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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섬원 Sep 04. 2023

택시는 멈추지 않는다

인간은 70억 마리도 넘게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은 모두 멸종했다고 여기는 습성이 있다


멸종은 죽음보다 빠르게 오고

멸종당할 수 없을 만큼 흔해 빠졌어


올 해 들어 멸종한 것들

새끼 손가락만 걸고 걷는 연인

천 칠백 원 짜리 지폐, 이 지폐로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먹곤 했지

잘 자라고 말해 주는 사람

립밤을 잡아 먹는 주머니 속의 괴물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노인과

녹색 예약 표시등을 켤 줄 아는 택시

가을


가을은 작년에 멸종했잖아

마지막 가을에 우리 얇은 옷 입고

택시를 쫓아다녔잖아


빈 차인 줄 알고

빨갛게 예약된 택시를 향해

전사처럼 달려들며


여기 집에 가고 싶은 사람 있어요

여기 춥고 지친 취객 있어요


서울 원래 이러니

라고 물어보는 네게


할 수 있는 대답마저 멸종해버린 그 날

겨우 잡은 택시 기사는 잠든 네게 질문을 하고

내가 대신 대답했다


네가 멸종해 버릴까 봐

너를 계속 바라보면서


택시는 우리 집을 지나쳐 계속 달리는 것 같고

너는 깨어날 생각이 없나 봐

자꾸만 침을 삼키고

여기서 내려주세요, 그런 말은

익숙한 골목이 나와야 할 수 있는데


이사를 하며 익숙한 골목을 멸종시킨 내가

어떻게 내릴 수 있겠니


택시는 멈추지 않고

빈 차 같은 휴무 표시등을 켜고

뒷자리에 앉은 두 명의 승객을 멸종시킨 채

집을 향해 달리고


가을 대신 우리가 멸종해 버릴까

이대로 쭉 떠나 버릴까

그런 결심을 하는 순간


네가 깨어나고

상상하던 모든 문장이 멸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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