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by 허용운

요즘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개의 행동교정을 다루는 프로그램인데 이것을 보면서 치료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비글 에피소드이다.


원래 비글은 엄청 활발하고 호기심 많은 사고뭉치 견종이라고 한다. 온순해서 사람도 잘 따른다. 그런데 이런 특성을 이용해서 사람들은 비글을 실험용으로 만들어 각종 동물 실험에 사용한다. 이 에피소드에 나온 비글 가온이는 실험실에서 쓰이다가 안락사되기 직전에 구조된 개였다. 가온이는 한 가정에 입양이 되었는데 실험실에서의 상처 때문인지 케이지에서 나오지 못했다. 주인이 겨우 끌어냈는데 나와서는 방 한쪽 구석에 쪼그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반려견 행동교정 전문가 강형욱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했다. 사람이 와도 가온이는 구석에 가만히 있었다. 보통 강아지가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쉬고 싶다는 표현이니까 그냥 놔둬야 한단다. 안쓰럽다고 만지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다. 케이지 안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바깥세상이 그동안 너무나 잔혹했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가온이에게 안전함을 느끼게 해야 했다. 전문가는 가온이가 좋아하는 간식으로 가온이의 행동을 유도했다. 안전함을 느끼게 하려는 공간에 간식을 두는 것이다. 강아지는 주인이 머리를 쓰다듬을 때가 아닌 간식을 줄 때 칭찬받는다고 느낀다고 한다. 결국 이 방법으로 가온이를 산책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실험실에서는 맡을 수 없는 흙냄새를 맡게 했다.




이 방송을 보는데 한 동안 상담했던 친구 하나가 떠올랐다. 이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작고 소심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왕따를 당했다. 중학교 땐 특히 심했고 고등학교 땐 일부러 아무와도 말하지 않았다. 이 친구의 부모는 가족 규칙과 자녀 훈육에 대해 엄격했다. 서로 사랑하지 않았고 많이 싸웠지만 그들 나름의 규율 때문에 이혼하지도 않았다. 부모는 싸우는 장면을 아이에게 다 보여주고 난 후 아이에게 감정을 풀었다. 이 친구는 자기 자신이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말했다. 또 부모는 남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했다. 학교 성적이 특출난 동생에 비해 이 친구는 부모에게 있어서 너무나 못난 아들이었다. 어떻게 대학은 갔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강의실에 앉아만 있다가 왔다. 군대에서도 동기나 선임에게 무시와 괴롭힘을 당했다. 결국 우울증으로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도 없게 되었고 취직은 일찍이 포기했다.


첫 만남은 힘들었다. 무슨 말을 해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어떤 활동을 같이 해보려고 하면 "싫어요!"라며 내 입을 막았다. 여기 안 가면 엄마가 자기를 이상한 수용소 같은 곳에 보내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여기 온 것뿐이라고. 폭력 속에 자란 아이였다. 어떤 곳에서도 안전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에게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나쁜 사람들이었다. 가만 보고 있자니 그 모습이 꼭 골목길에서 종이 상자를 뒤집어쓰고 쪼그려 앉아있는 어린아이 같았다. 상자는 그 아이의 유일한 보호막이었다. 억지로 그 상자를 벗겨내면 더 어두운 곳으로 침잠할 것 같았다. 한동안 나는 그냥 그 상자 주위를 배회할 수밖에 없었다. 숨 쉴 곳 없는 아이에게 이 진료실만큼은 안전해야 했다. 밖에서는 아무리 얻어맞아도 여기에서만큼은 보호받아야 했다.


<유능한 상담자의 심리치료>라는 책에서 Scott D. Miller는 심리치료의 효과에 영향을 주는 4가지 요인을 서술했다. 4가지 요인이란 환자 요인(리소스) 40%, 내담자와 치료자의 치료적 관계 30%, 치료기법 15%, 환자의 기대와 플라시보 15%이다. 리소스란 간단히 말해 개인에게 힘이 되는 모든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삶을 지탱하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게 리소스다.


이 친구의 리소스를 찾아야 했다.
"엄마 아빠 없을 때 주로 뭐해요?"
"주로 게임하거나 만화 봐요. 웹툰. 책 보기도 하고. 영화나 음악 들을 때도 있고."
"게임이랑 만화를 좋아하나 보네요."
"네!"
좋아하는 게임과 만화에 대해 같이 이야기했다. 그렇게 밝은 표정과 큰 목소리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이렇게 빛나는 눈을 가지고 있는 친구였구나. 단순히 좋아하는 것 그 이상이었다. 이 친구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 소설가나 웹툰 작가를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해서 포기했다고. 자기는 나중에 그냥 굶어 죽을 것이라고. 이야기할수록 아주 감수성이 풍부하고 창의적인 친구였다. 더 많이 꿈꾸고 경험해야 하는 친구였다.


상담을 진행하다 보니 이 친구를 감싸고 있던 것은 얇은 종이박스가 아니라 높고 뾰족한 철조망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 철조망은 이 친구 혼자 쌓아 올린 것이 아니었다. 부모와 주변 사람들, 우리 사회가 같이 만든 합작품이었다. 우리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했다. 가끔 이 친구의 상태가 좋아 보이면 내가 쥐구멍을 파고 기어들어가 여러 가지 기법을 시도하기도 했다. 너무 힘들어할 땐 같이 음악을 듣거나 웹툰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나와 상담을 한다고 철조망이 걷힌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기어들어가려고 할 때 이 친구는 적어도 내가 뾰족한 심에 찔리지 않게 거들어주었다.




혼자만의 공간에 몸을 숨기고 있던 비글이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은 상처받은 인간이 치유받는 과정과 매우 닮았다.


기다림. 그것은 너무나 중요한 과정이다. 상처받고 가만히 얼어있는 시간에 인간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결코 멈춰있는 것이 아니다. 힘을 내고 있는 것이다.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들은 특히 느리다. 상처의 무게에 짓눌려서 그런지 그들은 말하는 속도, 생각하는 속도, 반응하는 속도 모두 느리다. 누구나 자신만의 시간과 속도가 존재한다. 그 누구도 타인의 시간을 침해할 권리는 없다.


안전함.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 이론에 따르면, 안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 다음으로 충족되어야 할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욕구이다. 안전의 장이 마련되지 않으면 치유는 일어나기 힘들다. 숙소와 베이스캠프 없이 하는 여행이 불안한 것처럼.


리소스. 비글에게 간식을 주는 행위는 단순히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보상 그 이상의 것이었다. 바깥세상으로 탐험을 시도해봐도 되겠다고 느끼게 만든 매개물이었다. 인간에게도 이러한 리소스가 있다. 한 인간을 살게 하는 그 무엇. 어떤 것이든 좋으니 그 빛나는 리소스를 같이 찾아봐야 한다. 과거의 기억에서 현재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다리를 놓는 것이다.




우리는 폭력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폭력의 피해자이며 가해자다. 우리는 그저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폭력의 원죄를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기다려주지 않는 어른들은 있다.

폭력을 저지르는 어른들이 있다.

아이들의 빛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어른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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