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가질수 없는 이유
병원에 가기 전, 핸드폰을 손에 들고 한참을 검색했다.
'사후 피임약 먹고 임신'
'사후 피임약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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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약을 먹고도 임신이 되어 이미 돌 아기를 키우고 있다', 심지어 '생리 직후에 사후피임약 복용했지만 v피임에 실패하여 셋째 엄마가 되었다'는 등 사후 피임약의 효과를 의심케하는 댓글이 즐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앉아 다음달에 찾아올 생리를 기다리기엔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조급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결국 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사후 피임약 처방이 가능한지 확인한 후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10분 남짓, 운전하는 차안에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차피 둘째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이렇게까지 임신을 걱정할까, (남편은) 하지 말라니까 왜 이런 상황을 만들까, 미련하게 왜 좀 더 적극적으로 피임을 하지 않아서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에 산부인과를 가고 있나, 왜 이 모든 걱정은 다 나의 몫인가, 남편이 이런 나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만약 약을 먹었는데도 임신이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오늘부터 맥주는 못마시나),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가 연년생 아기들을 잘 돌볼수 있을까 ..
길고 긴 걱정이 분노로 이어질 찰나, 그 감정의 꼬리를 자르기 위해 잠시 멈춰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두번째 임신을 거부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
하나. 나는 아직 내 아기를 '첫째'로 만들고 싶지 않다.
두번째 임신과 동시에, 내 아이는 '첫째'가 될 것이고, '둘째'가 태어남과 동시에 1순위의 돌봄에서 밀려나게 될 것이다. 어떤 아이가 더 사랑스럽고 그렇지 않고를 떠나, 신생아에게 더욱 많은 돌봄의 시간과 관심을 쏟게 될 것이 분명하고, 모든 사랑을 독차지 하던 아기는 '첫째'라는 이름을 달고 양보와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할 것이다.
세상에 저 12개월도 안된 콩만한 아기에게 '언니', 혹은 '누나'라는 이름이 가당키나 한가.
물론 이건 순전히 나의 경우다. 한 사람이 둘 모두에게 온전히 반응하는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물론 그게 가능한 엄마들도 있을 것이다. 이건 전적으로 나의 능력 부족에 관한 이야기일수도 있다.) 만약 엄마가 뱃속의 태아나 신생아로 인해 관심을 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아기를 충분히 안아주고 돌봐줄 누군가 옆에 있다면 이야기는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는 아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나는 우리 아기에게 언니를 만들어 주고 싶을 만큼 지금의 우리 아기가 아깝고 아련하고 사랑스럽다. 아이 둘을 갖는 걸 결단코 반대하는건 아니지만 아직은, 우리 아기를 온전히 아기로 대하고 싶다.
둘, 나는 곱배기로 밀려오는 육아의 고난을 아직 감당할 자신이 없다. 말 그대로 이건 내가 살기 위해서다.
내가 낳은 아이는 내가 키우는게 당연하지만, 가끔 주변에서 친정엄마와 함께 도란도란(?)아기를 키우는 모습이 무척 부러울때가 있다. 나는 그 흔한 '친정찬스'를 쓸수 없는 사람이고, 시댁은 장사를 하는 중이기 때문에 어느곳도 아기를 함께 키워주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물론 친정이나 시댁이 그럴 상황이 된다고 해서 아기를 맡겼을지는 미지수지만.
육아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여야 하는 남편은 아침 8시 전에 출근해서, 잠시 퇴근했다가 30분정도의 휴식 후에 다시 일을 나간다. 그리고 밤 9시 반이 넘어야 퇴근한다. 아기의 하루 일과는 아빠와 엇비슷하게 시작해서 아빠보다 일찍 끝난다. 고로, 아기는 하루에 아빠를 만나는 시간이 채 한시간이 안된다는 소리다. 아기는, 정말, 온종일, 내가 돌보아야 한다. 35년 내내 철없는 딸로 살다, 잘나가지는 않았지만 나름 보람찬 사회생활을 하다가 정말 갑자기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가 덩어리째 인생으로 굴러들어와, 찬찬히 살펴볼 틈도 없이 그냥 이리저리 떠밀리고 있는 나다. 이런 환경에서 현재의 육아 생활에 대한 불평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만약 둘째가 생겨날 경우에 모든 육아의 책임은 전적으로 내가 지게 될 것이다. '내가 많이 도와줄게'라는 말은 힘이 없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도와줄게'라는 표현에 대한 불편함은 잠시 논 외.)
그런 의미에서, 분명 내 의사를 여러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실수로 이런 걱정을 하게 된 내가 (혹은 우리가) 한심했고, 이런 고민이 온전히 내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진다는게 분했다. 사후 피임약을 먹었다는 그 기분 탓인지 , 아니면 정말 그 약의 호르몬으로 인한건지 모르겠지만 남편에게 그러하루종일 온몸으로 나의 저기압을 표현하고, 밥을 먹다가 (정말 의도치 않게) 눈물을 쏟고, 결국 하루 종일 툴툴 거리다가 아기가 잠들고 난 후에 남편의 손을 잡고 내 마음을 구구절절 털어놓았다.
상황 종료된 너와 달리 오늘 나는 만들어지지도 않은 아기를 위해 하루를 걱정으로 날려야 했으며, 다음달 생리가 터질때까지 아마 계속 조마조마 하게 될 것이라는 것, 아기에게 꼭 형제자매를 만들어 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며, 나 역시 우리 아기가 외롭게 자라는 것은 원치않지만, 아직은 온전히 우리 아기 하나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뭐, 이런저런 이야기로 포장해 댔지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아이에게 형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저 부모의 생각인지, 정말 그러한지. 나는 형제가 있으나 없는 것처럼 살고 있고, 남편은 형의 존재와 든든함을 일상에서 느끼는 삶을 살고 있으니.
어쨌든 남편은 나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고, 우리는 이 이야기를 2022년까지 묻어두기로 했다.
물론 우리 마음대로 될지는 모르겠다. 당장 다음달 생리도 장담할수 없을 뿐더러, 어느 영화의 나레이션처럼 우리는 젊고, 또 부주의할테니말이다.
이걸 본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둘째 고민은 낳아야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