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안 살 거야."
어릴 적, 가족들과 어떤 드라마를 보다가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드라마 속 치매 환자 역할을 맡은 배우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 배우는 벽에 똥칠을 하고, 과자를 달라고 아기처럼 떼쓰며, 극 중 며느리가 자기 물건을 훔쳐갔다면서 며느리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나중에는 집을 나가서 들어오지 않자 온 가족이 찾아 나서기까지 했다. 정말 많은 드라마나 영화, 책에서 알츠하이머 환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매체에서 보여주는 치매 환자의 모습은 대부분 너무나 비참해 보인다. 내 어릴 적 어머니의 마음처럼, 내가 평생동안 정말 가장 걸리고 싶지 않은 단 하나의 질병은, 알츠하이머이다.
가정 방문 진료를 맡게 된 후 처음으로 가게 된 집이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 차트를 확인하니 ‘치매’라는 단어가 쓰여 있다. 치매 환자는 벽에 똥칠을 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인지 이 집에서 왠지 고약한 냄새가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고약한 냄새 같은 건 나지 않았다. 집안은 어두웠으나 식구들이 많아서 그런지 아늑한 느낌을 받았다. 대상자는 거실에 큰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흰 잔털만이 남아 있었고, 이불 밖으로 빼꼼 나온 얼굴은 얼핏 봤을 때 무엇이 눈코입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주름져 있었다. 그의 발밑에는 부인이 지친 기색을 여실히 드러낸 채 앉아있었다. 그의 머리맡에는 간병인이 짝다리를 짚고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서 있었다. 그의 오른쪽에는 아들과 손자가 믿음직스럽게 앉아있었다. 내가 그의 왼쪽에 앉자 아들과 손자는 그에게 조금 있다 보자고 인사하며 집을 나갔다.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나는 그의 이불을 살짝 젖혔다.
“추워.”
그의 입에서 기운없이 칭얼대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나왔고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는 먼저 머리 중앙에 침을 하나 꽂았다.
“아파.”
그는 눈을 감은 채로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하나만 더 놓을게요.”
“아파. 아파.”
그의 발버둥은 더 심해졌고 그의 머리에는 허무하게 두 가닥의 침이 매달려 있었다. 동기가 없는 자에게 나의 행위는 그저 고통을 더해주는 것에 불과했다. 나는 어깨가 너무 아프다고 호소하는 부인에게로 다가가 침 시술을 했다.
그 후, 두 달만에 그 집을 찾아갔다. 집안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다만 달라진 건 그의 병태였다. 그는 눈을 감은 채로 몸을 떨고 있었다. 더 이상 ‘추워’ 내지는 ‘아파’라는 말조차 내뱉지 못했다. 부인은 그의 발치에 앉아 딱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한번 봤다. 부인에게 다가가 침을 맞겠냐고 물었으나, 그녀는 요즘 매일 근처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는다고 말했다. 왜 이렇게 오래 나타나지 않았냐는 투정의 표현이다. 내가 말했다.
“제가 더 이상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네요.”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오는 발걸음이 그리 무겁지 않았다. 가족의 마음이야 요동칠지 모르지만, 제삼자가 본 치매라는 병의 마지막은 예상밖에 고요했다. 게다가 곁을 다정히 지켜주는 가족까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보건소에서 일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할머니 한 분이 나에게 오셨다. 그분께선 진료실 앞을 서성거리며 치료를 받을 수 있냐고 물으셨다. 펑퍼짐한 검은 바지와 진흙이 묻어 더러워진 흰색 운동화 사이로 보이는 종아리는 너무나 앙상했다. 얼굴 피부는 뼈 위로 녹아 흘러내린 듯 탄력없이 주름져 있었다. 허리가 약간 굽어져 있는 상태로 할머니는 나를 위로 올려다보았다. 할머니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가득했지만, 번뜩이는 큰 두 눈알과 보라색으로 혈관이 비치는 눈두덩을 보고 있자니 무서운 느낌마저 들었다.
"그럼요. 들어오세요."
