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잘못이 아니야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3)

by 허용운

30대 초반의 그녀가 진료실 문을 열고 느릿느릿 들어왔을 때 나는 긴장했다. 보건소에서 노인 환자를 주로 보다 보니 젊은 사람이 오면 일단 조심스러워지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그녀의 오른쪽 눈은 사시여서 그녀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아리송했다.
"몸이 차다고 해서 왔어요."
"증상이 어떠신데요?"
"다른 한의원 원장님이 그러셨어요. 몸이 차다고."
추위를 느끼는 것인가. 손발이 찬 것인가. 전반적인 신체 기능이 떨어진 것인가. 몸이 차면 찬 것이지 차다고 했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내가 어떤 것을 해주길 원하는가.
"그 원장님은 무엇을 보고 몸이 차다고 했을까요? 몸이 실제로 차다고 느끼세요? 추우세요?"
"음.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본인이 느끼기에 어떤 증상이 있어요?"
"머리도 조금 어지럽고 음식을 먹으면 꼭 모래알 씹는 것 같고. 음. 자궁이 조금 약한 것 같아요."
질문의 핵심을 피해 가는 그녀의 대답은 내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또한 그녀의 대답은 너무 느렸다. 질문을 받으면 그녀는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말도 조금씩 더듬었다. 갈수록 그녀의 대답을 기다려주기가 힘들었다. 내 목소리는 그녀의 말을 날카롭게 잘라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질문을 해도 그녀가 무엇을 해소하고 싶어서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그녀가 말했다.
"결혼한 지 4년 정도 됐는데 아기가 안 생겨요."
그 말을 듣자 격앙되어 가던 내 목소리가 한순간에 수그러들었다.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차근차근 그녀에게 난임에 대해 질문했다. 월경이나 호르몬 수치는 정상적이었고 자궁근종이 있으나 크게 문제 될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혹시 심리적으로 힘든 점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자꾸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2개월 전부터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많이 싸웠는데 그 영향으로 불안증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그녀의 분위기, 행동, 말투, 표정에서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녀가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을. 나는 그녀가 무엇을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은지 모른 채 그녀의 몸 상태에 맞춰 침 시술을 했다. 그녀에게 다음 예약 날짜에 꼭 올 것을 당부했다.




그녀는 예약 날짜를 지키진 않았지만 2주 뒤에 다시 진료실을 찾아왔다. 그녀는 진료실과 내가 조금 익숙해진 것처럼 보였다. 저번보다는 표정이 조금 더 밝아졌다. 대화 도중에 남편 흉을 보면서 웃기도 했다. 컨디션이 괜찮아 보였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심리적인 문제에 다가가 보았다.
"부모님께서 엄청 심하게 싸우셨나 봐요. 우울증 약을 드실 정도면."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어릴 때 부모님을 생각하면 싸우는 모습밖에 생각나지 않아요. 두 분 다 성격이 불같아서 막 서로 소리 지르고 아빠는 분에 못 이겨서 집안 물건 던지고. 저는 눈치 보다가 싸움이 끝나서 엄마한테 다가가면 엄마는 또 저한테 소리 지르거나 짜증 내고. 저는 중간에서 너무 힘들었어요. 아빠는 달래야 하고 엄마는 불쌍하고. 차라리 이혼을 하지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지난번 그녀에게 날카롭게 대했던 것이 굉장히 미안했다. 그땐 눈의 초점을 알 수 없어서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그녀의 왼쪽 눈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관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부모님에게 하듯 습관처럼 나의 눈치를 봤을 것이다.

"불안한 마음은 어릴 때부터 계속 있었을 것 같은데 약을 먹기 시작한 건 두세 달밖에 되지 않았네요? 혹시 병원을 가게 된 특별한 계기 같은 것이 있었나요? "
"어릴 때부터 조금 우울한 성향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계기가 있긴 해요. 남편이랑 밥을 먹다가 약간 말다툼을 했는데 남편이 실수로 컵을 깼어요. 그런데 제 몸이 안 움직이는 거예요. 순간 얼어붙었어요. 그러면서 막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중에 이 사람이 화나면 우리 아빠처럼 집안 물건을 집어던지지 않을지.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나를 버리진 않을지. 자꾸 심장이 두근거리고. 그래서 병원에 갔어요."




한두 번 오고 말 줄 알았던 그녀는 계속해서 진료실을 찾아왔다. 그러는 동안 그녀와 나 사이에는 안전한 관계가 만들어졌다. 나는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그녀의 불안한 내면 아이를 만나보기로 했다.

