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2)
"근데요. 저번 주에 선생님이랑 얘기하다가 그 검은 형체가 보였어요."
"그랬구나. 무서웠겠어요. 저번 주에 말하지 그랬어요."
"선생님 뒤에 있었어요. 선생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선생님 머리에 턱을 괴고 있었어요. 무서웠어요."
이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다. 그녀를 사랑해 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던 날이었다. 그 전 주에는 할머니에 대해, 그날은 옛날 남자 친구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들이 주었던 따뜻한 느낌을 깨닫게 한 후 마무리를 하려는 찰나, 그녀는 나에게 악마를 보았다고 했다. 그 후에 그녀는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가슴에 온기를 건네주었고, 그녀는 내 등 뒤에 냉기를 박았다.
목련 꽃이 다 떨어져 땅이 갈색 잎으로 미끈거리는 계절이었다.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 한 분을 만났다. 보건소까지 같이 걸어가는데 그 직원분께서 요즘 마음에 걸리는 대상자가 있다고 하셨다.
"시청에서 의뢰가 들어와서 가정 방문을 했는데, 여자아이예요. 할머니랑 같이 살고 있고. 어렸을 때 학대를 심하게 받아서 우울증 약을 먹고는 있는데, 돈이 없어서 진료받으러 가기도 힘들고 수급자 신청을 해야 한대요. 경제활동 능력이 안 되니까. 그런데 일단 눈빛에 너무 살기가 넘치고, 자꾸 살인 충동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가 예전에 길고양이를 몇 백 마리씩 죽였다느니 도살장에서 일했다느니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저까지 여자 세 명이서 갔고 대상자가 남자도 아닌데 너무 무서운 거예요."
나는 궁금했다. 얼마나 심한 학대를 받으면 그런 살해 충동을 표출하게 되는지. 그 아이에게 사랑으로 다가가면 그 아이가 학대의 기억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될 수 있을지.
"제가 한 번 그분을 봐도 될까요?"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년밖에 안 되긴 했지만, 너무 작고 말라서 15살 중학생처럼 보였다. 자다 깨서 허겁지겁 나온 것 같은 부스스한 단발머리와 늘어진 흰 티도 그런 인상을 주는 데 한몫했다. 피부가 까무잡잡해서 그런지 땡그란 눈이 더 돋보였다. 그녀의 눈은 나를 보고는 있었으나 초점 없이 흐렸다. 반면 그녀의 눈꺼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많이 피곤한가 봐요."
"네. 잠을 못 잤어요. 2시간 자고 나왔나."
그녀는 불안해서 잠을 잘 못 잔다고 했다. 자려고 누우면 검은 손이 나타나 그녀의 팔을 간지럽힌다고 했다. 검은 머리카락이 온 방안을 휘젓고 다닌다고 했다. 검은 얼굴이 천장에 붙어있다고 했다. 검은 입이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고 했다. 죽이라고.
그녀가 불안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날 수 있도록 나는 호흡명상을 유도했다. 불안이 심한 사람은 보통 눈을 잘 감지 못하는데 그녀는 피곤했는지 눈을 잘 감았고, 호흡에 집중하는가 싶더니 곧 고개를 떨구고 잠들어버렸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잘 수 있게 내버려 두었다. 끝내야 할 시간이 되었고 나는 그녀를 깨웠다. 호흡에 집중이 잘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호흡에 집중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잠들어버렸다고 말했다.
"집에 가서 푹 자고 다음 주에 더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네. 근데요. 자꾸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요."
그녀는 미리 와서 상담실에 앉아 있었다. 내가 상담실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네모난 휴지 조각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그녀의 그림을 살펴보았다. 두 장이었다. 나무줄기에 올가미 끈이 매달려 있고 그 끈에 사람 목이 걸려 축 늘어져 있는 그림 한 장. 철조망 안쪽에서 날카로운 눈 여러 개가 먹잇감을 보듯이 노려보고 있는 그림 한 장.
그녀에게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2살 때 이혼을 했다. 어머니는 무능한 남편에게서 도망쳐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 능력 없는 아버지는 아이를 떠맡게 되었지만 육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중학교 때까지 아이가 한글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정도였으니까. 고모들은 그녀가 엄마를 닮았다며 뺨을 때렸다. 그녀의 뺨은 항상 퉁퉁 불어 있었고, 햇빛 아래서 오래 있었던 것처럼 주변부가 빨갰다. 이유는 하나였다. 더러운 피라서. 그리고 아버지는 어린 여자와 재혼을 했다.
