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심연

by 허용운

1.

나는 그들이 참 잘 어울리는 부부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굉장히 유쾌했으며 처음 만나는 이에게도 친근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남자는 듬직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 봐도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깊고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원래 그녀의 어머님께서 나의 열렬한 단골손님이셨다. 진료 도중에 어머님께서는 나에게 당신의 모든 인생사와 고민거리를 털어놓으셨다. 어느 날 어머님께서는 딸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딸이 결혼한 지 3년 됐는데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에게 딸과 사위를 한 번 봐달라고 애원하셨다.


부부는 보건소로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들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들은 난임병원에서 혈액검사와 정액검사를 받은 상태였다. 그래서 필요한 검사 결과도 손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나는 보건소의 허락을 받아 그들에게 탕약을 처방했고, 그들이 내원한 지 4달째 됐을 때 그녀는 임신을 했다. 태아는 잘 자랐다. 어머님께서는 자주 오셔서 나에게 태아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셨다. 흐뭇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여느 때와 별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퇴근하기 30분 전, 붕 뜬 마음으로 사무실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단골 어머님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와 달리 매우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선생님.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아기가 잘못된 것 같아요.”

"네? 무슨 소리세요?

“아기 심장이 안 뛴대요.”

“아니. 지금 낳을 때 다 되지 않았어요? 몇 주였죠?"

"37주요."

나는 퇴근할 때까지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마치 사람이 큰 트럭에 들이 받히는 장면을 목격한 것 같은 심정이었다. 눈의 초점이 흐려진 채로 얼굴은 얼어붙었고 등골은 싸늘했으며 가슴은 울렁거렸다. 팔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눈을 감고 눈물을 참으며 계속 생각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뭐가 문제지.'




2.

그녀는 사실 아기를 낳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오빠의 아이를 어쩌다 대신 봐주는 날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돌이 되어가는 조카가 자지러지게 울면 자기도 모르게 침대에 아기를 내팽개쳤다. 조카를 돌보면서 자기는 아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기를 꼭 낳아야 하나. 시댁에 가면 맨날 아기들 나오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틀어져 있다. 엄마도 당연히 아기를 낳아야 하는 줄 안다. 엄마는 말했다. “애기 학교 들어갈 때 너 50, 대학 가면 너 60, 결혼할 때 너 70. 할머니 돼서 식장 들어가면 애가 좋아하겠냐. 안 낳을 거면 몰라도 낳을 거면 빨리 낳는 게 좋아.” 이런 말을 들으면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진다.


사실 결혼도 이런 마음으로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남들 다 하는 것이고 주변에선 재촉하고 혼자 살면 외로울 것 같긴 하고. 결혼을 해야 하나. 서른 살이 되는 해에도 아무렇지 않았건만 이상하게 서른다섯이 되니 마음이 급해져서 미칠 지경이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성격이 모나지 않은 착한 사람을 만났고 남들 하는 것처럼 결혼했다. 꽤 가정적이고 따뜻한 이 남자와 함께라면 같이 아기를 낳아서 키워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러나 아기는 남들 생기는 것처럼 생기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그녀에게 한약을 먹어보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권유했다. 당신 아들한테는 그런 소리 한 번도 안 하시면서 자신한테만 약을 먹어보라 하시는 시어머니가 그녀는 서운했다. 마치 그녀에게만 문제가 있다는 듯이.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녀도 당당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 사춘기 때부터 20대 후반까지 생리를 제대로 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생리 주기도 길고 불규칙했으며 양도 적었다. 갑상선 질환도 있었다. 가끔씩 내과에 가서 혈액검사를 하면 이름도 모르는 호르몬의 수치가 널뛰기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이따금 이런 의문이 밀려왔다. 정말 나의 잘못일까.


