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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Nov 15. 2021

전문성은 우리를 지켜줄 수 있을까?

새로운 전문가의 시대



전문직을 그만두는 사람들


변호사를 그만두고 요가 강사가 된 사람

의사를 그만두고 요리사가 된 사람

10년간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디저트 공방을 창업한 사람


책에서 전문직을 그만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는 오랜 시간 공부해서 어렵게 직업을 가질 자격을 얻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려는 걸까? 어렵게 손에 쥔 기회를 버리고 선택한 일은 무엇얼까? 새로운 일은 만족할까? 궁금해졌다.


변호사로 일하는 친구가 사업을 하고 싶다고했다. 법률 서비스 관련 창업을 하는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와인 용품을 아이템으로 이야기했다. 이유를 물으니 직업적 안정성을 위해 변호사를 선택했지만 막상 변호사가 되어보니 시장 안에서 전문가로 인정받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에 금융 전문 변호사, 특허 전문 변호사 등 법률 시장 안에서도 자신만의 전문 분야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친구는 자격증이 있어도 끊임없이 전문성을 증명해야 하는 구조를 보고는 차라리 관심 분야에서 사업을 하는 게 더 안정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 unsplash


그 이야기를 듣고 전문성에 대해 더욱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일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전문성을 갖고 싶어한다. 전문성은 언제까지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어떤 일을 계속 하고 싶을 때, 그 체계 안에 머무르고 싶을 때 전문성은 강력한 도구이다. 그러나 체계 밖으로 나서기로 결심했을 때 전문성은 무엇으로 남게 되는 걸까? 전문직을 그만둔 사람들에게 과거에 체득한 전문성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




급변하는 세상에서 전문성이란?


사람들은 전문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일하는 존재로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도구를 전문성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원에 가거나, 업계에서 좀더 인정받는 기업으로 이직하거나,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관련된 자격증을 따거나. 그렇게 전문성을 쌓으면 일하는 나를 단단하게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전문성이라기보다는 어디를 가든 커리어를 지탱해줄, 혹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디딤돌 같은 것이다. 그리고 한 개인이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디딤돌 중에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전문성이고, 그러니 많은 사람이 전문성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것일 테다.
- 제현주, 『일하는 마음』


우리에게는 어디서든 나의 커리어를 지탱해주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해줄 디딤돌로서 전문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불안한 만큼 더욱 전문성을 붙들고 싶어진다. 정작 내가 원하는 커리어가 무엇인지, 꿈꾸는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고민하기보다는 대학원 입학이나 이직, 자격증 정보를 알아보는 데 시간을 쓰게 된다. 원하는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되기 위해 무언가를 수행하려고 하니 마음만 조급해지고 손에 잡히는 것은 적다.


이 일을 계속할 만큼 좋은지, 이 일의 어떤 면이 나와 맞는지를 모른다는 것은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할지 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더구나 빠른 속도로 직업 트렌드가 바뀌는 세상에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미래를 위해 전문성을 쌓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재미있고 더 알고 싶어서 대학원에 가거나, 자격증 공부를 하거나, 업무 경험을 쌓는 것이 결과적으로 전문성을 가져다줄 수는 있겠지만 전문성을 쌓기위해 대학원, 자격증, 이직을 생각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뀌었다.


요즘 기업들은 직무 중심으로 채용을 한다. 이전에는 잠재 가능성을 보고 채용한 후에 부서에 배치했다. 지금은 인력이 필요한 부서에서 특정 직무 경험을 가진 전문가를 뽑는다. 일을 해보기도 전에 내가 어떤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지 알기란 어렵다. 비슷한 방향으로 이 일도 저 일도 해보면서 얻은 경험의 총합이 전문성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전문성은 결과가 아니라 이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경험의 총합이다. 전문성은 단기적인 학습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을 경험하며 축적되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전문성이 있으면 취업이 된다'는 말은 시작부터 잘못된 말이다. 특히 20대의 취업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신입 사원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전문성을 갖춘 개인을 기대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미래의 산업 경쟁력 하락을 예고한다. 단순히 돈을 벌지 못하는 개인이 많아진다는 문제의식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일 경험을 축적하지 못하고 미래를 맞이한다는 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일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 희망제작소, 『자비없네 잡이없네』




대체 가능한 기술, 대체 불가능한 마음


전문성에 대한 갈증은 '기술'의 영역으로 이어진다. 회사원들이 점심을 먹으며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돼. 요리를 배울 걸 그랬어."  회사원들이 늘상 부러워하는 '기술자'는 생계와 직결된 기술을 가지고 있다. 빵을 만드는 기술, 미용 기술, 디자인 기술, 코딩 기술 등등. 우리는 그 기술이 없어서 매일 이렇게 회사에 출퇴근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삼아 한탄한다.


기술은 그것을 가진 사람이 일할 때 필요에 의해 해석하고 사용하는 요소지, 그 자체로 전문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전문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기술을 중심에 놓는 경우가 많다. 어떤 업무를 수행할 때 개인이 사용하는 능력을 기술의 측면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곧 전문성을 갖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전문성은 대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대체 가능한 것이 된다. 지금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높은 기술을 연마한 누군가가 나타났을 때 나는 너무나 쉽게 대체 가능한 인력이 되어 버린다.
- 희망제작소, 『자비없네 잡이없네』


그러나 '기술' 그 자체만는 가장 '대체 불가능함'에 취약할수도 있다. 평소에 자주 가던 비건 베이커리에서 파트타이머 모집 공고를 올렸다. 공고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레시피를 얻기 위한 목적이거나 짧은 기간 근무 후 창업을 계획 중인 분들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레시피 유출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계약서 작성을 할 예정입니다.