나는 환자 침대로 할머니를 안내했고 그분께선 연신 나에게 감사하다고 하셨다. 그녀의 목소리는 말괄량이 소녀의 것과 같이 들뜨고 유쾌했다. 할머니께서는 침대에 옆으로 누우시더니 다짜고짜 바지 한쪽을 내리셨다. 분홍색 바탕에 보라색 점이 찍힌 팬티도 마저 내리셨다. 한쪽만 내리셨지만 실제로는 검게 착색된 엉덩이 주름까지 다 보일 정도로 하의가 많이 내려갔다.
"어머, 총각일 텐데 어쩌나. 선생님이니까."
할머니께선 키득키득 웃으시며 나에게 당신의 엉덩이를 까보인 이유를 말해주셨다. 할머니께선 종이, 병, 캔 같은 재활용품을 주으러 다니는 일을 하시는데, 2달 전에 빈 캔을 납작하게 만들려고 밟다가 오른쪽 고관절이 아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형외과에서 X-ray나 MRI를 찍었지만 정상 소견만 들었다고 하셨다. 내가 할 수 있는 치료를 시작했다. 치료를 받고 나가시면서 할머니께선 하회탈 얼굴을 만들어 헤죽헤죽 웃으셨다.
"아이고, 침 맞고 나니까 아주 시원~하네요. 가격은 얼마예요?"
"65세 이상은 무료입니다."
"어머나, 세상에! 아이고, 감사합니다."
할머니께서는 나뭇가지 같은 두 손을 신나게 탁탁 마주치며 진료실 밖으로 나가셨다.
"침 맞을 땐 시원한데 집에 가니까 다시 아파요. 어쩌나 자꾸 와서."
할머니의 웃음 속엔 미안함이 녹아 있었다. 그렇게 1년 반 정도를 일주일에 2~3번씩 꾸준히 오셨다. 이 곳을 찾아오는 많은 노인들의 병이 그렇듯 할머니의 병도 차도는 크지 않았다. 치료하기에도 점점 지치고 지겨워졌다. 점점 대화도 줄어 나중에는 내가 뱉는 말이 '침 놓을게요. 15분 맞고 계실게요'가 다였다.
그 이후 6개월 동안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할머니의 내원 빈도가 줄었다. 그 이후엔 전혀 오지 않으셨다. 안 오시는 이유가 약간 궁금하긴 했으나 그리 신경쓰이진 않았다. 그러다가 나의 계약 만료가 3개월 남은 시점에 할머니께서 갑자기 찾아오셨다. 조금 더 핼쑥해진 얼굴이었다. 목소리는 들뜨다 못해 초조하고 떨렸다.
"아이고, 선생님. 오랜만에 왔어요. 지금 침 맞을 수 있죠? 감사합니다."
침대로 돌진하려는 할머니를 내가 막았다.
"지금 환자분들 다 들어가 계세요. 저희 예약제로 하는 거 아시잖아요. 내일도 예약이 꽉 차서 내일모레, 수요일 이 시간으로 잡아드릴게요."
"그러지 말고 좀 해줘요."
"해드리고 싶어도 정말 자리가 없어요. 내일모레 오시면 잘해드릴게요."
"아이고, 미안합니다."
할머니께서는 수요일이 아닌 그다음 주 월요일에 오셨고, 나는 또 할머니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두 번 정도 더 반복되었다. 나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할머니께 보건소에서 시행하는 치매선별검사(K-MMSE; 한국형 간이 정신상태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유드렸다. 할머니께선 또 연신 감사하다 하시며 보건소 직원에게로 가셨다. 할머니를 뵌 보건소 직원은 나에게 내선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정희 할머니 이미 반년 전에 치매 진단받았어요. 검사 또 하실 필요 없으세요."
계약 기간 만료가 1달 남은 시점에서 나는 치매 검사를 담당하는 보건소 직원에게 할머니의 소식을 물었다. 장애를 가진 아들과 단둘이 사셨는데 할머니께서 자주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되어, 배 다른 아들이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냈다고 했다.
할머니께선 마지막 순간이 오기도 전에, 진작에 나를 잊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이상하면서도 따뜻했던 모습을, 그 당시 차가웠던 나의 모습을, 소중한 개인이 외롭게 잊히는 비참한 현실을, 그리고 할머니께서 느끼셨을 고통을 도저히 잊을 수 없어서 이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