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자 하는 열망

by 허용운

"아, 죽고 싶다."


보건소 노인 환자의 말이 아니다. 나와 심리 상담하는 내담자의 말도 아니다. 내 학창 시절 입버릇이다. 선생님이 귀찮은 숙제를 내줄 때 옆자리에 앉은 짝꿍한테 가볍게 한 번 외쳤다.

"죽고 싶다."

시험을 망쳤을 때 깊은 호흡을 내뱉으며 한 번 외쳤다.

"죽고 싶다."

3개 틀릴 때마다 한 대씩 손바닥을 맞는 학원 영단어 시험을 앞두고 다리를 덜덜 떨면서 한 번 외쳤다.

"죽고 싶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일들이 그렇게 죽음을 갈구할 만큼 고통스러운 일인가 싶다. 내 맘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죽음이란 단어는 그렇게나 가벼워졌다. 물론 진짜 목숨을 끊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죽으면 좋을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나 혼자 있으면 입 밖에 내지 않는 말이었다.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만 나오는 소리였다. 공감을 구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대꾸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한테 말하면 무슨 소용인가. 똑같은 고통에 허우적대고 있는 옆 친구도 삶의 의미를 모르는 것을.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은 말인지 몰랐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불행은 전염되기 마련이니까. 나는 전염병에 걸린 환자였다. 나는 타인으로 하여금 그들의 고통을 배로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정작 정말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이 왔을 땐 그 가벼운 '죽고 싶다'를 들어주는 사람도 없었고, 나 또한 그보다 더 강력한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속으로만 외쳤다. 그러면 내 몸 안에서 그 소리는 증폭되었다.




사실 초등학교 4학년,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부터 죽음은 나의 큰 화두였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집 맞은편에는 슈퍼마켓이 있었고 나는 귀갓길에 항상 그곳에 들렸었다. 그날도 슈퍼를 가기 위해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땅에 처박고 걷는 버릇이 있었다. 슈퍼 앞에 다다랐을 때 내 발 앞에, 내 눈 앞에 무엇인가가 질펀하게 깔려 있었다.


그것이 자리한 바닥은 검게 물들어 있었고 검은 지그재그 바퀴 자국이 길을 따라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망가진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는 희고 검은 깃털은 빨간 피가 묻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낮게 늘어져 있었다. 다만 고개를 처박고 물속에서 먹이를 찾는 오리의 궁둥이처럼 그것의 꽁무니만큼은 하늘로 비스듬히 솟아있었다. 고개를 들고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처음으로 죽은 것을 봤다. 내가 본 죽음은 묵직한 철퇴로 상대를 부수고 짓이기는 망나니의 모습이었다. 죽는다는 것이 이렇게 비참하구나. 저렇게 허망한 것이 목숨인데 왜 살아야 하는 걸까.


차에 치인 비둘기 하나가 한 소년에게 실존적인 질문을 남기다니. 약간 우스워보이기도 하지만 저 나이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봐도 눈물짓는 나이다. 그렇게 허무와 실존 사이를 오가는 아이에게 삶의 당위성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살아도 그만, 안 살아도 그만.




보건소에 오시는 할머니들의 전형적인 레퍼토리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그 거짓말.

"나이 들면 왜 이렇게 안 아픈 데가 없는지 모르겠어. 빨리 죽어야지."

"죽어야 안 아픈데 죽지도 않고."

"내가 죽어야 자식들이 편하지."

단골인 분들한테는 능청스럽게 받아친다.

"죽었는데 아픈지 안 아픈지 어떻게 알어~."

"하이고, 자식들이 그 말 들으면 참말로 좋아라 하겄어요."

그러나 이 말이 공감의 말은 아니다. 공감받지 못한 사람들은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한다. 할머니들은 다음에 와서 또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할머니들의 '죽어야지'도 나의 '죽고 싶다'처럼 진짜 말하고 싶은 내용을 감추고 있다. 그 말속에는 닳고 녹슬어 가는 몸에 대한 서글픔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게 될 미래의 자신에 대한 수치심이 있을 것이다. 가족에게 짐이 될 것이라는 죄책감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있을 것이다. 삶의 의미를 여태껏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이 힘들었던 지금까지의 나날들에 대한 야속함이 있을 것이다. 내 의지대로 통제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무력감이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존엄성과 자유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비참함이 있을 것이다. 가볍게 뱉은 것처럼 보여도 다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감정이 섞여 있는 무거운 말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반영의 말을 건네고 싶지가 않다. 나의 '죽고 싶다'는 말에 아무도 반응을 안 했던 것처럼. 불편하다. 의사와 환자, 청년과 노인이라는 상징이 무너지고 기구한 인간으로 통칭되는 것이. 운명이라는 자동차가 우리를 무심히 깔고 지나간다는 것이. '죽고 싶다'라는 표현에서 '죽어야지'로 변해가는 나약함이. 이런 감정은 필연적인 것이며, 그들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라는 두려움이. 그들의 주저앉은 눈에서 허무함을 보는 것이.




보건소에 발령받고 그곳에서 처음 맞이한 늦가을이었다. 초겨울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저물어가는 계절이었다. 11월 어느 날, 상아색 벙거지 모자를 쓴 할머니 한 분께서 찾아오셨다. 눈 주위에는 까만 그림자가 짙게 깔려 피곤해 보였고, 모자를 써도 삐져나오는 백발을 감출 수 없었다. 할머니께서는 차분하면서도 약간 높고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셨다. 베드에 누워서는 팔을 몸통에 딱 붙이고 손을 배 위에 가만 올려놓으시고는 천장을 응시하고 계셨다.