"먼저 눈을 살짝 감아볼게요. 혹시 지금 이 순간에 기억나는 장면이 있을까요?"
"가족들끼리 밥을 먹고 있는데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아요. 엄마가 아빠한테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로 쏘아붙이고 아빠는 욱해요. 점점 두 사람 사이에 소리가 커지더니 아빠가 숟가락을 식탁에 탁 놔요. 본격적으로 싸움이 시작돼요. 저랑 제 동생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밥도 못 먹고 방에도 못 들어가고 그대로 있어요. 그러다가 아빠가 숟가락으로 찬장을 맞췄는데 유리가 깨졌어요."
"지금 보이는 희진님은 몇 살 정도 되어 보여요?"
"9살?"
"9살 희진님이 식탁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얼어버렸네요. 많이 무섭구나. 챙겨야 하는 동생도 있는데. 일단 그 자리를 뜨게 하면 좋겠는데 가 볼만한 안전한 장소가 있을까요?
"동생이랑 같이 방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몸을 못 움직이는 것 같아요."
"그럼 성인이 된 희진님이 그 장면에 들어가서 9살짜리 희진님과 동생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 볼까요? 아니면 제가 데리고 들어가 볼까요?"
"선생님이 해주세요."
"네. 방으로 들어갔으니까 이제 호흡을 크게 한 번 해볼게요. 조금 안심이 되네요. 이제 어른인 희진님께서 한 번 9살짜리 희진님에게 다가가 볼까요? 어때 보여요?"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아요. 불안해하고 무서워하고."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요?"
"그냥 안아주고 싶어요. 괜찮다고."
"네. 그냥 안아주세요. 동생도 같이 달래주고."
"밖에서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요. 그런데 이렇게 방에서 보니까 조금 분리가 되는 느낌이 드네요. 그냥 이 싸움이 엄마, 아빠 둘만의 문제 같아요. 제 문제가 아니라"
"그 말은, 지금까지 부모님의 싸움에 항상 희진님이 끼어있었다고 생각했다는 거네요. 희진님 때문에 두 분이서 싸우는 것 같이 느끼기도 하고."
"네.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랬네요."
"그러면 9살 희진님에게 지금 깨달은 내용을 한 번 전해줘 보실래요? 희진아 많이 무서웠구나. 부모님께서 일하시면서 많이 힘드셨나 봐. 그래도 스트레스를 희진이 보는 앞에서 푸는 건 잘못된 거지.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부모가 싸우는 장면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이 학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리적 폭행이나 성학대처럼 아이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해지는 행위가 아니라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부모가 서로 상호작용하다 보면 싸울 수 있다. 그러나 아이가 보는 앞에서 부모가 싸운다면 그것은 분명 엄청난 학대이다. 게다가 심한 폭언, 물리적 폭행, 재물 파손 등이 동반된다면 그것은 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학습장애, 언어장애, 집중력 저하, 불안, 우울, 공격적 성향, 자존감 결여, 대인관계 부적응 등 다양한 증상을 갖게 될 수 있다.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이고 안전 기지이다. 아이는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런 부모가 서로 싸운다면 그것은 아이의 안식처가 위협받는 일이다.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생존의 위협을 받았을 때 동물들은 보통 공격하거나 피하는 반응(fight or flight)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반응이 더 있다. 얼어붙는 반응(freeze)이다. 아이들은 피하거나 공격할 힘이 부족하다. 방으로 들어가거나 부모에게 그만하라며 대들 수 없다. 부모가 싸우면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다. 아이들은 너무나 순수해서 부모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한다. 아이는 폭력의 현장을 그대로 지켜보면서 부모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과 행동을 자신의 몸 안에 받아들인다. 아이는 마치 자신이 싸운 것처럼 마음 아파한다. 그러면서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싸움의 원인 속에 자신을 끼워 넣는다. 부모는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에게 죄책감의 굴레를 씌워주며 그릇된 효도의 의무를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잊지 못할 상처를 주었다면 애써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 억지로 상처를 참을 필요가 없다. 힘들게 몸의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다. 네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어린 아이는 부모의 비합리적인 행동을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그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또 거기에 저항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예속과 강제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 고통을 대리인들, 다시 말해 자기 배우자와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느낀다. 진실을 인식하려고 하면,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 느꼈던 무의식적인 불안이 그를 저지한다.
<폭력의 기억,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앨리스 밀러/양철북/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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