"새엄마는 아빠가 나가면 날 때렸어요. 내가 말을 안 듣는다고. 아빠 벨트로. 자기 직성이 풀릴 때까지 실컷 때리고는 마지막엔 벨트를 제 목에 감고 말했어요. '내 말 잘 들어야지? 넌 이제 내 딸이야.' 더 웃긴 건 뭔지 알아요? 그 화냥년이 자기 남자친구를 아빠 없을 때 데려와서는 그 짓거리를 하더라니까요. 그리고 언젠가는 그 돼지가 나한테 음료수를 줬어요. 새엄마 남자 친구요. 근데 거기에 뭘 탔나 봐요.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병원에서 깨어났어요. 위세척을 했대요. 도대체 뭘 넣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아빠가 야간작업하러 나가면 꼭 그 돼지가 우리 집에 와서 잤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땐가. 밤에 그 돼지가 내 방에 들어와서 내 바지를 막 벗기려는 거예요. 그땐 뭘 하려고 했는지 몰랐는데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건 알았나 봐요. 비명을 질렀어요. 그 돼지가 내 입을 막았는데 소리를 듣고 새엄마가 내 방으로 왔어요. 그리고는 날 진짜 죽기 바로 직전까지 때렸어요. 미친년. 내가 그 돼지를 유혹했대요. 그때부터 할머니랑 같이 살게 됐어요. 있잖아요. 길거리에 덩치 크고 배 나온 남자들을 보면요. 칼로 배를 싹 갈라버리고 싶어요. 그러면 그 안에서 온갖 쓰레기가 다 튀어나올 것 같아요. 덩치가 크면 클수록 자극돼요."
살기 위한 살기가 애처로워 보였다.
"이렇게 심한 학대를 당했다니, 정말 끔찍하고 마음이 아프네요."
"왜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끔찍한 학대 이야기를 들을 때보다, 왜 마음이 아프냐는 이 한 마디가 더 당혹스러웠다. 무참한 폭력이 그녀의 공감능력을 무너트렸다.
정적을 깨고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근데요. 2년 전인가 엄마가 한 번 찾아왔어요. 그때 머리채를 잡아끌고 목을 그어버렸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눈물만 흘렸어요."
"근데요. 그렇게 누가 절 때렸던 게 기억나면 길에서 다니는 고양이들을 잡아서 죽였거든요. 근데 그 느낌이, 할머니랑 처음으로 같이 살게 된 날에 사탕을 처음 먹어봤거든요. 처음 사탕을 물었을 때 머릿속에서 찌릿하는 전기가 통했어요. 근데 고양이를 처음 죽였을 때 딱 그 전기가 느껴지는 거예요. 한동안 중독돼가지고 한 800마리쯤 죽였나 봐요. 철들고 나서는 묘지 만들어주고 기도해줬어요. 지금 생각하면 죄도 없는 애들인데."
'그러게. 죄 없는 너를 왜 그렇게 때렸을까.'
새엄마는 아이를 벌거벗기고 벨트를 들었다. 착. 아이는 울면서 도망가려고 발버둥 치지만 새엄마의 손에 다시 들어온다. 착. 아이는 비명을 지른다. 착. 아이의 등에 빨간 가로줄이 두껍게 새겨진다. 착. 빨간 반점이 촘촘히 올라온다. 착. 반점이 날카로운 선을 이룬다. 착. 빨간 선이 점점 보라색으로 달아오른다. 착. 피부 아래에 핏물이 고인다. 착. 실핏줄이 터진다. 착. 벨트가 피를 튀겨낸다. 착. 벨트에 피가 묻어 소리가 둔탁하다. 착. 아이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착. 아이는 숫자를 센다. 착. 하나. 착. 쓰레기 봉지를 뒤지던 고양이. 착. 둘. 못 먹어서 야윈 고양이. 착. 셋. 새끼를 밴 고양이. 착. 넷. 아기 고양이. 착. 다섯. 줄무늬가 까만 고양이. 착. 열. 스물. 착. 쉰. 백. 이백. 검은 고양이. 칠백. 착. 팔백. 숫자만 셀 뿐이지 이유도 아픔도 모른다. 아이의 등엔 폭력이 가른 자국이 남았고 아이는 그 자국 그대로 고양이의 배를 갈랐다. 아이는 어른이 한 짓을 따라 했을 뿐이다.
끝날 때 나는 그녀에게 그림이 그려진 휴지를 보여줬다.
"이거, 기억나요?"
"아뇨. 이게 뭔데요?"
