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마지막 여행을 함께 한 B님에게

13.7.25 포지타노 바다 위에서

by 허용운

안녕하세요 B님! 당신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네요. 죄송합니다. 수없이 이름을 불러드렸지만 의사는 결국 사람을 병명 내지는 케이스로 기억하게 된답니다. 몹쓸 습관이죠. 제가 당신을 B라고 부르는 것도 당신의 병명이 유방암 뼈 전이(Breast cancer with Bone metastasis)여서 그래요. 저희가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그때 당직이었고 B님은 통증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죠.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저는 B님의 눈에서 무언가를 읽었고 침을 놓은 게 아니라 명상 상태를 유도했죠. 그리고 통증이나 걱정이 없는 편안한 장소를 떠올리게 했어요. 당신은 미국에 있는 친구의 집을 떠올렸어요. 푸른 정원에서 나무 의자에 앉아 친구의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어요. 두 줄기의 눈물과 함께 통증은 잠깐이나마 가라앉더군요. 오후에 그 친구가 당신을 보러 미국에서 온다고 했어요. 친구에게 걷지도 못하게 된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걱정됐을까요. B님은 제 담당 환자가 아니었지만 저는 당신에게 끌려서 자주 찾아갔어요. 당신에게 위안을 주는 장소를 이끌어내면 B님은 항상 이전에 갔던 여행지를 떠올리시더군요. 우린 같이 무수히 많은 여행지를 다녀왔어요.



B님! 우리의 마지막 여행을 기억하시나요. 이탈리아의 포지타노였어요. 저도 예전에 갔다 온 적이 있었죠. 암벽 산에 가로로 긴 네모난 집들이 위아래로 겹겹이 놓인 작은 마을이었어요. 거리마다 레몬으로 만든 특산품과 다양한 공예품으로 가득했어요. 마을 아래로는 바로 해수욕장과 연결되어 있어 사람들은 휴가를 즐겼죠. 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면 산과 마을의 전경을 볼 수 있는데, 집마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이 칠해져 있어서 이곳은 자연이 지켜주는 특별하고 비밀스러운 마을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반나절 투어로 잠깐 갔다 왔던 곳인데 당신은 이곳에 하루 묵으며 밤바다를 봤다고 했어요. 밤에 배를 타고 마을을 보는데 마을 반대편에 크고 샛노란 보름달이 떠 있었다고 했어요. 달은 바닷물 속에서 아른거리고 당신의 얼굴은 달빛을 받아 시리게 빛났을 거예요. 저는 당신의 기억으로 들어가 배 한쪽 위에 누워봤어요.



B님! 저와 함께 마음속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실제로도 여행을 가고 싶다며 힘들어한 적도 있었죠. 괴로우셨을 거예요.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지난 삶을 정리해 보셨다고 생각해요. 여행을 통해 당신이 얼마나 다채롭게 인생을 채웠는지,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는지, 그 속에서 얼마나 다양한 일을 했는지요. 당신이 마지막 순간에 어떤 장소를 떠올렸는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우리의 생을 잘 마감하기 위해서라도, 여행은 필요하네요.


2021.10.19

당신과의 여행을 죽을 때까지 기억하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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