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없으니까

by 허용운


동의보감에 이런 부분이 있다.

탈영실정증(脫營失精證)

<내경>에서 말하길, 전에는 귀하였으나 나중에 천하게 된 것을 탈영(脫營)이라 하고, 전에는 부유했으나 나중에 가난해진 것을 실정(失精)이라 한다. 비록 사기(邪氣)가 들어오지 않아도 병이 속에서 생겨 몸이 날로 축나고 기(氣)가 허하며 정(精)이 없어진다. (...) 그 증상은 입맛이 없고 마음이 고단하여 몸이 마르는 것이다.


학생 때는 그저 가볍게 읽고 지나가는 글귀에 불과했다. 그러나 실제 보건소에서 만난 수많은 몸은 저 문장을 떠오르게 했다. 서울에서 부유하게 살다가 돈과 직장을 잃고 내가 일하는 경기도 지역으로 떠밀려 온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모 기업의 사장이었으나 IMF 때 부도가 나서 이곳에 온 A씨, 땅부자였으나 희귀병을 앓는 자식의 병원비 때문에 갖고 있던 땅을 모두 팔고 이곳에 온 B씨, 사업이 잘 되어서 또 다른 사업장을 차리려다 부동산 사기를 당해 이곳에 온 C씨, 대기업 회장의 첩으로 살면서 돈을 펑펑 쓰다가 어느 날 내쫓겨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이곳에 온 D씨. 그 유형도 다양하다.


곳간이 비고 처지가 초라해지면 무기력과 불행의 수렁에 빠지는 것이 당연지사다. 게다가 탈영실정증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불행은 원래부터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불행과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그들은 가지지 못해서 불행하기도 하지만 가졌던 것을 잊지 못해서 더 불행했다. 이미 초콜릿의 단맛을 알게 된 아이가 평생 초콜릿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 것처럼.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돈과 명예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사기를 당한 경우엔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으로 치를 떨었다. 부유할 땐 달라붙었다가 가난해지자 등 돌리는 주위 사람들을 보고 그들은 외로움과 허망함에 사무쳤다. 다양한 감정이 그들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었다.


돈과 지위.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르고 있는 고통의 굴레. 같은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가난이 부끄러웠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22살에 그는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갔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식당, 가라오케, 호텔 등에 취직해서 일했다. 그러다 운 좋게 고급 한식당을 하나 운영하게 되었다. 그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잘 파악했다. 그의 음식은 일본인의 입맛과 취향에 잘 맞았다. 직원들도 잘 썼다. 점점 입소문이 났다.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식당은 소위 대박이 났다. 10년 동안 한자리에서 일했다. 아쉬울 것 없는 생활을 했다. 사고 싶은 것은 다 살 수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암에 걸려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형과 누나는 어머니를 돌볼 형편이 안됐다. 그는 결국 가게를 접고 한국으로 왔다. 가끔 연락하고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연락이 왔다. 동창은 그에게 음식점 동업을 해보자고 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해 본 적은 없기에 친구와 함께 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는 친구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러나 사업을 준비하는 도중에 친구는 투자금을 횡령하여 잠적했다. 한동안 망연자실해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그는 혼자 식당을 차려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엔 상가 분양 사기를 당했다. 게다가 사놓았던 부동산은 정부 정책에 의해 가치가 폭락한 세금 도둑이 되었다. 매형과 누나는 주식으로 돈을 불려준다며 그의 돈을 가져가서는 그대로 도망쳤다. 형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그에게 술값을 구걸했다. 그는 형에게 집 한 채를 사주고 인연을 끊었다. 악재가 겹치면서 그의 주머니는 점점 비었다. 주머니가 비면 또 왜 그렇게 아픈지. 당뇨병이 생겼고 공황 장애와 우울증이 왔다. 만성적인 편두통, 요통, 위경련이 생겼다. 배신감에 이를 갈아서 그런가. 치아가 시리다가 이내 빠져버렸다.


왜 이 불행의 땅에 다시 온 것일까. 왜 그렇게 바보같이 당했을까. 어떻게 친구라는 놈이 그런 짓을 했을까. 형제들은 왜 하나같이 그 모양일까. 돈이 많을 땐 그렇게 주변에서 떠받들어 주더니 지금은 왜 아무도 내 곁에 없는 것일까. 그는 삶의 의욕을 잃었다. 어린 시절 그렇게 원했던 부자 소리 한 번은 들어봤으니 지금 당장 죽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비가 예쁘게 사선을 그리며 창문에 찍혔다. 그러다 점점 비가 세차게 왔고 창문이 비에 난도질당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그는 칼을 들었다. 자신의 손목에 빗물 자국을 새겨보고 싶었다.




그는 만성적인 편두통 때문에 나에게 왔다. 머릿속에 끈이 얽히고설켜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 끈이 툭 끊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일단 그 끈이 어떻게 생겼는지 지켜보자고 설득했다. 그는 그 끈에 묶인 사연을 이야기했다. 과거의 가난, 과거의 영광, 과거의 배신, 과거의 수난이 꼬여 있었다.


한 가지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우리 마음을 큰 원이라고 표현했을 때 그 안에는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방이 있습니다. 그 방이라는 것은 현재 떠오르는 모든 생각, 감정, 느낌을 말해요.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것. 그 어떤 것도 괜찮습니다. 그 방을 그려보고, 방에 이름도 붙여보는 겁니다."

그는 종이 위에 큰 원을 그렸다. 그리고 그 안을 몇 가닥의 선으로 나눴다. 선으로 나눈 공간마다 하나씩 이름을 달았다.

'돈, 집, 가족, 정치, 야구, 아프다'

각 방에 대한 이야기를 다 나누고 난 후, 나는 종이를 들어 그에게 마음의 방을 다시 보여주었다.

"어떤 방이 가장 눈에 들어오나요?" 내가 그에게 물었다.

"돈이요. 생활고. 이걸 감추기 위해 다른 방이 있는 것 같아요." 그가 대답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나에게 다시 말했다.

"이렇게 하니까 제 문제가 뭔지 알게 된 것 같아요. 돈이 제 마음을 지배하게 놔두고 싶지 않아요."


그 후로 그의 두통은 사라졌다. 그러나 생활고는 그의 마음을 수시로 장악하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게 했다. 그가 사는 유일한 이유인 아들, 아무 목적도 없이 부모님이 그에게 남겨준 사랑, 돈을 벌어 부모님 호강시켜드렸던 기억, 텔레비전으로 야구와 뉴스를 보는 즐거움, 그가 이 지역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와준 시청 직원들, 그의 몸과 마음을 신경 써주는 보건소 직원들. 잃을 것이 없다는 그의 입버릇과는 다르게 그에게는 잃을 수 없는 것이 많았다.


'존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돈에 지배당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그가, 과거를 뒤로하고 현재 자신이 가진 것에 집중하려는 그가 참 멋있었다. 내가 돈과 지위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한 인간 그 자체로서 빛나는 그들의 가치와 존엄함에 감탄하는 것뿐이다.



화폐의 가치를 절대시 하는 자본주의는 누구에게나 다양한 형태의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자본주의는 우리 본성에 저절로 맞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게 배워야만 하는 경제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 강신주, 프로네시스,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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