"저번 시간에 이야기 나누고 히틀러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히틀러 아시죠? 잔인하게 사람들을 학살한. 그 사람도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엄청 학대를 당했대요. 그렇게 얻어맞고서는 결국 아픔을 느낄 줄 모르게 되고. 다른 사람의 아픔도 모르니까 그렇게 사람들을 죽였겠죠?"
"제가 제일 존경했던 사람이 히틀러였어요. 사람들을 이끄는 힘이 있잖아요. 근데 그 사람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거든요. 그 사람의 실체를 알고부터는 좋아하지 않게 됐어요."
"네. 그런데 학대를 받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인자가 되느냐. 다 그렇진 않아요. 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학대하는 부모 외에도 아이를 정말 사랑으로 보살펴주는 다른 사람이 있으면 그 아이가 삐뚤어질 확률은 낮아진대요. 서희님을 정말 사랑해줬던 사람. 혹시 있을까요?"
할머니. 그녀는 할머니라고 대답했다. 할머니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많이 이끌어냈다. 할머니께서 껴안아주시던 순간. 같이 텔레비전을 보던 순간. 같이 김치 담그던 순간. 그녀가 밤에 고열로 끙끙 앓을 때 할머니께서 물수건을 그녀의 이마에 올려주셨던 순간. 그녀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을 때 할머니께서 연고를 발라주시던 순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따뜻한 미역국이 올려진 생일상을 받았던 순간이라고 했다. 그 느낌을 그녀의 몸에 저장해 보게 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할미는 천사예요.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도 할미 생각하면 그렇게 못하겠어요. 내가 그러면 할머니가 힘드니까."
다음에 와서 그녀는 할머니의 사랑을 의심했다. 학대로부터 자신을 완전히 지켜주지 못했다고. 난 할머니에 대한 그녀의 기억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사랑해 주었던 다른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녀는 중고등학교 때 사귀었던 남자 친구를 생각해냈다. 글을 몰라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고 폭행당했던 그녀에게 그는 말과 글을 가르쳐 주었다. 책을 읽어주었다.
"근데요. '내면 아이'라는 책을 같이 읽은 적이 있어요. 그때 제 내면 아이를 봤었는데 엉망진창이었어요."
"내면 아이를 아시네요. 앞으로 다뤄보려고 했었는데. 내 마음속에 상처받은 채로 남아 있는 과거의 내 모습이에요."
"가끔 보여요."
"네. 많이 위로해 주시나요? 앞으로 저와 함께 많이 만나게 될 거예요."
"네. 가끔 안아주기도 하고."
스스로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이 그녀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뻤다.
"근데요. 2년 전에 헤어졌어요. 남자 친구는. 자꾸 죽이라고 해서"
마침 나는 그녀에게 환각에 대해 물어봤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그 악마는 옷장에서 처음 나왔다. 그로부터 한 1년 정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옷장 속에서 부탄가스를 마셨고, 그녀의 몸속에 들어간 악마는 그녀의 호흡과 함께 허공에 흩뿌려졌다.
"남자 친구랑 헤어질 때쯤 완전히 가스를 끊었는데 지금도 나타나요. 지금도 여기에 있어요. 선생님 뒤에."
"부탄가스가 웬 말이야. 무슨 80년대도 아니고. 그래서 그렇게 전형적이지가 않았구나. 서희님 이제 안 오신대요. 수급자 통과도 됐고. 아무래도 우리 속은 것 같아요. 말도 맨날 조금씩 바뀌었잖아요." 담당 직원이 나에게 말했다.
그녀는 전형적이지 않았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반사회성 인격장애, 조현병, 우울증, 약물 중독. 그 어떤 정신과적 병명을 갖다 붙이기 애매했다. 병명을 붙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그녀는 그저 학대받은 아이였다. 수많은 악마가 그녀의 뇌를 갉아먹었을 뿐이다.
그녀의 소망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따뜻한 가정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소녀로. 물리적으로 다시 태어날 순 없지만 노력하면 정신적으로 다시 태어날 순 있다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었다. 물론 난 그녀의 삶을 살지 않았기에 함부로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그녀는 악마의 충동에 사로잡히지 않게 노력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내면 아이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해친 생명에 대해 반성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아직 감정을 담고 있었다.
그러니 천사가 있다면 제발 이 아이에게 사랑을 주시길.
죽은 자들을 불쌍히 여기지 마라, 해리. 산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라. 그중에서도 사랑 없이 사는 사람들을 가장 불쌍하게 여기렴.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제7권 5, 조앤 롤링, 문학수첩, p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