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돌아가신, 아직 살아계신 G선생님께
10.1.11 시드니 천문대에서
선생님! 지금 계신 곳은 어떤가요. 저는 고요하게 석양이 내려앉은 이곳에서 선생님의 부고를 받았어요. 처음이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재회가 불가능하여 박제된 기억 속에서야 겨우 실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요. 언덕 밑에 하나둘씩 켜지는 불빛과 지평선 밑으로 빨려 내려가는 태양을 보며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어요.
선생님! 떠나시고 8년이 지나서 문득 제 이메일 보관함 맨 끝 장을 눌러봤어요. 선생님과 나눴던 편지, 선생님께서 보내주셨던 투병 일지가 있었어요. 일지에는 투병 과정이 적혀있었어요. 항암 치료를 받다가 너무 힘들어서 중지했고 한의약 치료도 받았다가 나중엔 자연치유를 하며 지낸다고 하셨죠. 저는 답신에 대학 간 친구들 이야기, 재수하는 친구들 이야기, 암환자를 치료하는 한의사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적었어요.
그 메일을 다시 본 지 몇 달 후, 저는 실제로 암환자를 치료하는 한방병원에 취직을 했어요. 암 투병하시는 분들을 그렇게 많이 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하루에도 수십 명이 입퇴원을 하고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갔어요. 누군가는 아픈 사람 같지 않게 온 병원을 휘저으며 부산스레 돌아다녔고, 누군가는 두건을 쓴 채로 우울감에 침잠했고, 누군가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누군가는 저린 손을 쥐었다 폈다 했고, 누군가는 구토를 했고, 누군가는 배를 움켜잡으며 진통제를 달라고 했고, 누군가는 노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죽음을 기다렸으며, 누군가는 죽었어요. 그들에게서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어요. 선생님에게 증상을 묻고, 침을 놓고, 약을 먹이고, 본 병원 가는 길에 배웅하고, 소독을 하고, 관장을 하고, 피를 뽑고, 응급실 가는 길에 동행하고, 생체 징후를 확인하고, 사망 선고를 했어요. 그렇게 선생님과 재회했지만 선생님 옆에는 제2의 선생님, 제3의 선생님이 누워 있었어요. 진단 치료 기술이 10년 전에 비해 확연히 발전했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어요. 여유롭게 삶과 죽음에 대해 곱씹을 시간이 없었어요. 공포에 저를 둔감하게 만들어야 했어요.
선생님! 저는 지금 그 공포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어요. 그 공포가 그립기도 하네요. 이제는 10년 전이 된 호주 여행 때 사진을 다시 보고 있어요. 멜버른의 열대우림 지대에 방문했던 사진이 있네요. 'life after death'라는 표지판이 있고 죽은 나무 위에 새 나무가 자라는 모습이 찍혀있어요. 선생님의 죽음 뒤로는 그 죽음을 초월한 사람이 생겼어요. 삶과 죽음의 의미를 굳이 찾을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는 영원히 살아가고 있으며 또한 죽어가고 있어요. 선생님도 저를 통해 계속 살아가면서 동시에 죽어가고 계세요.
20.4.27
삶을 위해 하루하루 죽어가는 제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