남편과 함께 난임병원에 가봤다. 의사는 그녀의 호르몬 수치가 정상적이라고 했다. 생식기관의 구조적인 문제도 없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임신 준비할 때 생리를 안 한 것도 아니고 배란테스트기를 써보면 항상 배란이 됐다고 나왔다. 남편의 정액 검사 결과도 크게 문제 되지 않다고 했다. 기형 정자가 조금 발견되었을 뿐이라고 했다. 의사는 과배란을 유도해서 자연 임신을 해보고 안되면 인공 수정, 그래도 안되면 시험관 아기를 해보자고 했다. 그녀의 문제도 아니고 그의 문제도 아니면 도대체 누구의 문제란 말인가. 그녀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녀는 시술을 받기 전에 조금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 사이 그녀는 보건소에 방문했다. 엄마가 끌고 갔다. 한의사는 이 상황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했다. 난임병원의 시술을 기다리는 동안 한약을 먹어보기로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냈고 아무 기대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기초체온이 높아진 지 2주가 지났길래 습관적으로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했다. 선명하게 나타난 빨간 두 줄이 믿기지 않았다.




믿기지 않았다. 그녀 앞에서 의사가 하는 말이. 의사가 그녀에게 다그쳤다. 태동이 느껴지지 않으면 바로 병원에 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놀이기구 꼭대기에서 막 아래로 떨어질 때와 같은 충격이 몸에서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의 배를 쳐다봤다. 배에 손을 갖다 댔다. 꿈틀거리는 감각을 느껴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감각에 집중할수록 이상스럽게 목이 메었다. 어제는 분명 느껴졌던 것 같은데. 아닌가. 엊그제였나.


생명의 온기가 꺼진 몸은 잔혹하게 가벼웠다. 물 위에 뜬 나무토막을 눌렀다가 떼면 나무토막이 붕 뜨며 튀어 오르듯이, 무거웠던 배가 가벼워지자 그 무게는 가슴으로 튀어 올랐다. 공허감과 상실감이 그녀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가슴을 넘어 그녀의 몸이 더 이상 그 감정을 다 담아둘 수 없게 되자 그것은 눈물로, 가쁜 한숨으로 쉴 새 없이 새어 나왔다.


눈시울이 빨개진 채 그녀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뀐다고 급히 뛴 것이 문제였을까. 이제 곧 아기가 나온다고 너무 흥분해서 돌아다녔나. 비슷한 시기에 출산 예정이던 얄미운 직장 동료가 잘못되길 바랐었다. 그 찰나의 저주가 그녀에게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온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3주만 버티면 됐었는데. 기형아 검사도 정상이었고 별일 없이 잘 자라고 있었는데. 갑자기 왜.


남편이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그는 담담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누워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잠시 그의 눈길이 그녀의 배로 향하는 듯했으나 곧바로 그는 그녀를 품 안에 감싸 안았다. 그녀는 그의 품에 힘없이 안겨 임신 사실에 설레 하던 남편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그의 미소와 입술 감촉이 기억났다. 그런 그가 지금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를 쳐다볼 수 없었다.


그녀의 친정 식구들도 하나둘씩 병원에 왔다. 그녀는 엄마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 엄마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며 격앙되면서도 허탈한 마음을 내비쳤다. 괜찮다고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배를 보며 갑갑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밤늦게 오빠와 여동생이 왔다. 오빠를 보니 조카가 생각났다. 훌쩍 커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조카는 그녀의 배를 자주 만져보며 여기에 아기가 크고 있냐고 물었었다. 조카는 사촌 동생이 나오면 예뻐해 줄 것이라고 말했었다. 오빠가 말했다. “민후가 그러더라. 자기가 고모 배 너무 세게 만져서 아기가 그렇게 된 거냐고.” 엄마는 오빠를 때리면서 괜한 소리를 한다고 핀잔을 줬다. 그녀는 또 한 번 눈물을 쏟았다. 가족들은 처음 마주하는 이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오빠와 엄마는 막달에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냐며 흥분했다. 여동생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이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이고 언니는 아무 잘못 없다고.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임신을 축하해주던 식탁이 떠올랐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을 만큼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제는 흠뻑 젖어 흐리멍덩해진 그들의 얼굴이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유도 분만을 하기 전, 하루 동안 병실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여전히 배가 솟아있어서 발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아기와 함께 보낸 9달을 떠올렸다.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했을 땐 너무나 신기했다. 자신의 몸속에 생명이 자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기는 엄마의 몸에 뿌리를 내리고 자랐다. 그래서 태명은 새싹이. 아기의 심장소리를 처음 들었을 땐 그녀의 심장도 따라서 두근거렸다. 아기의 심장소리를 집에서도 듣고 싶었다. 태아청진기를 장만했다. 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자 손이 자꾸만 배로 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부드럽게 배를 쓰다듬기도 하고 괜히 톡톡 쳐보기도 했다. 태동이 느껴지는 것도 신기했다. 의사에게 넌지시 성별을 물어봤지만 대답해주지 않아서 서운했다. 배가 꽤 나왔을 때쯤 간호사가 무슨 색 옷을 준비하면 좋겠다고 은근히 말해주었다. 내심 부부가 기대했던 성이라서 기뻤다. 손재주가 좋은 그녀는 아기에게 덮어줄 이불을 만들었다. 새싹이가 피어나기를 기다리면서 매일 조금씩 바느질을 했다. 태동이 점점 자주 세게 느껴졌다. 막달이 되니 불안하면서도 흥분되었다. 이제 한 달 후면 만날 수 있다니. 그렇게 기다리던 우리 새싹이를 드디어.


