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자를 위하여

by 허용운

"계세요?" 닫힌 문을 세게 두들겨봤다.

"계세요?" 초인종을 눌러봤다.

조용했다. 분명 3시에 방문하겠다고 연락드렸었다. 기록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다시 한번 전화해봤지만 신호음만 한없이 울릴 뿐이었다. 빨간색 도어록을 노려봤다. 관자놀이가 띵하고 미간이 무거워졌다. 문에서 두 발자국 떨어졌다. 분홍색의 문에는 검은 그을음이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문 중앙 위쪽엔 교회 이름이 적힌 초록색 십자가가 붙어 있었고, 그 밑에는 외시경이 나를 놀리듯이 달려있었다. 다가가서 이 작은 구멍 안을 들여다봤다. 흰 벽만 보였다. 눈을 구멍에 댄 채 문에게 속삭이듯이 중얼거렸다. "짜증나"


방문진료사업은 보건소에서 몇 년 전 손을 뗀 사업이다. 더 이상 신청자는 받지 않고 기존에 등록된 대상자들에게만 한 달에 한 번 정도 봉사활동 격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나 의료시설과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그 수혜대상인데, 의료시설이 아닌 낯선 이의 집에서 진찰하고 시술하는 것은 의사의 입장에서 참 불편하고 찝찝하다.


주먹으로 문을 한 대 쾅 치고 보건소로 돌아가려고 뒤돌아섰다.

"2184예요. 누르고 들어오세요." 안에서 희미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집 안에 있으면서 대답도 없고 문도 안 열어주고 뭐 하는 거야.'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왼쪽 시야에는 거실과 주방이 보였고 오른쪽 면에는 방문이 두 개 있었다. 집은 깔끔했다. 현관에 신발이 없었다. 그냥 빈 집 같았다.

"여기로 들어오세요." 오른쪽 두 방 중에 더 멀리 있는 방에서 소리가 들렸다.


방에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환자 침대와 침대에 설치된 내 키만한 평행봉, 그리고 그 안에 가만 누워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한 할아버지였다. 침대와 평행봉이 이루는 공간을 유리로 덮으면 꼭 인체 모형 전시를 보는 느낌일 것이다. 가볍게 인사를 먼저 하고 침대의 맞은편 벽에 붙어있는 선반에 짐을 풀었다. 할아버지의 시선을 피해 등을 돌리고 있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할아버지께서 물으셨다.

"네?" 왠지 당혹스러운 물음이었다. 돌아서서 대답은 하되 내 이름을 알아들을 수 없도록 발음을 흐렸다. 할아버지께서는 침대 근처에 있는 탁자에서 수첩 하나를 들어 펼쳐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예전에 오신 선생님은 ooo선생님이셨는데. 11월 1일에 오시고, 12월 13일에 오시고, 2월 2일에 오시고. 그러고 7개월 만에 오시는 거네요." 목소리에 원망이 섞여있는 듯했다.

'이름과 방문 날짜를 다 적어놓고 계시다니 정말 소름끼친다.' 나는 생각했다.

"네. 사람이 바뀌는 시기였어요. 진료실이 바빠서 잘 못 와요. 어디가 불편하셨어요?"

내가 원망을 들어줄 이유는 없다.


"20년 전인가 허리 수술하고 나서 꼼짝도 못 하고 이 상태 그대로 있어요. 다리가 마비돼서 움직이지도 못해요. 감각도 없고. 대변도 안 나와요. 잠도 새벽에 깨면 못 자고 그냥 새요."

자조적이면서도 체념하는 듯한 말투였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상태를 살폈다. 배에는 소변을 배출시키는 카테터가 연결되어 있었다. 소변줄이 얼마나 오래된 건지 관 안에는 누렇고 허연 찌꺼기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강직이 온 두 다리는 원래 한 다리였던 것처럼 꼬여서 꼭 붙어 있었다. 알코올 솜으로 다리를 잡고 풀어보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왜 집안에 있으면서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는지 이제야 이해했다. 열어주지 못한 것이겠지. 진료실에서는 환자의 증상만을 전해 듣지만, 이렇게 가정방문을 하면 환자의 불편한 일상생활을 직접 보고 피부로 느끼게 된다. 조금 더 환자의 삶에, 환자의 고통에 다가가서 관여하게 된다. 이 느낌이 처음엔 많이 불편했다.




