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by 허용운

성폭력 피해자 상담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강의 자료 마지막 부분에 눈에 띄는 단어 하나가 있었다.

‘용서’

강의가 끝날 때쯤 강의자는 말했다. “용서는 참 어려운 일이죠. 그러나 피해자가 계속해서 가해자를 떠올리며 복수심에 휩싸인다면, 피해자는 심리적 감옥에 갇혀 평생 괴로워하게 됩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영적으로 묶이게 되죠. 진정한 복수는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기억과 감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서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입니다. 용서는 가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용서는 치유 과정에 있어서 필수적이라 할 수 있겠죠.”

나는 이 말을 듣고 흥분했다. '무슨 소리야. 일본군 '위안부'로 착취당했던 분들에게도 치유를 위해 용서하라고 할 수 있나.' 마침 그 날 인터넷으로 부산 동구 위안부 소녀상이 철거 조치된다는 뉴스를 봤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손님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려서 내원한 60대 여성이 있었다. 목에 가래 같은 것이 붙어서 뱉어지지가 않는다고 했다. 불쑥불쑥 열이 상체로 오른다고 했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고 했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했다. 화병의 신체 증상 같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이마와 미간에 주름이 잔뜩 지어있었다. 나는 그녀가 가슴에 담긴 화를 풀어낼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안전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그녀의 몸과 마음에 관심을 주었다.


그녀가 자신의 응어리진 마음을 말하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소곤소곤 나에게 말했다.

“조금 민망스럽긴 한데 의사 선생님이니깐 뭐. 우리 바깥양반이 70살이 넘었는데 밤마다 저를 괴롭혀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밤 7시만 되면 집에 들어와서는 나를 못살게 구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싫다고 빌어도. 7시만 되면 가슴이 막 두근거려요. 그 양반 구두 소리만 들어도 그렇고. 요즘에는 낮에도 갑자기 불안하고 두근거릴 때가 있어요. 막 이상한 체위를 요구해요. 요새 스마트폰 있잖아요. 그걸로 남자들끼리 막 이상한 동영상을 돌려보는지. 그런 걸 틀어놓고는. 자긴 섹시한 여자가 좋다고. 저보고 좀 섹시한 옷도 입고 그러래요. 목석같다고. 아니 70이 넘었는데 남자들은 늙어서도 그래요?”

나는 얼굴이 붉어져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어휴, 왜 그러실까요. 대체.”




우울증 진단을 받은 40대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보건소 직원에게 말했다. 보건소 직원은 그녀를 나에게 소개하여 주었다. 첫 대면을 했다. 그녀가 보이는 태도는 마음껏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그녀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말을 할 땐 벽에 걸린 액자나 시계만 보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하지 않고 주저하는 태도를 보였다. 처음이라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다음 번도, 또 그다음 번도 똑같았다.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상담실을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옆에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통통한 체격에 단발머리를 한 소녀였다. 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딸의 팔짱을 끼고 걸어갔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한 달 정도 상담을 했고 우리는 서로 익숙해졌다. 요통을 호소하는 그녀에게 침 치료도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료실 침대 위에 옆으로 누워 있던 그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주었다.

“제 딸이 중학교 1학년 때 남편한테 성폭행을 당했어요. 제가 딸아이한테 그 이야기를 듣고 경찰에 신고했어요. 그래서 지금 남편은 교도소 가 있어요. 8년형 받고 지금 4년 지났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활이 너무 힘드니까 괜히 신고했나 싶기도 하고. 남편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어요. 지금 미용 기술 배우고 있긴 한데 요새 누가 저 같은 아줌마를 써주겠어요.”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다는 진부한 표현 말고는 내 심정을 표현할 말이 없었다. 충격만 남기고 그녀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내가 첫 번째 사례의 여성이라면 부부라는 명목으로 강간을 행하는 남편을 용서할 수 있을까. 쾌락을 위해 나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빼앗고 나를 인형 취급한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내 몸이 다 타들어가도록 꺼지지 않는 화를 만들어 낸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이 상황을 참고 산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자식들 앞에 부끄러운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내가 두 번째 사례의 딸이라면 천 번 만 번 씻어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남편을 기다리는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 내 푸르렀던 몸과 마음을 절망과 수치심으로 얼룩지게 만든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까. 만약 4년 후에 다시 아빠가 내 앞에 나타나 똑같은 짓을 하려고 한다면.




물론 강의자는 치유의 가장 마지막 단계로써 용서를 말했다. 책이나 논문을 찾아보면 많은 성폭력 생존자들이 용서를 통해 자신을 갉아먹은 기억과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분노가 극에 달해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에야 비로소 살기 위해 용서가 머릿속에 떠오른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효용 가치를 떠나서 용서는 피해자가 위험 상황에서 온전히 벗어나 충분히 강해졌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접한 사람들은 아직도 폭력의 상황에 노출되어 있었다. 실제로 대다수의 성폭력 피해자, 특히 친족 성폭력, 부부 성폭력, 연인 간 성폭력, 교내 성폭력, 직장 내 성폭력의 피해자 중에는 폭력의 현장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첫 번째 사례처럼 성폭력을 감내하고 사는 피해자가 많으며, 두 번째 사례처럼 가해자에게 법적 조치가 취해졌다 하더라도 피해자는 잠재적인 위험 때문에 불안에 떨어야 한다. 가해자의 인식과 행동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피해자는 아직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또한 피해자들은 가해자, 가족, 직장, 친구, 언론, 경찰, 법조인, 정치인, 종교인, 상담자 등으로부터 용서를 강요받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면 망각, 묵인, 화해, 사면을 강요받는다. 피해자에게 또 다른 폭력이다. 결국 이들에게는 용서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폭력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서는 내가 느꼈던 것처럼 반감을 줄 수 있는 단어이다. 그들에게 용서를 말해서는 안된다. 용서는 오직 생존자만이 쓸 수 있는 단어이고 용서를 할지 말지는 생존자가 정하는 것이다. 꼭 해야 한다는 법도 없다. 만약 그들이 폭력 현장에서 빠져나왔다면 그들의 옆에서 사랑을 주는 것이 먼저다. 고통을 품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
-자크 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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