다음 날 아침, 그녀의 몸에 유도분만 촉진제가 들어갔다. 진통이 시작되었고 예상보다 경과가 빨라 무통 주사도 맞을 수 없었다. 출산의 고통을 그대로 느껴야 했다. 그녀는 그동안 동영상을 보면서 수도 없이 연습했던 호흡법과 힘주는 법을 실전에 옮겼다. 6시간 반이 걸렸다. 보통 초산부의 출산 시간보다 훨씬 빨랐다. 패혈증이나 응고 장애 같은 응급상황도 없었다. 출산 과정 자체는 순조로웠다. 아기 울음소리만 들리지 않을 뿐이었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회복실에 들어갔다.




퇴원을 해서 친정집으로 갔다. 장례식 때까지만 있으려고 했는데 엄마가 한 달은 있으란다. 집안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그녀는 영혼까지 남김없이 비어버린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소파에 가만 누워있거나 앉아있는 것이 그녀의 하루 일과였다. 엄마는 매일 아침 신경 써서 반찬을 준비하고 나갔다. 여동생은 그녀와 형부에게 밥을 차려주었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했다. 얼른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장례식 날, 그녀는 새싹이의 배냇저고리, 그녀가 만든 이불, 남편이 산 아기 신발을 가지고 병원으로 갔다. 새싹이가 담긴 관을 받아서 이번엔 화장장에 갔다. 남편이 관을 들었다. 관의 무게가 어느 정도일까. 몸에 있을 때 느껴졌던 무게와 똑같을까. 관이 화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와 남편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그들은 유골을 가지고 인천 해양장 터로 갔다. 눈물과 함께 새싹이의 유골을 바다에 흩뿌렸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새싹이에게 마지막 말을 건넸다.

‘새싹아. 또 와.’


그렇게 떠나보내 주고 나니 심장이 멈춘 아이를 품고 있을 때보다는 마음이 한결 나았다. 집으로 가겠다는 그녀를 엄마가 극구 말렸다. 2주 정도만 더 있기로 했다.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자주 가던 맘카페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누워서 남들이 올린 글을 검색했다.

검색어 : 유산, 사산, 말기 유산, 막달, 37주, 38주, 39주, 태반 검사, 기형, 심정지, 태아청진기, 유산 원인

관절이 느슨해져서 손목이 아픈데도 계속 스마트폰을 봤다. 남편이 맘카페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녀는 남편이 잠들고 나서 새벽 3시가 넘도록 스마트폰만 쳐다봤다. 그녀는 낮에 맘카페에서 본 이야기를 여동생에게 했다.

“말기 유산도 꽤 있나 봐. 어떤 사람은 예정일 일주일 남기고 그렇게 됐대. 태어나고 나서도 갑자기 죽는 애들도 있고. 나 유산된 날 다음 날에 그렇게 된 사람도 있더라고. 너희 형부는 못 보게 하는데 사람들이 댓글에 ‘ㅇㅇ님 잘못 아니에요. 힘내세요. 저도 유산되고 괴로웠는데 5개월 만에 다시 아기 생겨서 지금은 잘 키우고 있어요.’ 이러면 또 위로가 되는 것도 같고.”


