 원망의 대상을 찾았다. 이 병이 시작되도록 그녀의 발에 주사를 놓은 간호사, 처음부터 강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한 마취통증과 의사, 예민한 신경을 함부로 건드린 정형외과 의사, 지금까지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던 수많은 사람들, 그녀의 아픔을 알아주지 않았던 사람들, 약해진 그녀의 몸에 침을 놓은 나, 견딜 수 없는 통증을 수시로 만들어내는 그녀의 몸. 누구를 욕할지 정할 수 없었다.
진료실에 맨 처음 왔을 때도 그녀는 그렇게 비틀거렸다. 절망에 취한 눈을 한 채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있었다. 어떤 고통을 가지고 여길 온 것일까. 그녀는 혀가 꼬인 듯한 말투로 느릿느릿 이야기했다. 술 마신 사람이 허공에 대고 푸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용은 명확했다. 그녀는 나도 모르는 의학용어와 약물명을 줄줄이 읊으면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질병으로 고통받아 왔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병명은 그 병이 주는 고통의 이미지를 담는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한 사람의 개성을 압도할 만큼 강렬하다. 병명은 그 사람을 대표하는 단어가 된다. CRPS. 그녀는 자신의 꼬리표를 나에게 보여주었고 그것이 주는 절망감에 나는 압도당했다. 그녀의 지친 눈 속에서 금방이라도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를 것 같은 검은 심지를 보았다. 그녀의 눈에 불빛을 비춰보았다. 핀포인트 모양의 동공. 약물 중독자에게 나타난다고 알려진 동공 형태이다. 타진, 데메롤, 푸카인. 마약성 진통제의 이름이 그녀의 입에서 무심하게 쏟아졌다. 그녀는 약에 취해야만 불타는 고통을 겨우 잠시 잠재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강한 고통, 불에 타는 듯한 고통, 아기를 낳을 때나 손발이 절단될 때의 고통보다 더 강한 고통을 속수무책으로 견뎌내야 하는 처절한 삶이 바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불에 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시죠. 다른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계시네요."
내가 그녀에게 이 말을 건네자 그녀는 말을 멈췄다. 그녀의 턱이 떨렸다. 잠시 후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아주 잠깐 동안은 그녀의 눈에 불이 붙지 않으리라. 그녀는 울먹이며 그동안 자신의 고통이 얼마나 무시당해 왔는지 호소했다. 통증은 눈에 보이지 않고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그녀가 호소하는 통증을 그저 엄살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의사들의 무심함은 그녀의 마음에 더 큰 불을 지폈다. 그들은 너무나 많은 고통을 돌보느라 오히려 그 고통에 무감각했다. 게다가 이 병을 아예 모르는 의사들도 많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마약성 진통제를 남용했고, 그녀에게 마약성 진통제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선고했다. 최대 기준치의 진통제를 투여하고는 더 달라는 그녀에게 더 이상 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그녀가 만났던, 앞으로 그녀가 만날 의사들을 대표해서 사과했다. 겪어본 적이 없기에 그녀의 고통을 전부 다 헤아릴 수 없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통증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나에게 했다. CRPS에 의한 통증은 3년 전 발에 맞은 수액 주사에서 시작되었다. 주사를 맞은 날 밤에 그녀는 갑자기 다리에 극심한 작열통을 느꼈고, 시간이 갈수록 통증은 전신에 퍼졌다. 통증은 그녀의 살을 도끼처럼 찍어내리다가 곧이어 무자비하게 불태웠다. 그녀는 다리를 잘라버리고 싶다고 했다. 다리를 잘랐을 때 느끼는 환상통이 작열통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게다가 2년 전부터는 추간판탈출증에 의한 통증도 동반되었다.
