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by 허용운

"나는 여름에 이렇게 장미 핀 걸 보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우리 아들이 15년 전 여름에 결혼하고 싶다고 여자를 데려왔는데, 여자애 가정 형편이 별로 좋지 않아서 제가 심하게 반대를 했어요. 결국엔 결혼을 안 했죠. 그런데 그 후로 아들이 직장도 안 다니고 맨날 술만 마시고 늦게 들어와요. 아들이랑 둘이서만 사는데 무슨 사고를 치고 다니진 않을지 걱정돼서 가슴이 벌렁벌렁거려요. 올해 마흔셋인데. 저는 맨날 아들을 위해서 기도해요. 아들이 올바른 길을 갔으면 좋겠는데 그게 내 맘대로 안되니까 너무 힘들어요."

"제 스트레스요? 지혜가 제대로 된 생활을 못하는 거죠. 저도 피곤해요. 좀 정상적으로 살아서 나갔으면 좋겠어요. 나가서 친구들도 사귀고 일도 하고 그래야지. 이건 뭐 맨날 방안에 처박혀 있으니까 제가 다 해줄 수밖에 없잖아요. 제가 걔 시간표까지 다 짜줘요. 그리고 제가 일 안 나갈 땐 그대로 하나 안 하나 지켜보고 도와주기도 하고. 지혜가 정상이 되는 거, 그게 제 바람이에요."

자식을 자신의 품에서 떼어내지 못하는 어머님들의 말씀이다. 이분들과 대화를 나눌 때 무언가가 내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을 받았다. 도저히 이분들께 공감을 해드릴 수가 없었다. 아직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오히려 이분들의 자식들에게 공감이 되어서 괴로웠다. '구속하고 강요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식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내가 본 독립의 현장은 피 튀기는 전쟁터와 흡사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문제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다. 내가 속한 임상 현장에서부터 결혼을 앞둔 내 친구들까지. 그리고 남의 이야기처럼 말했지만 우리 가족과 나조차도. 심지어는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그들이 남긴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고통받는 분들도 많았다. 자식들은 자신들의 길을 걷고 있는데 부모들은 그렇게 걷는 것이 아니라며 다그치고 있었다. 자식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사사건건 참견 못해서 안달이야. 내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좀 하지 마.”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은 엄만데 제가 힘들 때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어요. 정말 숨 막혀 미치겠어요.”
“내가 앞으로 평생 같이 살 사람인데 왜 아빠가 반대해. 아빠가 그 사람이랑 같이 살 거야?”
“저는 소설가가 꿈인데 엄마 아빠는 안된대요. 돈 못 번다고.”

"엄마가 항상 저를 봐주길 바랬어요. 저는 저의 만족이 아닌 엄마의 만족을 위해 여태껏 살았던 것 같아요."




나에겐 9살짜리 남자 조카 하나가 있다. 이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떼던 순간이 기억난다. 어느 날 이 아이가 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웃으면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마치 '삼촌, 이것 봐'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이 아이는 손을 바닥에서 떼어 무게 중심을 뒤로 옮기면서 쪼그려 앉더니 이내 엉거주춤하게 두 발로 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조그맣고 말랑말랑한 발을 옮겨 한 발 두 발 내딛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보고 나는 조카가 대견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아이는 말을 하고 자기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신발 신는 것을 도와주려고 하면 자기가 하겠다며 나의 손길을 밀쳐냈다. 혼자 포크로 과일을 찍어 먹고 수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길을 건널 때 더 이상 내 손을 잡지 않고 혼자 뛰어갔다. 초등학교 들어가서는 내가 놀러 가도 친구들과 놀다 오겠다며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점점 조카와 포옹하는 것이 어색해지는 순간이 왔다.

조카가 더 이상 애교를 부리지 않거나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것이 섭섭하긴 했지만, 아이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한 인간으로서 홀로 서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편으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누군가가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걸음 하나하나를 무조건적으로 믿고 지지하고 응원할 때 아이가 건강하게 독립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좋은 독립은 폭력이 난무하는 과정이 아닌 감격과 격려의 현장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자식들을 자신의 업보라 생각하는 어머님들과 이야기할 때 그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게 되었다.




장미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어머님과 상담을 하던 중이었다. 나는 흰 종이에 빨간 볼펜으로 한 줄을 쭉 그었다. 그다음 파란 볼펜을 들었다. 빨간 선의 한 점에서 시작하는 또 다른 선을 하나 쭉 그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빨간 선이 옥순님의 삶이라면 파란 선은 아드님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빨간 선과 파란 선이 만나는 이 지점은 참 소중한 순간이죠. 그런데 파란 선은 빨간 선에서부터 시작하긴 했지만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네요. 빨간 선도 마찬가지로 자기의 방향대로 나아가고 있고요. 아무리 노력해도 파란 선을 빨간 선과 완벽히 일치하게 그릴 수는 없을 거예요. 제가 종이를 한 번 들어볼게요. 빨간 선 위에서가 아니라 선 밖에서 한 번 볼게요. 이 두 선이 각자 뻗어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한 번 바라볼게요. "


어머님은 한참 종이를 쳐다보셨다.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아들을 놔줘야 된다는 말이죠? 알아요. 교회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이제 좀 놓으라고. 그런데 그게 잘 안 돼요. 너무 힘들게 낳고 기른 자식이라서. 남편도 먼저 일찍 갔고."


그 순간 나는 어머님의 눈에서 또 하나의 피 튀기는 장면을 보았다. 출산의 장면이었다. 엄마라는 한 세계는 자신의 일부로서 아기라는 다른 세계를 품는다. 그러다가 이 두 세계가 분리되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 느껴지는 고통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강도 높은 고통 중 하나이다. 산모와 아기 둘 다 두려운 순간이다. 산모는 아기를 더 몸속에 두고 싶은 마음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자신의 몸 밖으로 아기가 나오는 것이 무섭고 불안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기도 산모도 이 분리의 고통과 상처를 각자 견뎌내야만 자신들의 세계를 온전히 지켜낼 수가 있다. 심리적 독립의 과정도 어쩌면 이러한 마음의 산고를 무수히 느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님 또한 홀로 서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구나. 이미 완고하게 구축된 자신의 세계에서 전혀 다른 세계가 파생되어 떨어져 나가는 그 느낌이 얼마나 낯설고 고통스러운 것일까. 다른 세계라고 인정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겠다.' 나는 이 분께 미소를 지어보내며 눈으로 말씀드렸다. ‘잘 안 돼도 괜찮아요.’




나는 치료자로서 부모의 편도, 자식의 편도 들지 않으려고 한다. 각자의 속도와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잘 독립하는 것이라고 함부로 제안할 수도 없다. 다만 내 삶의 선 위에서 나와 마주친 분들께 독립의 고통을 공감해드리고 그들이 자신의 선을 잘 성찰하며 걸어나가기를 격려할 뿐이다. 처음 걸음마를 떼는 아기를 가슴 벅차게 바라보듯이, 출산 중인 산모의 손을 꼭 잡아주듯이, 세상에 나오려고 하는 아기에게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주문하듯이, 그렇게 내 방식대로 우리 모두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홀로서기를 응원한다.



"너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다. 너답게 사는 게 좋아. 네가 너다운 한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
<아직도 가야할 길, 스캇 펙, 율리시스,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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