두 번째 방문은 한결 수월했다. 집 비밀번호도 알고 있고 할아버지께서 항상 집안에 계시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저번에 침 맞고 다리 감각이 좋아졌다고 하셨다. 환자의 '좋아졌다'는 말은 의사를 기분 좋게 한다. 의사에게 대접받는 방법은 쉽다. 의사의 행위가 나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주었는지 간단히 말해주면 된다. 그런 종류의 말은 의사의 내재적 동기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이번엔 조금 더 사적인 대화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가정방문 할 때 대화를 유도하는 가장 좋은 소재는 사진이다. 방문진료를 하면서 벽에 사진 한 장 걸리지 않은 집을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소중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기 마련이다. 최근에 찍은 것 같은 가족사진이나 손자 사진이 가장 좋다. 자식들과의 교류가 잘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친구들이나 자녀들과 여행 가서 찍은 사진도 좋다. 이런 사진이 걸린 집에 가면 마음이 편하다. 사진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쭤보면 그때부터 이야기가 쉴 새 없다. 그러나 자식 사진이 없거나 너무나 오래된 가족사진이 걸려있는 경우, 또 배우자 사진이 있는데 혼자 사시는 분들은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사별한 배우자, 먼저 보낸 자식들, 몇 년 동안 찾아오지도 않는 자식들에 대한 아픈 감정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할아버지의 경우는 안타깝게도 후자였다. 선반이 있는 벽면에는 온통 액자가 걸려 있었는데 대부분이 아내 분의 사진이었다. 가장 위에는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초상화 속 주인공은 단정한 파마머리를 하고 노란색 수가 놓인 주황색 한복을 입고 있었다. 나이는 3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였다. 얼굴은 너무 갸름하지도 너무 넓적하지도 않은 둥근 얼굴이었고, 쌍꺼풀 없는 동양적인 눈이 그려져 있었다. 피부는 하얗게, 입술은 빨갛게 칠해져 있었으며 옅은 미소가 돋보였다. 할아버지께서 고개를 돌려 보시면 바로 보일 만한 크기와 위치였다. 그 아래에는 젊은 시절 부부가 같이 남긴 추억이 걸려 있었다.

"혼자, 지내시는 건가요?"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네. 우리 마누라는 몇 년 전에 죽었어요." 할아버지께서 눈을 꿈뻑꿈뻑하며 말씀하셨다.

"도와주시는 분은 없으세요?"

"간병하는 아줌마가 왔다 가요. 밥 해주고 청소도 해주고."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겠어요."

"그렇죠 뭐. 밤에 자다 깨면 그대로 가만 누워서 깨어있는 게 힘들어요."

할아버지께 가까이 다가갔다. 침을 놓아드리면서 보니, 수첩을 두는 탁자에도 아내 분의 젊은 시절 사진이 있다.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잠깐 할아버지께서 어떤 하루를 보내실지 상상해봤다.

'아침에 간병인이 와서 밥을 차려주고, 청소를 해주고, 빨래를 해주겠지. 욕창이 생기지 않게 한 번씩 몸을 이리저리 뒤집어주고. 간병인이 가면 텔레비전도 보시고. 수첩을 뒤적거리며 과거의 날들을 기억하시겠지. 수첩에 일기도 쓰시겠지. 그리고, 하루 종일 그리워하시겠지.'

그날도 가벼운 마음으로 보건소에 돌아갈 수 없었다.




방문진료를 맡은 지 1년이 되어갔다. 다른 집은 이제 다 적응이 되었다. 더 이상 이방인의 느낌은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 30분 정도 그 집안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 할아버지의 집만큼은 왠지 모르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침대와 평행봉이 이루는 또 하나의 방은 언제나 낯설고 어색했다.


뜨거운 어느 여름날 아침이었다. 또 그 방문을 열었다. 늘 전시품처럼 가만 누워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웬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셨다.

"아니, 앉으실 수 있어요?"

"예. 새벽 5신가에 갑자기 깼는데 보니까 실례를 했지 뭐예요. 선생님 오시는데 간병인도 안 오고 그래서 다 빨았어요."

"다리 못 움직이시잖아요. 어떻게 빨았어요?"

"화장실까지 기어가서 빨았어요."


당황해서 눈은 초점을 잃고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평행봉에는 얼룩진 속옷이 널려 있었다. 새벽에 일어난 그 사건을 상상해버리고 말았다. 할아버지의 당황스러웠던 감정을 느껴버리고 말았다. 입을 앙다물었다. 정신을 차리고 진찰을 했다. 할아버지의 배를 만져보고 맥을 짚어봤다. 더운 여름이라 배탈이 난 것 같았다. 할아버지를 등지고 선반으로 걸어갔다. 시술을 준비하면서 내 눈길은 벽면 위쪽으로 향했다. 익숙한 여인의 초상화가 보였다. 아마 할아버지께서는 나의 시선을 보고 계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께 다가가 침을 놓으면서 물었다.

"언제부터 다리를 못 썼다고 하셨죠?"

"허리 수술하고 나서 일어났는데 그때부터 못 움직였어요. 딱히 소송도 못하고 하소연할 수도 없고. 우리 마누라는 나 병간호하다가 먼저 갔어요."

나는 아무 말 없이 다리 쪽에 침을 놓았다.