어쨌든 그녀의 관심사는 이 병이 나을 수 있는가였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현재 이 병의 뚜렷한 치료법은 없지만 통증 완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보겠다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통증. 단순히 신경이 손상된다고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통증은 뇌가 지각하는 전기 신호이고 통증 지각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물리적인 손상과 유해 자극, 감염, 영양 부족, 전해질 불균형, 자세 이상, 피로와 수면 부족, 장부의 기능 부전, 신경계와 면역계의 기능 부전, 심리적인 요인 등 다양한 원인의 총집합이 통증이다. 그래서 통증 자체보다는 다양한 원인에 더 집중했고 여러 가지 치료법을 적용했다. 침, 전침, 한약, 부항, 수기치료를 병행했고 심리치료를 중점적으로 했다. 심리적인 문제는 통증 역치를 낮추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그녀는 이렇게 아픈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 한 달 정도 치료를 받으면서 그녀는 조금씩 조금씩 통증이 줄어드는 것 같다고 했다.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나둘씩 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러다 그녀는 한 주 동안 입원이 예약되어 있다며 나에게 한 주 뒤에 보자고 했다. 그러나 한 주가 다 되도록 오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서야 그녀는 내 앞에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나타났다. 나는 누워있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손발가락 사이마다 난 통증유발점 주삿바늘 자국, 다리에 든 멍 자국, 진통제를 놓기 위해 쇄골 위쪽에 연결된 튜브, 발에 감긴 붕대, 피부가 약해져서 벗겨지는 각질, 갈라지는 손톱을 가리기 위한 젤 네일. 아무리 보아도 적응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느 한 군데 자극을 주기가 어려운 몸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그녀의 신경은 너무나 예민해져 버려서 그 어떠한 자극도 수용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그 상태를 감지하지 못하고 그녀의 몸에 전처럼 침을 놓았다. 그녀는 응급실로 직행했고 다시 진료실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 후로 1년이 넘었다. 타인의 고통에 점점 무감각해져 갈 때쯤 그녀가 떠올랐다. 평생 적응 안 될 그 고통을 그녀는 잘 견디고 있을지. 그녀의 어머니를 통해 간간이 그녀의 소식은 들었지만 그녀를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진료실에서의 일이 떠올라 잠시 망설였으나 다시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지지해주고 싶었다. 방문 진료라는 명목으로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그녀는 여전히 고통스러워했다. 매일 병원을 전전하며 진통제를 맞았다. 마약성 진통제를 최대로 맞아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잠을 못 잤다. 가만히 누워있지도 못했다. 온갖 병원을 돌아다니며 의사와 싸웠다. 방문 첫날, 그녀는 나에게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말하며 마음의 불을 잠시 껐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의 고통을 가만히 들으며 한숨만 쉬다가 왔다.
그 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 그녀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나를 극진히 맞아주었다. 나도 그들에게 무언가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나 고민했다. 비교적 덜 침습적인 부항과 수기치료부터 다시 시작했다. 나는 항상 손이 차서 고민이었는데 그녀는 내 손이 시원해서 좋다고 했다. 내가 다녀가면 그날은 몸도 기분도 좋다고 했다.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뻤다. 그녀는 나에게 신경 써주어 고맙다고 했다. 나는 잘 버티고 견뎌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연상되었던 나무의 이미지가 기억난다. 앙상한 가지가 세찬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길게 휘어져 쓰러질 듯 서 있는 나무였다. 그러나 그 뿌리는 단단해서 결코 뽑힐 것 같지 않았다. 그녀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죽고 싶은 마음뿐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당신을 살게 한 것, 버티게 한 것이 무엇이냐고. 그녀는 딸이라고 대답했다. 그녀에게는 중학생 딸이 있었다. 딸은 엄마의 모든 고통을 지켜보았다. 그녀가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거나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을 때도 딸은 항상 엄마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딸은 불행한 엄마를 기쁘게 하는 착실한 아이로 자랐다. 딸에 대한 미안함과 모성애가 그녀를 지금껏 살게 했다. 그리고 그녀를 살게 한 또 한 사람은 그녀의 어머니다. 항상 옆에 붙어서 챙겨주는 사람은 그녀의 어머니뿐이다. 이 세 사람이 만들어 내는 사랑의 고리가 그녀를 살게 했다. 나는 그녀에게 딸을 처음 품에 안았을 때의 느낌을 기억해보라고 했다. 품 안에서 꼼지락꼼지락 꿈틀대는 생의 감각을 느껴보라고 했다. 그 느낌에 그녀는 한참을 오열했다. 그것은 분명 불에 타는 고통보다 더 강렬한 감각이리라. 그녀는 그런 감각을 만들어내고 느낄 정도로 강인한 사람이었다. 나는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그 나무를 마음속으로 꼭 껴안았다. 사랑으로 버티는 그 삶이 정말 눈물겹게 고마워서.
충만한 삶이란 괴로움이 존재하지 않는 삶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큰 무엇이다.
-비디아말라 버치, 대니 펜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