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록은 제가 공중보건 한의사로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젊은 남자 한의사는 공중보건의로서 의료서비스 취약지역에 배치받아 3년간 군 복무를 대체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면허를 취득하자마자 바로 공중보건의에 지원했습니다. 3년의 시간 동안 많은 분들께서 아기 한의사였던 저에게 몸과 마음을 기꺼이 열어 보여주셨습니다.
마음이 힘든 어느 한 분과 2년 정도 심리상담을 진행하다가 제가 이 분께 과제 하나를 내주게 되었습니다. 바로 자서전 쓰기인데요. 마음이 힘든 분들은 보통 자신과 타인, 세상에 대한 인지적인 왜곡이 심해서 자신의 삶에 있었던 아름다운 부분을 스스로 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그동안의 기억들을 글로 적고 함께 보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이 분의 꿈이 소설을 쓰는 것이고 평소에 일기도 자주 쓰기 때문에 이런 기법을 적용하는 것이 가능했지요.
그런데 이 분에게 이런 과제를 내주고 나니 저도 한 번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글쓰기.
저는 공감과 상호작용을 중요시하는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인간은 누구나 고통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죠. 바다마다 염분과 색깔이 조금씩 다르듯이 사람의 고통도 서로 비슷한 듯하면서도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바다, 평생 혼자 발버둥 치면 외롭습니다. 같이 헤엄치는 경험,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몸속에 쌓여가는 이야기. 그것을 적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 만들었고 앞으로도 함께 만들 삶의 의미를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모든 에피소드는 환자 정보 보호를 위해 각색 과정을 거칩니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하얀 가운을 입은 카츠 선생님이 나와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기분이 좋아졌다. 의학은 바로 이런 때 소용 있는 것이다.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문학동네, p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