"크으윽" 할아버지의 얼굴 쪽에서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의 머리와 어깨가 들썩이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린 할아버지의 눈가 주름까지 내 시선이 닿았으나 나는 이내 그 시선을 다리 쪽으로 되돌렸다. 이번엔 할아버지의 팔이 무겁게 들려서 얼굴과 눈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침을 뽑았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의 팔을 끌어와 손을 잡고 다시 맥을 짚어봤다.

"속은 좀 안정됐네요. 괜찮아질 거예요. 여름이니까 먹는 거 조심하세요. 다음에 연락드리고 올게요."

그 방의 공기는 무겁고 습해져서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물에 젖은 소금 더미를 짊어지고 있는 사람처럼 등을 굽히고 고개를 떨구며 그 공간을 빠져나왔다.


차에서 눈을 감고 잠깐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 얼굴 한 번 쳐다보지 않고 도망치듯 나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울고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자꾸 새벽에 일어났을 일이 눈앞에 보였다. 빨래를 하고 난 다음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한 두 방울 똑똑 떨어지는 것처럼 내 눈에서도 그렇게 물방울이 떨어졌다.


어렸을 때 생각도 났다. 밤에 자다가 이불에 실례를 한 적이 많았다. 꿈에서 폭포가 세차게 흐르길래 놀라서 깨면 꼭 침대가 젖어 있었다. 새벽에 깨서는 당황스러워하면서, 때로는 울면서 이불과 시트를 걷어냈다. 그것을 뭉쳐서 세탁기 앞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그때는 통 세탁기였기 때문에 이불 뭉치를 들어 세탁기에 집어넣기에는 내가 너무 작았다. 안방에 살며시 들어가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엄마의 반응은 때마다 달랐지만 어쨌든 엄마는 내가 씻는 사이에 새 시트와 이불을 깔아주었다. 그러면 나는 안심하면서 나프탈렌 냄새와 엄마의 체취가 밴 새 시트 위에 다시 누웠다.


어릴 적 나와 마찬가지로 할아버지께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서는 이 어려운 과정을 혼자 해결하실 수밖에 없었다. '보호자'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아무리 크고 작은 실수를 해도,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도 돌봐주고 사랑해주는 사람. 할아버지께 그런 존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내가 반사적으로 엄마를 찾았던 것처럼 할아버지께서도 그 상황에서 아내를 먼저 떠올리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낡은 금 테두리 액자 속에서 그를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 집의 모든 공간은 아내의 도움으로 닿아볼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부부의 따뜻한 손길과 숨길이 남겨져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할아버지 혼자 침대 한 칸에 황량하게 남겨졌고, 내가 찾아간 그 날 할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손과 무릎으로 직접 그 시린 외로움의 바닥을 쓸고 지나가셨다.




다른 방문진료 대상자 분들께서는 자녀 분들이나 배우자와 같이 사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혼자 사시는 분들이라 할지라도 가까이에 친구 분들이 계셨다. 그러나 이 할아버지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이 집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아마 그 넓은 공간을 놔두고 좁은 침대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할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주는 고립감과 내가 느끼고 싶지 않은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날 이후, 나는 방문진료 대상자들의 '보호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달,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할아버지의 댁에 방문했다. 그러나 그 날의 분위기는 저번 달과는 정반대였다. 간병해주시는 분도 계셨다. 현관에는 내 신발까지 해서 신발이 두 켤레나 되었다. 할아버지께서는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미소를 지으시며 나를 맞아주셨다. 서로 안부를 물었고 나는 할아버지께 침을 놔드렸다. 침을 빼기 전까지 같이 텔레비전을 봤다. 한 정치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예능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옛날에는 정치인들이 절대 텔레비전에 안 나왔는데 요즘엔 참 세상이 바뀌었어요. 허허허." 할아버지께서 웃으셨다. 간병하시는 분까지 들어오셔서 같이 텔레비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 스스로에게 '보호자'의 역할을 주고 나니 이 집에서 처음으로 따뜻함이 느껴졌다. 내 할 일을 다 하고 신발을 신었다. 현관에는 다시 한 켤레의 신발만이 남았고, 그 한 켤레도 곧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비어있는 현관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오고 갈 것이다.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그 곳도 집이기에.



비스듬히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정현종, 견딜 수 없네, 문학과 지성사, 2011>




첨언) 한국의 의료보험제도나 병원서비스는 잘 마련되어 있는 반면, 공공의료와 사회복지서비스의 수준은 높다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저소득층 가정, 독거노인, 중증질환자, 학대 아동, 정신질환자, 재난 생존자 등 병원에 가기 힘들고 간단한 일상생활조차 영위할 수 없는 이웃들은 많지만, 그런 이웃들을 케어해줄 수 있는 인력, 제도, 인식이 적은 편입니다. 자살과 고독사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정신질환으로 입원했던 환자들이 퇴원할 때,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상담치료사, 공무원, 자원봉사자로 이루어진 팀이 환자의 집에 방문하여 환자들의 일상생활 복귀를 돕는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공동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의료복지관계자와 봉사자들이 다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공공보건사업이 많이 만들어지고 시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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