한쪽 발목이 붓고 아프다고 하셨다. 밤마다 콕콕 찌르는 것 같고 저리다고 하셨다. 무릎도 아프다고 하셨다. 발도 육안상 푸르죽죽했다. 단순한 발목 통증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무고개 진찰을 하다 보니 할머니께서 조용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신장 기능이 30년 동안 서서히 망가져서 10% 밖에 안 남았다고. 병원에서는 투석 준비를 하라고 했다고. 할머니의 아련하고 따뜻했던 눈빛은 흙빛으로 꺼져버린 눈두덩이 속으로 살며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할머니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어떤 장면을 떠올리셨을까. 월수금 하루 4시간씩 몸에서 피가 나가고 차는 것을 보며 누워있는 당신의 모습을 보신 것일까. 다 키운 자식들의 모습을 보신 것일까. 지금까지 살아온 순간을 돌이켜보신 것일까. 내가 침을 놓는 동안 할머니께서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셨다. 나는 침을 다 놓고 가벼운 미소로 그 시선에 답한 후 커튼을 닫고 나왔다.


침 치료를 받으시고 그다음 예약 날짜에 오셨다. 다정하고 명랑한 분위기를 뿜어내셨다. 선하면서도 똘망한 눈빛을 나에게 주시고는 걸을 때 발뒤꿈치가 안 아팠다고 말씀하셨다. 그다음 예약 날짜에 오셨을 땐 15년 동안 저렸던 손발이 안 저렸다고 하셨다. 그다음엔 밤에 찌르는 느낌이 없다고 하셨다. 잘 걷는 방법을 알려드리니 발목도 좋아졌다고 하셨다. 무릎도 좋아졌다고 하셨다. 부종도 차츰 가라앉았다. 피로감도 덜하다고 하셨다. 어두웠던 발 색깔도 비구름이 걷힌 듯 밝아졌고, 창백하던 눈꺼풀 안쪽에는 핏기가 돌았다. 눈두덩이의 색깔도 비둘기의 날개를 연상케하던 청회색이 더 이상 아니었다.




이 분을 두 달 정도 뵈었다.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에게는 별 의미 없는 날이었다. 늘 그렇듯 1시간 반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야 하는 춥고 피곤한 날이었다. 이 할머니께서는 9시 타임의 마지막 손님으로 오셨다. 커튼을 젖히자 할머니께서 베드 모서리에 걸터앉아 계셨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눈도 마주치지 않고 가볍게 인사말만 한 후, 침이 놓인 선반으로 가서 시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천진난만하게 내 등 뒤에서 말씀하셨다.

"병원 갔었는데 신장 더 안 나빠졌다고 투석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어요. 죽고 싶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살고 싶어졌어요."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다행이네요."

평소와 마찬가지로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의 눈을 한 번 바라봤다. 침을 놓고 커튼을 치고 나왔다.


커튼을 등지고 잠깐 그대로 서있었다.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날 이후로도 한동안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렸다. 감사한 선물이었다. 처음으로 들어본 말이었다. 살고 싶어졌다는 말. 이렇게 감동적인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가장 진실되고 용기 있는 말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스스로를 속이면서 외면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우리는 단지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일 뿐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진리는 인간이 죽는다는 것이다. 그 사실이 허무할 수는 있지만, 뒤집어서 생각하면 우리가 죽기 직전까지는 의지에 따라 다양한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고민했던 허무와 실존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왜 사는가'라는 질문은 던질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삶이 우연이자 부조리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냥 높은 산에 바위를 올리고 또 올리는 시시포스일 뿐이다. 다만, 너무나 잘 살고 싶은 것이다. 내가 꿈꾸는 대로, 내 의지대로 잘 살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나 강해서 그 욕구가 다 충족되지 않았을 때 오히려 죽고 싶다고, 죽어야 한다고 표현하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살고 싶다'는 말은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당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시겠다는 실존의 의지를 담고 있었다.


망가진 신장을 새 것으로 만들어 주는 능력은 나에게 없다. 그저 대화를 하고 접촉을 했을 뿐이다. 그 행위가 타인으로 하여금 생의 의지를 다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여태껏 주변 사람들에게 불행의 기운을 전달해주는 사람이었는데. 많은 분들이 진료실에서 알찬 삶을 다짐하고 가셨다. 그들이 느꼈던 생의 감각을 느껴보려고 했다. 아름드리나무 밑에 누워 푸른 바람을 쐴 때의 느낌. 모든 것을 삼켜버린 어둠 속에서 지평선에 떠오르는 태양의 황금빛 아지랑이를 봤을 때의 느낌. 꼬물꼬물 작은 아기의 발이 처음으로 살포시 땅에 닿았을 때의 느낌.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새근거리는 숨소리와 뛰는 심장소리를 들을 때의 느낌. 그런 감각을 같이 느끼면서 나도 나의 생을 다짐했다. 잠깐의 대화와 작은 터치로 타인에게 생의 감각을 전염시키는 것이 내 실존의 역할, '시시포스의 바위'라면 그 바위를 끝없이 올리는 과정이 그리 고통스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영원히 되풀이해서 살아가기를 바랄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살기를 열망하라. 인간이 위대해지는 내 공식은 운명애(amor fati)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영구히 자기 자신 말고 다른 것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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