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공간에서 시간을 함께 보낸 M에게

13.7.17 베네치아 어느 다리 밑 그늘에서

by 허용운

안녕 M! 요즘 다시 캘리포니아에 산불이 번졌다는데 넌 괜찮은지 모르겠구나. 그쪽은 연례행사처럼 산불이 난다고는 하지만 점점 더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네. 내가 사는 곳은 2주 정도 내내 비가 내리더니 이틀 전부터 갑자기 겨울이 된 듯 너무 추워졌어. 보통 이맘때는 아침저녁으론 쌀쌀해도 낮에는 햇볕이 따뜻한 가을이었거든. 그리고 우리가 만났던 베네치아는 보통 9월에서 그다음 해 4월 사이에 조수 차 때문에 물난리가 한 번 씩 나는데 올해는 6~8월에 일찍 나타났고 물난리가 나는 빈도도 점점 늘고 있대. 기후 위기가 정말 심상치 않아.



M! 우린 정말 좋은 날씨에 만났어. 막 베네치아 구경을 시작하려는데 네가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나와 내 친구에게 다가왔지. 너도 우리에게 사진을 부탁했어. 네가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고 우린 잘 못했지만 그냥 한다고 대답했어. 그렇게 우린 같이 다니며 사진을 서로 찍어주게 되었지. 미로 같은 베네치아의 길을 걸었어. 사람들은 곤돌라를 타고 다니고 가게에는 화려한 가면이 걸려 있었어. 그러다 어느 작은 다리 옆에 그늘진 공간을 발견했지. 우린 그곳에 1~2시간 정도 앉아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어. 넌 워크캠프로 생태계 보전 활동을 하러 유럽에 왔다가 다 끝내고 여행 중이라고 했어. 다음번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고 했지. 그때 난 환경에 대해 크게 아는 바가 없었지만 환경을 위해 행동하는 네가 멋있다고 생각했어. 한참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곳은 우리만의 특별한 공간이 되어버렸어. 숙소에 가서 잠깐 쉬겠다고 했던 너를 저녁에 다시 만났고 우린 그 안락한 장소에 가서 같이 맥주를 마셨지.



M! 난 이제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기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으며 지금이라도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녀. 그런데 그 말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많이 없어. 비웃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들은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누군가는 지금이 단지 지구가 더워지는 주기일 뿐이라고 하지.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지구의 온도 조절 능력이 떨어지면 그 주기는 망가져. 그리고 지구의 항상성을 떨어뜨리는 건 인간이야. 이걸 증명하기 위해 바이러스가 실험을 했잖아. 인간의 활동을 멈추면 얼마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을지. 전염병이 창궐하고 탄소 배출은 수치상으로도 확실히 줄었어. 하지만 조만간 다시 활발한 산업 활동이 시작될 거야.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그 안에 있던 가스가 온난화를 더 가속할 것이고 공기가 제대로 순환하지 않게 되면서 매년 홍수, 산불, 폭염, 한파 같은 자연재해가 심해질 거야. 이제 개인 차원에서의 노력은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을지 몰라. 국가나 기업 차원에서 움직여 줘야지. 요즘 많은 나라나 회사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고 선언하고 있어. 정말 환경을 위한다기보단 에너지 패권이나 산업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가 더 큰 것 같지만, 인간의 이기심이 환경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그 이기심 좀 빨리 발휘해줬으면 좋겠어.



M! 우리가 이야기 나눴던 공간이 물에 잠겼어. 기후 위기란 그런 거야. 우리가 사랑하는 공간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단축된다는 의미이지. 비행기 타는 것도 죄책감이 드는 요즘, 우린 어디서 만나 또 이야기할 수 있을까.


2021.10.18

이번 겨울 날씨는 얼마나 이상할지 걱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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