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이곳에서 근무를 시작했을 때 사무실 창가에 조그만 화분이 하나 있었다. 그 화분 안에는 딱 내 새끼손가락만 한 모양의 얇고 볼품없는 선인장 하나가 꽂혀 있었다. 얇고 뾰족한 가시는 성기게 나있었고, 줄기 중간에는 곁줄기 둘이 양옆으로 나있었다. 화분은 군데군데 이가 나가 있었고 갈색 화장석 위로는 얇게 먼지가 쌓여 있었다. 곁줄기 중 하나는 원줄기와의 연결이 약하여 떨어질 것만 같았다. 누가 갖다 놓았는지도 모르는 이 선인장에 난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6개월 정도가 지났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한 여성 분과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악하고 위험한 존재라고 말했다. 그녀의 미래는 참담할 것이며 이런 힘든 세상에서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인지 치료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론 벡은 우울증 환자의 개인, 사회,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인지 패턴을 밝혔는데, 그녀의 핵심 신념이 이와 딱 맞아떨어졌다.
나는 그녀와 진료실에 있는 선인장이 서로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는 항상 가시를 세우고 있었지만 그 힘이 약해서 폭력 앞에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녀를 둘러싼 환경은 척박했다. 강한 햇빛과 약간의 물이 선인장에게 필요한 것처럼 그녀에게는 약간의 애정과 관심이 필요했지만, 그녀에게 그런 양분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선인장 줄기 하나가 떨어져 나갈 듯 말듯한 것처럼 그녀의 꿈과 삶의 의지도 꺾일 듯 말듯했다.
일단 나는 떨어질 것 같은 선인장의 작은 줄기를 잘라서 새로 심어주었다. 이로써 화분에는 선인장 두 줄기가 생겼다. 흙에 양분이 부족해 보이고 화장석은 선인장이 뿌리를 내리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았지만 일단은 별 수가 없었다. 그저 꼭 살아달라고, 뿌리를 내려달라고 기도했다.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녀에게 양분이 될만한 것을 하나둘씩 같이 찾아봤다. 그녀에게 홀로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을 같이 들어보고, 그녀가 좋아하는 책, 영화, 게임, 드라마, 음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의 욕구와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이런 것들이 과거의 상처를 잊을 만큼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순간 자체가 소중했다. 그녀 스스로는 부정할지 모르지만 이런 일상적인 행위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선인장 두 줄기는 날이 갈수록 자랐다. 대부분의 시간은 선인장이 원하는 대로 홀로 내버려 두었고, 아주 가끔 관심을 주었다. 어쩌다 한 번 물을 주었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창을 열어 햇빛과 바람을 쐬게 했다. 잘라서 다시 심었던 줄기는 내 셋째 손가락 길이만큼 길게 자랐다. 원래 있던 줄기에는 다시 양 갈래의 작은 줄기가 났고 크기도 커졌다. 기특했다. 살아있어서 기뻤다.
그러나 기쁜 순간도 잠시였다. 흙은 말라 있지 않았는데 줄기는 바싹 마른 것 같았고, 길이가 길어져서 그런지 줄기가 휘어지기 시작했다. 선인장이 자꾸 시들려고 하는 것 같았다. 물을 더 줄수록 상황은 악화되어서 뿌리가 드러났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흙을 깊게 파서 다시 심어주었다. 그 과정에서 선인장은 몇 번이나 쓰러졌다. 결국 간신히 줄기를 세웠다. 걱정했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기다렸다.
그녀의 상태는 좋아지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나빠지기 일쑤였다. 어느 날은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다가도, 어느 날은 끙끙거리면서 자기가 원하는 삶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고 했다. 살아갈 이유를 같이 찾아보며 설득도 해보았지만 방법은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선인장에 물을 한동안 주지 않고 그냥 두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줄기가 휘어진 채로 길게 자란 것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마음이 쓰러지고 일어나는 과정에서 그녀의 생각에도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그녀는 어딘가에서 본 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과 능력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꿈을 품고 간직하는 능력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자기는 아직 꿈을 간직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응원했다. 당장 실천한 힘이 부족할 뿐이라고. 꿈을 갖고 있으면 어떤 방식으로라도 표현이 된다고.
줄기가 커져서 고개를 많이 숙이긴 했지만 선인장은 잘 자랐다. 기특한 마음에 물을 한 번 줬는데, 큰 줄기의 뿌리가 갑자기 뽑혀 선인장이 푹 쓰러졌다. 그동안 뿌리가 많이 자랐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길이는 길어졌지만 여전히 굵기는 얇았던 것이다. 화분을 옮겨 심어야 하나 생각했는데, 검색을 해보니 선인장은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여 분갈이를 잘못하면 죽는다고 한다. 또다시 흙을 깊게 파내고 휘어진 줄기를 벽에 받혀서 쓰러지지 않게 막아두었다.
그녀는 상담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었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고, 직장에서 상사와 동료에게 심한 언어폭력을 당했던 그녀에게 과거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은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때리는 시늉을 하며 그녀에게 이겨내라고 강요하고 재촉했다. 남들은 힘든 일을 겪어도 털어내고 잘 사는데 왜 너만 유난을 떠는 것이냐고. 그녀의 뿌리는 그녀를 잘 지지해주지 못했다. 부모님의 말은 그녀의 가슴을 깊게 찔렀다. 나는 그녀의 부모님을 불러 치료에 도움이 되어달라며 주의사항을 당부하고 교육도 시켜보았다. 그녀가 부모님과 떨어져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도 모색해보았다. 그러나 환경은 쉽게 변하지 않았고 그녀의 다친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가족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건 힘든 일이죠."
"그렇게 방 안에만 처박혀 있을 거면 나가 죽으래요. 저 같은 건 살 가치가 없어요. 아무 쓸모가 없어요. 소멸해버렸으면 좋겠어요."
"글쎄요. 가치는 관계 속에서 생겨요. 하은님이 저한테 이렇게 꾸준히 찾아와서 힘든 이야기, 사는 이야기, 깨달은 이야기를 해주는 게 저에게는 큰 의미예요. 하은님이 없으면 저도 이 자리에서 가치 없는 존재예요. 적어도 저에게만큼은 하은님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존재예요."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선인장은 그 자리에서 여전히 휘어진 채 내 손보다 더 길게 자랐다. 뿌리가 뽑히는 일도 더 이상 없었다. 큰 줄기에 곁줄기들이 규칙적으로 계속 났다. 줄기들끼리 얽히고설킨 모습을 보니 투박하지만 참 아름다웠다.
그녀는 2년 넘게 꾸준히 나를 찾아왔다. 힘든 날도, 꽤 괜찮은 날도. 멈춰 있는 것만 같던 그녀의 삶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더불어 그녀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녀는 세상에 악한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었다. 여전히 악한 사람들이 많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또 그녀는 가족 안에서 그녀의 가치를 찾았다. 자신이 없으면 어머니는 외로울 것이라고 했다. 아픈 동생을 자기만큼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자기가 없으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매번 싸울 것이라고 했다. 고통과 좌절을 수반하긴 했지만 그녀의 생각이 조금씩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참 즐거웠다. 많이 비틀렸지만 누구보다 굳세고 강한 그녀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이 곳을 떠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는 서로 길들여졌기에 헤어지는 과정을 생각하면 참 아쉽다. 앞으로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선인장도, 그녀도, 나도 각자의 위치에서 아름답게 얽히고 비틀리고 쓰러지고 깨닫고 일어나기를 바란다.
땅을 갈고 파헤치면 모든 땅들은 상처받고 아파한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 피우는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레미제라블, 빅토르 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