2주가 지나고 조금씩 그녀의 눈에 초점이 돌아올 때쯤이었다. 그동안 계속 유방 쪽에 느낌이 이상했는데 그날은 유난히 아팠다. 늘어진 면티 앞쪽이 조금씩 젖어들었다. 젖이 돌았다. 그동안 병원에서 받은 약을 먹고 괜찮았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의 눈은 다시 비참함의 심연에 빠졌다. 울먹이며 가까스로 엄마에게 젖이 나온다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엿기름을 만들었다. 그녀는 냉장고에 있던 양배추를 뜯어 가슴에 붙이고 계속 누웠다. 방안의 검은 공기가 그녀의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녀의 시간은 멈춰버린 듯했다. 가족들의 움직임이 빨리감기 한 비디오 영화처럼 느껴졌다. 엿기름이 선사하는 비릿한 전율은 가끔씩 그 시간의 단절감을 깨 주었다.


그래도 젖은 이틀 만에 멎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그렇게 슬픔은 가족을 연결했다. 서로가 서로의 옆에 있어주었다. 그 결과 다시는 돌아올 것 같지 않았던 표정이 조금씩 그녀의 얼굴에 돌아왔다. 그녀와 남편은 집에 갈 채비를 했다. 새싹이가 있었다면 품에 안고 집에 갔을 텐데. 그녀는 문 앞에서 살며시 미소 지으며 가족들에게 인사했다. “나 갈게.”




3.

그는 병실 문 앞에서 한동안 서있었다. 문 손잡이를 잡았지만 열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았다. 병실 안에 있는 아내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문을 열었다. 아내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볼록한 배를 잠깐 쳐다봤다. 곧바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저 뱃속에서 정말 새싹이가 움직이지 않는 걸까. 그가 태동을 느껴보려고 아내의 배에 손을 갖다 대면 항상 새싹이는 태동을 멈췄었다. 아내는 새싹이가 부끄러워 하나 보라고 했다. 괜찮았다. 아이의 심장 소리는 태어나면 충분히 느껴볼 수 있으니까.


그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담담하게 전화기를 들었다.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기가 잘못됐대요. 심장이 멈췄대요."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아기가 잘못돼서 1~2주 정도 휴가를 써야 할 것 같아요. 심장이 멈췄다네요. 네. 죄송합니다."

산후조리원에 전화를 걸었다. "저희가 예약을 했었는데 아기가 잘못돼서 취소해야 할 것 같아요. 갑자기 심장이 멈췄대요. 네. 감사합니다."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 주위 사람들에게 이 믿기 힘든 사실을 반복해서 전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는 말없이 아내의 옆을 지켰다. 그는 그녀가 우는 것을 지켜봤다.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봤다.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녀가 부은 얼굴로 자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녀의 옆에 누웠다.


그는 가만히 모든 것을 지켜봤다. 새싹이의 처음이자 마지막 모습까지도. 아기의 얼굴은 분홍빛을 띠고 있지 않았다. 자지러지게 울지도 않았다. 쭈글쭈글 못 생기지도 않았다. 아기의 얼굴은 흰색과 파란색 그 사이 어딘가의 색을 띠고 있었다. 인형같이 가만히 손을 배에 올려놓은 채 멈춰 있었다. 팔과 다리는 너무 가늘어 한 번 안아보면 부러질 것 같았다. 아기의 모습은 그의 마음속 어두운 심연에 빠져버렸다.





그는 아내와 함께 처가에 갔다. 하루 종일 아내의 옆에서 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다. 병원에서와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그는 가만히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아내가 어떻게 앉아 있는지, 아내가 어떻게 누워 있는지, 아내가 어떻게 우는지, 아내가 어떻게 밥을 먹는지, 아내가 어떻게 절망하는지.


새싹이의 장례를 치르기 전날이었다. 그는 태울 물건을 찾으러 혼자 잠깐 집에 갔다. 아기에게 입혀주려고 했던 흰 배냇저고리를 가방에 넣었다. 아기에서 덮어주려고 했던 정사각형의 수 놓인 이불도 가방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아기에게 신겨주려고 했던 신발을 손에 들었다. 그가 해외 출장에 갔다가 새싹이를 위해 사온 신발이었다. 성별도 모를 때라 색깔도 연한 갈색으로 골랐었다. 아기 발 사이즈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 그냥 적당히 작은 신발을 샀다. 아기는 계속 크니까 언젠가는 맞을 것이라고 아내가 말했다. 그는 그 신발을 산 날부터 얼굴도 성도 모르는 새싹이가 신발을 신고 걷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신발을 바닥에 놓고 가슴을 부여잡았다. 아무도 그의 옆에 없을 때에야 비로소 그는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그의 주변에서 새싹이가 신발을 신고 맴돌고 있었다.


