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臺北)에서의 이른 아침이다. 우연히 같은 곳으로 향하는 동행을 만나, 함께 아침을 테이크 아웃하러 갔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지난 70년간 중국과의 양안 갈등을 겪고 있는 대만에게 한국은 그들의 Hero이고, 계속하여 배우려 한다고 한다는 것이다. 천년 이상을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한반도를 수 차례 침략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독립국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한국이 Hero라니 새삼스럽다. 그는 대만정치대학의 교수였다.
2300년 전 고조선을 침략
중국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한반도를 침략해 왔는지를 살펴보니, 고조선을 전국시대의 연(燕) 나라가 처음 침략하고 이후에 한(漢) 나라가 다시 쳐들어왔다. 고조선을 처음 침략한 시기를 BC 282년 이전으로 헤아리고 있으니, 2300년 전부터 중국의 한반도 침략은 진행되었다.
한국의 정통성은 고조선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의 정통성은 고조선부터 시작되었다. 고조선은 현재 중국의 랴오닝성과 북한의 평안도, 황해도에 걸쳐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2012년부터 시작한 ‘동북공정’에서, 한반도에서 자생적으로 생성된 국가는 삼국시대부터라고 주장하며 고조선을 한반도의 역사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리의 정체성과 미래에, 고조선이 누구의 역사였는지가 중요한 순간이 올 수도 있다.
박물관에 있는 작은 비파형 동검
작은 유물 하나에 2300년 전부터의 역사가 기록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청동기·고조선 방에 가 보았다. 출처는 중국 뤼다의 강상 무덤에서 나온 청동으로 만든 작은 비파형 동검 복제품이 있다. 북한 역사학자들은 북한의 정통성이 고조선과 고구려에 있음을 밝히기 위해, 1964년 중국 학자들과 공동으로 유적 발굴을 한 끝에 다렌(大連) 근처에서 고조선의 유물을 발견하였고, 이 중 하나가 비파형 동검이다. 유사한 형태의 비파형 동검은 평양에서도 발견되었고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서 펼쳐져 있다.
북한에서 발굴한 비파형 동검이 왜 여기에 있는 걸까? 2006년에 국립중앙박물관은 ‘북녘의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이 소장한 유물 90점을 공개하였고, 이후 유물을 북한에 반환하였다. 반환 전에 비파형 동검을 복제(replica)를 하였다. 비파형 동검의 분포 하나만으로 만주의 서쪽이 고조선의 일부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나 작은 실마리가 된다.
우리 선조는 고조선부터 중국과의 침략을 막아내기도 하고 때론 지기도 하였지만 현재까지 버텨내고 발전하고 있으니, 누군가에게는 한국은 Hero로 배울 가치가 있다고 보이는 것이다.
비파형 동검@국립중앙박물관 (6. 중국 뤼다 강상 무덤, 7. 평양)
한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6개월 뒤의 대만 총통 선거
대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친절하고 겸손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배우고자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반도체 기반의 경제, 양안 갈등을 대하는 정치와 군사는 단호하다. 대만은 해군과 공군력을 강하게 키우고 있지만, 또 하나의 방어선은 반도체 기술이다. 대만은 글로벌한 소비재 브랜드가 거의 없다. 그러나, 주요국을 교역 상대로 반도체와 같은 전자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6개월 뒤에 있을 내년 1월에 열리는 대만 총통 선거에 관심이 간다. 현재는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의 차이잉원이 연임하여 총통을 맡고 있다. 민진당이 지속을 하느냐? 하나의 국가 내 두 개의 체제를 지지하는 국민당으로 교체되느냐가 관건이다. 대만의 젊은이들은 민진당이 주장하는 대만 독립을 지지하면서도, 최근 민진당에서 발생한 내부 부패에 대하여 부정적이기 때문에 선거 결과는 예상하기 어렵다. 결과가 어느 방향이든 한국 경제와 외교는 쉽지 않은 상황이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과 경제 전쟁과 중국 내 첨단 IT기술의 자급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신중한 외교 정책과 경제의 큰 그림이 수반되어야 한다.
한국을 배우긴 하지만, 중국과 대만과의 가까운 관계
동행한 교수는 잠시 뒤에 아들을 불러 소개해 준다. 대만에서 태어난 아들은 중국 출신의 배우자와 함께 상하이에서 일하고 있다. 정치에서의 갈등과 다르게 중국과 대만은 경제와 인적 교류는 활발히 이루어지는 일면이다.
한 시간 넘게 푸항또우창(阜杭豆漿)앞에 줄을 섰지만 그와의 대화로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다. 그가 주문해 준 두유와 호우딴 지아요우따오라는 빵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