베이커리는 '레시피'가 생명인 분야이다. 재료의 배합과 순서에 따라 식감과 맛이 다르다. 제품의 디자인이나 재료의 종류가 비슷할 수밖에 없다보니 서로서로 따라하는 경우도 많다. SNS에서 베이커리 사장님들이 제품  디자인과 레시피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성토하는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기술은 우리의 생각보다 복제와 대체에 취약하다. 


고유의 독창성을 가지고 개발한 모든 기술과 창작물은 그 저작권을 인정 받아야 하고, 도용과 복제에 대해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문제는 법적인 보호와 개인의 양심이 필요할만큼 기술은 손쉽게 대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처음 일을 선택하게 한 마음, 행동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마음, 꾸준히 지속하게 하는 마음. 대체 불가능한 마음이 전문성이 될 수 있다.




전문성; 깊고 넓은 경험


2년 전, 티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티 워크숍을 열었다. 세번의 개인 워크숍을 성공적으로 마치 후 자신감을 얻어서 웰니스 컨셉의 복합 문화 공간에 티클래스 제안서를 보냈다. 일단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미팅을 하러 갔다.


ⓒ dandan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만나자고 말씀드렸지만, 사실 저희는 좀더 경력이 오래된 분과 일하고 싶어요. 경력이 짧아서 실력이 없다는 게 아니에요. 다양한 상황에서 오래 일해본 분들이 돌발 상황에서 대응을 잘 하더라고요. 아직 저희도 성장하는 단계여서요.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있을만큼 경험의 폭이 넓은 분과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어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전문성의 척도는 깊이인 동시에 너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아래로도 옆으로도 확장성을 가질 수 있어야 전문가라는 정의를 업데이트했다.




전문성; 꾸준히 이야기하는 것


오랜만에 잊고 있던 인스타그램 계정을 검색해봤다. 한동안 자주 봤던 브런치 계정에 들어가봤다. 기억이 뜸한 그 시점부터 업로드가 멈춰있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몸이 안 좋아져서,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흥미가 떨어져서 서서히 그만두게 된다. 반대로 최근에 눈에 들어온 몇몇 북튜버의 유튜브 계정을 보니 이미 3~4년 전부터 꾸준히 영상을 올리고 있었다. 꽤 긴 시간동안 보는 사람이 많지 않아도 자신의 이야기를 지속해온 것이다.


당장 돈이 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계속 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냥 꾸준히 한다고 해서 언젠가 될 거라는 보장도 없다. 지속적인 실행만큼 방향성 있는 실행이 중요하다. 마인드 마이너로 유명한 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부사장은 책 『그냥 하지 말라』를 통해 애호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냥 하지 말고 하기 전에 생각하고 하라."


새로운 시대의 전문가는 학력이나 이력, 경력을 내세우는 전문가가 아니며, 단순히 덕후도 아닙니다. 근본이 있고 애호와 전문성을 갖추며, 그저 그런 자신을 브랜딩할 수 있는 개인들이 살아남을 겁니다. 깊게 하는 사람이 살아남습니다. 깊이 들어가면 오래하게 되고, 자연스레 역사가 생깁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분을 믿고 지지해줄 팬덤이 생기죠. 그게 곧 브랜딩 아닌가요?
- 송길영, 『그냥 하지 말라』


현재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데도 불안함에 뭔가 계속 배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거나, 퇴근 후에 책 쓰기 수업을 들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 모든 시도가 현실적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렵습니다. 내 몸에 체화될 만큼 실직적인 결과물을 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원데이 클래스를 매일 배우고 있는 셈이죠. 그게 아니라 일상에서 내가 하는 일 자체를 혁신하면 어떨까요? 예컨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하는 프로세스를 내재화하거나 업무 하나하나를 개선한다면 그 혁신과정 자체가 배움의 과정이 되어 내 경쟁력으로 치환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중요한 것은, 일을 해야죠. 더 중요한 것은, 대행을 주면 안 돼요. 
- 송길영, 『그냥 하지 말라』




새로운 전문가의 시대


더이상 자격증과 긴 경력이 전문성을 대변해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제 그 시간의 스토리까지 보려고 한다. 반대로 진정성 있는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다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사이드 프로젝트 코치로 활동하며 첫 코칭을 의뢰해준 분이 말했다.


"단단님은 사이드 프로젝트 전문가시니까요."


속으로 네? 제가요? 라고 생각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깊이 하고 있고 거기에 자신의 관점으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면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시대다. 꼭 회사를 그만두고 도전을 할 필요도, 새로운 일에 뛰어들 필요도 없다.


대학원 졸업장도, 자격증도, 10년 20년 경력 타이틀도 물론 존중받을만 하다. 오랜 시간동안 경험했고 노력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도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다. 10년, 20년을 지속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면 전문가가 되기도 전에 그 일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


사이드 프로젝트 강연에서 참석해주신 분들께 선물했던 문장이다.


결국 크면 대단한 게 되는 게 아니라 애초에 하던 걸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 거구나 싶다
- 정세랑, 『이만큼 가까이』

모두들 세상에 맞춰 살아가지만, 언젠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춰야 한다
- 『박스트롤』 감독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내가 애초에 하던 것을 본격적으로 깊고 넓게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일에 나만의 관점이 생기게 된다. 완벽한 수행자가 아니라 탁월한 전문가가 되는 것, 일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전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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