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하얗게 되고 싶다 나이를 먹기 싫고 피빨강 입술을 가지고
아무리 슬퍼도 눈물을 티슈에 찍어 흘린다
밀착 쫀쫀 파운데이션을 얇게 펴바르면
얼굴을 꼭 안고 있는 기분
안티에이징 세럼을 다 쓰기 전에 새로 사고
매일 밤 냉장실에서 팩을 꺼내 얼굴에 덮고 누워서
이건 화장이 아니라 워페인트야
내일은 니트를 환불하러 가는 날 환불 얼굴을 만들어야 해
처음 뷰러를 쓸 때 기억 나니
무서워 하다가 눈꺼풀을 찝어 버렸잖아 너
콘택트 렌즈도 끼는 데 한 시간씩 걸릴 때
그건 너의 신병 시절 싸움에 능숙하지 않은
화장이 단지 예뻐지는 놀이 같은 시절
혹은 무리의 표식 같던 시절
화장대에 앉은 너는 베테랑 같다
가죽 위로 기분을 그리는 주술
취하고 싶은 얼굴
환불이 잘 되는 얼굴
사랑에 빠진 것 같은 얼굴
파우치 안에 들어 있는 건
전술용품이거든
네 얼굴의 실금은 사실 전장을 넘어 온 상흔
어떤 사선을 넘어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전투가 끝난 다음의 얼룩진 얼굴
그렇게 생각해
뭐래 진짜 화장 지우는 거 귀찮아 죽기 일보 직전이야 짜증나니까 말 걸지 마
미쳤나 봐 클렌징 오일 다 썼어 지금 사러 갈 수도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