장례식 날 그는 새싹이가 담긴 관을 들었다. 너무나 가벼웠다.




그는 회사로 복귀했다. 회사는 친정집에서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었다. 출근길 지하철은 붐볐다. 내 옆 사람이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내 앞사람이 머리를 감았는지, 내 뒷사람이 이어폰을 끼고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세 번째 정거장에서 문이 열렸다. 두 명이 열차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그들은 문턱 앞에서 주저하더니 일단 발을 열차 안에 집어넣었다. 몸은 문이 닫히면 알아서 열차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열차 문이 닫히는 순간, 그의 코에 감지되는 냄새가 있었다. 살 냄새랄까, 우유 냄새랄까. 아기 특유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냄새가 방금 열차 안에 들어온 남자의 몸에서 퍼지고 있었다. 그는 숨을 한껏 들이마신 뒤에 참았다. 그리고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회사까지 걸어갔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동료들은 그에게 딱한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말없이 얹히는 손길. 그들은 너도 나도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이 유산을 경험하고 나서 다시 출산에 성공했다는 이야기 했다. 그는 괜찮다는 말을 하고 자리를 피했다. 누군가가 유산을 겪으면 그의 이야기는 언젠가 그들의 위로에 쓰일 것이다.


퇴근길. 길거리를 걷다가 보이는 사람은 온통 임산부, 뛰어다니는 아이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엄마들, 아기띠를 맨 아빠들이었다. 길에서 아기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였다. 아기를 보고 한 번씩 미소를 지어주었던 그였다. 이제 그들의 얼굴은 그에게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형체만 보일 뿐. 너무나 많은 것을 지켜본 그의 눈은 휴식이 필요했다. 친정집에 돌아왔다. 그는 아내의 옆에 누워 눈을 감았다.


4.

시간이 지나 그녀와 진료실에서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가 집에 가고 난 후 나는 부부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새싹이. 태명이 참 좋아요. 정말 새싹은 또 오더라고요. 제가 예전에 사랑초라는 식물을 하나 선물 받았거든요. 선물 받은 아이니까 정말 애지중지 키웠어요. 그런데 겨울이 되니까 잎이 다 떨어지면서 줄기가 말라버리는 거예요. 물도 잘 주고 햇빛도 잘 드는 곳에 두었는데도. 안절부절못했어요. 죽었다고 생각했죠. 그냥 두었어요. 그런데 봄이 되니까 신기하게 푸른 새싹이 돋더라고요.

새싹이의 느낌은 몸에 남아 있을 거예요. 시간이 흘러 잊은 것 같다가도 문득 떠오를 것이고, 어쩌면 둘째를 가지게 되었을 때도 기뻐서 울기보단 새싹이가 생각나서 울 수도 있어요. 신발을 신고 걸어 다니는 새싹이의 모습도 떠오르죠. 둘째를 가지게 된다면 새싹이가 엄마 보고 더 조심하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동생 잘 지켜달라고. 자기는 괜찮다며 슬퍼 말라고 엄마 아빠를 위로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애써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새싹이가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알 수 없네요. 참 무기력해지죠. 인간은 정말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느껴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나에게, 또 사람들에게 일어나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하게 되죠. 여기 오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에요. '왜 나만 이런 병에 걸렸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 다 안 걸리는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더라고요. 이유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구체적인 사연을 여기에 쓸 순 없지만 최근에 저도 제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일을 겪었어요. 제 슬픔의 심연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그 연못은 너무나 깊고 넓고 어두웠어요.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바로 빨려 들어가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심연 위에 종이배가 몇 척 뜨더라고요. 배 안에서 사람들이 등불을 손에 들고 서 있었어요. 제 곁에 있어주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이 제 슬픔 위에서 불을 밝히면서 떠다니고 있었어요. 참, 무기력하고 나약한 인간들끼리 지지하고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생존 방식인가 봐요. 두 분께도 두 분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두 분끼리도 서로 힘이 되어주셨고 두 분 가족들도 그렇고요.

그러니 지금은 마음껏 슬퍼하셔도 됩니다. 영원히 슬픈 마음은 없고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으니까요









keyword
이전 08화불타는 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