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사람

by 허용운

내가 커튼을 열어젖혔을 때, 그는 침대 위에서 벽을 보고 옆으로 쪼그려 누워 있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솟은 어깨와 움푹 들어간 허리, 그리고 다시 솟은 골반이 이루는 선은 작은 봉우리 두 개가 골짜기를 넓게 두고 솟아있는 매끈한 산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바짓단이 올라가면서 살짝 보이게 된 종아리는 앙상했다. 그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가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총기가 가득하면서도 슬픔이 서려있었다. 그가 몸을 일으켜 세우자 그의 몸이 이루던 봉우리도 단숨에 주저앉아버렸다. 그의 눈꼬리, 어깨, 허리는 중력을 견뎌낼 힘도 없이 축 처졌다.

그는 30대 초반에 척추 골절 수술과 디스크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후유증 때문에 하지로 가는 신경이 마비되었다고 말했다. 다리에 힘이 없고 감각이 둔하다고 호소했다. 딱 보기에도 다리 근육에 위축이 있었다.
"어쩌다 그렇게 수술을 하게 되셨어요?" 내가 물었다.
"제가 원래 등반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한 번 심하게 추락하는 사고가 나서 척추가 부러졌었어요. 등반하는 사람 중에 이런 사고 안 당하는 사람 없으니까. 그런데 심 박고 1년인가 지나서 MRI를 찍었는데 디스크가 삐져나와 있다는 거예요. 의사가 수술하자고 하대요. 지금 같으면 안 했지. 내 그걸 한 게 잘못이었어요. 딱히 증상이 심하지도 않았는데. 수술하고 아무것도 못했어요. 돈은 돈대로 다 날리고 바위는 그 뒤로 한 번도 못 잡아봤어요." 그의 말에서 묵직한 분노가 느껴졌다.

침 시술을 하기 위해 그를 옆으로 눕게 했다. 또다시 그의 몸이 산을 만들었다. 원망과 한이 서린 산이었다. 헐벗은 산길 중간중간에 나무를 심듯 나는 그의 몸에 침을 꽂았다. 침 끝에서 내 손으로 전달되는 느낌은 기괴했다. 화강암 바위를 칼로 긋는 것 같았다. 금속끼리 마찰하며 서로 갈리는 느낌이 들었다. 척추 주위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조직이 거의 없었다. 부드러운 흙산인 줄 알았는데 바위산이었다.

"저도 유명한 분한테 인공암벽등반 꽤 배웠어요. 올라가는 건 어떻게든 올라가는데,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어렵던데요. 힘을 빼야 내려가는데 이게 살려고 하는 본능 때문인지 계속 버티게 돼요." 그의 마음에 다가가 보려는 나의 은근한 시도였다.
"그렇죠. 버티고 있으면 절대 못 내려와요." 그가 살짝 웃었다.
"20대를 산에서 보내시다가 갑자기 그렇게 내려오기도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그냥 내려온 것도 아니고 추락이었어요. 떨어지는 순간에는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들어요. 문제는 깨어난 다음인데 버티고 싶어도 잡을 돌이 없어. 산 타던 사람이 딴 거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아까운 청춘 그냥 갔죠."
그의 눈에 추락 장면이 비치는 듯했다. 파트너를 믿고 몸에 로프를 둘렀지만 손발이 미끄러지면서 바위에 몸을 부딪쳐 허리가 꺾이는 장면. 내가 그의 불행한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한 것 같았다. 실수했다 싶어서 말을 그쳤다.

한 번 균형을 놓친 대가가 너무나 컸다. 척추뼈가 틀어졌고, 수핵과 섬유륜이 틀어졌다. 그의 신경 기능과 균형 감각이 틀어졌다. 소화기가 틀어졌다. 낮밤이 틀어져 잠이 무너졌다. 그의 일상이 틀어졌다. 그의 마음도 틀어졌다. 그를 둘러싼 모든 관계가 틀어지고 그의 세계가 틀어졌다. 그는 나를 찾아올 때마다 자신이 수술받았던 사실을 한탄했다.
"그때 그 수술만 안 했어도 참."
그가 아찔한 절벽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과거라는 홀드에서 발을 떼어 현재라는 홀드로 옮겨가게 하고 싶었다.
"다리가 이렇게 되고 나서 생활에 어떤 변화가 왔어요?
"뭐 그냥 맨날 누워 있고 앉아 있다가, 시 썼죠."
"시를 쓰세요?"

다음번에 그가 나에게 시집 한 권을 선물했다. 직접 쓴 시집이었다. 앞장에는 그의 사인도 있었다.
"대학교 때 철학과 다니면서 술 먹고 산 다닌 게 다였는데, 몸 이렇게 되고 나서 다시 공부하고 명상하고 하다 보니까 시 쓰게 됐어요. 심심할 때 한 번 보세요."

그의 시를 읽어보고 상당히 놀랐다. 환자 베드 위에서는 그는 그저 병들고 야윈 중년 남자였는데, 시를 쓰는 그는 전혀 딴판이었다. 총명과 우울이 뒤섞인 그의 눈빛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그의 시는 때로는 날카로웠고 때로는 재치 넘쳤다. 때로는 거칠었으며 때로는 따뜻했다. 같은 느낌의 시는 하나도 없었으며 시 속에서 그는 언어유희와 파격적인 형식을 자주 즐겼다. 동양철학적인 소재와 사유를 기반으로 깨달음을 얻으려는 흔적도 돋보였다. 오래전에 낸 그의 첫 시집이라고 했다. 치열함이 느껴졌다. 그는 이미 나름대로 새로운 균형을 잡고 있었다. 시는 그의 새로운 바위였다.

그리고 몇 주 후, 그가 또 그의 친필 사인이 담긴 시집을 선물했다. 그의 최신작이었다. 그에게 침을 놓고 그 시집을 쭉 읽어봤다. 시는 본질과 자유, 그리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또한 시는 물질주의, 기계화, 폭력이 만연한 사회를 비꼬면서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의 깊은 통찰과 사색을 보고 있으니 전율이 올랐다.


그는 높은 곳을 비상하는 자유로운 새였지만 날개가 잘리고 땅으로 내려왔다. 그는 날지 못하는 새로서 그의 역할을 다시 탐구했고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의 비틀린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시는 바닥에서부터 서서히 차올랐다가 더 이상 그의 몸에 담아두기 어려울 때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그는 여러 세계를 탐험했다. 그 어떤 등반가보다도 많은 산을 오르내렸다.

"시 읽어봤어요. 다리가 괜찮아서 등반 계속하셨으면 이렇게 멋진 시는 안 나왔을 거예요. 정말 멋져요. 저는 맨 처음 나오는 시가 제일 좋았어요." 나는 흥분하며 말했다.

"하하하. 내가 시를 쓰면 그렇게 여자들이 좋아해. 다들 우리 집에 오게 해달라고 난리예요. 시 가르쳐 달라고. 물론 남자들도 좋아하지."

정말 그랬다. 나도 그에게 반해버렸다. 굳이 그에게서 정상적인 조직과 균형을 찾으려 하지 않게 되었다. 그의 뒤틀림은 정말 귀한 것이었다. 옷을 걷고 기꺼이 나에게 야윈 몸을 보여주는 그가 고마웠다. 그의 엇나간 척추 하나하나 내 손바닥으로 감싸 내려가며 느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 불균형의 틈에서 시가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다 가슴속에 시를 품고 있어요. 시를 가둬두고 있는 거예요. 그걸 풀어줘야 돼요. 가슴속에 갇혀있는 시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수 있도록.
<영화 '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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