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70억 마리도 넘게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은 모두 멸종했다고 여기는 습성이 있다
멸종은 죽음보다 빠르게 오고
멸종당할 수 없을 만큼 흔해 빠졌어
올 해 들어 멸종한 것들
새끼 손가락만 걸고 걷는 연인
천 칠백 원 짜리 지폐, 이 지폐로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먹곤 했지
잘 자라고 말해 주는 사람
립밤을 잡아 먹는 주머니 속의 괴물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노인과
녹색 예약 표시등을 켤 줄 아는 택시
가을
가을은 작년에 멸종했잖아
마지막 가을에 우리 얇은 옷 입고
택시를 쫓아다녔잖아
빈 차인 줄 알고
빨갛게 예약된 택시를 향해
전사처럼 달려들며
여기 집에 가고 싶은 사람 있어요
여기 춥고 지친 취객 있어요
서울 원래 이러니
라고 물어보는 네게
할 수 있는 대답마저 멸종해버린 그 날
겨우 잡은 택시 기사는 잠든 네게 질문을 하고
내가 대신 대답했다
네가 멸종해 버릴까 봐
너를 계속 바라보면서
택시는 우리 집을 지나쳐 계속 달리는 것 같고
너는 깨어날 생각이 없나 봐
자꾸만 침을 삼키고
여기서 내려주세요, 그런 말은
익숙한 골목이 나와야 할 수 있는데
이사를 하며 익숙한 골목을 멸종시킨 내가
어떻게 내릴 수 있겠니
택시는 멈추지 않고
빈 차 같은 휴무 표시등을 켜고
뒷자리에 앉은 두 명의 승객을 멸종시킨 채
집을 향해 달리고
가을 대신 우리가 멸종해 버릴까
이대로 쭉 떠나 버릴까
그런 결심을 하는 순간
네가 깨어나고
상상하던 모든 문장이 멸종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