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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형 Oct 23. 2021

➁ 공격권은 당신에게 있어요.

물러나지 마세요.

    사범님의 말은 맞았다. 일단 해야 할 상황에 넣어놓으니 딴 생각 않고 운동을 나왔다.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대충 어떻게 쪼개서 마련했다. 거리가 멀지 않나 우려도 했지만, 지하철에서 책도 읽고 노래도 듣고 산책한다 생각하며 다녔다. 어차피 재택 근무라 출퇴근한다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집에 있으면 어차피 밥 먹고 꾸벅꾸벅 졸면서 보낼 시간이었다. 회사에서는 '일단'은 정말 듣기 싫은 단어다. 일단 하래서 일을 했다가 다음 단계가 마련되지 않아 헛수고가 된 에피소드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일단'과 '무조건', '원래', '당연히'는 믿고 거르는 단어지만, 태권도장에선 의외로 쓸만했다. '일단' 태권도장을 등록하면 '무조건' 나오게 되어 있다. '원래' 태권도를 좋아했다면 '당연히' 좋아하겠지. 밀어 넣어 두니 출석과 운동은 알아서 따라왔다.

    여전히 태권도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달라진 것도 있었다. 10년의 사회생활은 어찌나 골치 아픈 일이 많았던지, 나는 진작에 기가 꺾여버린 것이다. 적극적인 태도를 '괜히' 나서고 들이대는 걸로 여겼고, 초반엔 수그리고 맞춰주는 게 이득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의견을 내고 몰아붙이는 것보다 상대가 낸 의견에 맞춰 대충 실행하는 시늉을 내는 게 회사에서의 나였다. 돌아보니 그랬다. 그러면 책임을 물 일도 없고, 내가 부린 욕심에 실망하고 상처받을 일도 없으니까 그게 편하다고 생각했다. 상대에게 맞추는 건 일도 아니였다. 눈치를 슥 살피고 상대가 향하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면 그게 전부다. 생각하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겨루기를 하는 수요일이었다. 코로나 예방 및 안전 상의 이유로 약속 겨루기를 했다. 보호장비를 모두 착용하고 제한된 시간 동안 싸우는 겨루기와 달리 거리를 두고 정해진 몇 가지 동작을 연습해 보는 게 약속 겨루기다. 상대의 움직임에 맞는 발차기와 타이밍 감각을 기를 수 있는 훈련이다. 


    사범님이 시작을 외치고, 가볍게 스텝을 뛴다. 상대가 한 발 뒤로 물러나면, 그에 맞춰 한 발 앞으로 간다. 오른쪽으로 피하면 그쪽으로 사삭- 빠르게 이동한다. 상대가 오른발을 뻗어 공격을 하면, 또 그에 맞춰 빠졌다가 반댓발로 공격을 한다. "상대의 움직임을 보라는 거지, 움직임에 맞추라는 게 아니에요." 사범님이 말했다.

나는 그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진짜 겨루기도 아닌데, 내가 맞춰주면 서로 좋지 뭐.' 나는 생각했다. 

    "공격권은 각자 자기한테 있어요. 물러서지 마세요." 사범님이 또 말했다. 공격권이 나한테 있다고? 아니, 나는 누구를 공격할 생각이 없다. 내가 지고 상대를 이기게 두는 게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겨루기에서도 그런가? 습관이 이렇게나 무섭다. 나는 겨루기 연습을 하면서 겨룰 의지 자체가 없었다. 착한 인간 코스프레를 하느라 격투기의 본질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고민하는 사이에 상대가 바꼈다. 이번엔 적극적으로 겨뤄야지. 

    자신있게 먼저 공격을 하고, 그에 반응하는 상대의 모습을 봤다. 그 모습에 맞춰 다음 움직임을 결정했다. 빠르게 눈치를 살폈다.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짝 즐거워 보였다. 움찔, 상대가 왼쪽으로 움직인다. 나도 빠르게 그 쪽으로 이동한다. 아니 상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왼발과 상체만 이동하는 척 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페이크다. 속았다. 허둥지둥 원래 자리로 돌아오려하니 휘청, 아 이게 아닌데. "남의 움직임에 맞추지 말라고 한 이유가 이거예요. 중심을 잃기 쉬워요.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움직이는 것만 따라가다 보면, 의도를 알게 됐을 때 너무 늦어요." 

     지는 게 편한 것처럼 남을 따라하는 게 편한 데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남다른 행동에는 댓가가 따른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정답을 틀리면 손바닥을 맞고, 비슷한 옷차림을 하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하고, 선구자는 공감을 얻지 못하는 광경을 보아 왔다. 특이한 행동을 하고 눈에 띄는 건 결국 손해를 자처하는 거였다. 하지만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고 말하기에 세상은 변했다. 독특한 움직임은 기회를 얻는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시장을 차지한다. 가장 앞에 서서 움직이진 못해도 기다렸다 줄 서서 따를 필요는 없었다. 박막례 할머니도 말하지 않았나. 남의 박자에 맞추지 말라고. 남의 박자는 다 족같은 거라고. 할머니 얘기를 들었을 때도 생각했다. '적당히 편하게 지내려면, 남의 박자에 맞추는 척 해야 하는 게 낫지 않나?' 아니. 아니다. 나는 내가 똑똑한 줄 알았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다. 사람이 그런 척을 하다보면 금세 그렇게 되어버린다. 몸도 나고 마음도 나다. 둘은 결국 하나라서 같이 가게 되어 있다. 나보다 남의 움직임에 집중하면 반사적으로 몸도 남의 박자에 맞추게 된다.


    "서형님, 제 말 알겠죠? 기회를 노릴 수는 있어요. 그치만 상대가 움직이기를 기다리지는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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