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가 넘치는 시대. 볼만한 것들이 정말 많아졌을까?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 볼만한 것들이 정말 많아졌을까?
재미있거나 유익한 콘텐츠를 보려면 플랫폼을 구독해야 한다. 그 콘텐츠만 따로 살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콘텐츠의 양은 많아졌지만 마음껏 볼 수 없게 되었다. 무료 콘텐츠 플랫폼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찾으려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큰 마음을 먹고 플랫폼 하나를 골라 구독을 하고 나면 또 다른 플랫폼 콘텐츠가 좋아보인다.
콘텐츠와 오디언스(독자)가 서로 긴장감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셈이다. 줄다리기가 한창인 운동장에 가보면 형형색색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플랫폼이라는 줄이 오디언스를 유혹한다. 오디언스는 자신의 가치관, 세계관과 가장 잘 부합하는 플랫폼을 선택한다. 콘텐츠가 전하는 메시지는 일관되게 한 무리의 오디언스를 불러모은다.
그리하여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 큐레이션이 필요한 시대, 플랫폼에 소속되는 이 시대의 콘텐츠는 커뮤니티가 되었다. 더이상 대중은 없다. 내가 아는 유행과 옆자리 동료가 아는 유행이 다르다. 같은 세계를 살아가지만 각자 다른 세계에 속해있다.
에어팟의 노이즈캔슬링 기능은 적절한 시점에 등장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겠다는 것. 내가 관심있는 소리만 허용하겠다는 것. 시대의 캐치프레이즈는 <더 넓은 세상으로 가야 한다>에서 <물 안 개구리라도 상관없다>로 바뀌었다.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필터 버블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대중의 시대가 과연 개인의 차이를 얼마나 수용했는지 떠올려보면 무엇이 더 낫다는 말을 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이미 바뀌어버린 흐름이다. 더 이상 대중은 없다. 다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는 없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좁히고 또 좁혀야 한다. 그들의 심장에 화살을 명중시켜야 한다.
유튜브 [단순한 진심] 채널에서 무과수님이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해도 상관 없어요!" 라고 말할 때 짜릿한 소름이 돋았다.
주류에 휩쓸려서 내가 원하는 행복이 뭔지도 모르고 떠내려가는 삶보다 낫다
- 정연진 <뭐든지 가뿐하게 드는 여자>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 동류집단에서 시작해야 한다.
- 세스 고딘 <마케팅이다>
콘텐츠 플랫폼은 커머스가 되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은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커머스를 시작했다. 사람들을 오래 잡아둘 수 있다면 그만한 커머스 플랫폼이 없다.
콘텐츠 플랫폼은 관심을 기반으로 사람을 불러모은다는 점에서 커뮤니티다. 커뮤니티 플랫폼도 커머스화 되었다. 온라인 집들이로 시작한 오늘의집, 블로그 커뮤니티로 시작한 무신사도 지금은 업계 1위의 커머스 플랫폼이 되었다.
내가 필요한 상품과 친구에게 필요한 상품이 다르다. 예전에는 잘 팔리는 상품에 판매가 집중되었다면 이제는 롱테일의 꼬리가 두터워졌다. 가성비 좋은 판매 1위 상품보다는 가격이 조금 비싸거나, 구하기 어려워도 나에게 딱 맞는 상품을 구매한다.
좋은 이야기는 사람을 불러모은다. 좋은 사람들은 사람을 불러모은다. 사람이 모이면 설득할 대상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오디언스가 파편화되고 제품의 퀄리티가 상향평준화되고 나자, 오디언스는 브랜드의 스토리텔링을 보고 제품을 구매한다. 그런데 그 스토리텔리이 가짜였다면? 그것은 기업이 지켜야 할 가장 큰 약속을 어긴 것이다. 품질, 디자인, 가격보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가 형성한 커뮤니티 오디언스를 얼마나 진정성있게 섬기고 공감하느냐이다.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오디언스를 대하는 브랜드는 퇴출된다.
내가 운영하는 독서모임에 참여한 지인이 물었다. "어떻게 사람들 말에 그렇게 잘 공감할 수 있는거야?" 기억 속에 여러 명의 멤버들이 스쳐지나갔다. 일에서의 성장과 균형을 추구한다는 메시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각자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모두 달랐다. 나는 그들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지인의 질문에 "어떻게든 이 커뮤니티를 잘 운영해하니까 노력해야지."라고 답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만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내가 만든 커뮤니티에 온 오디언스를 진심으로 섬기고 공감해야 한다는 것을.
오디언스를 진심으로 공감하고 섬겨야 내가 만든 콘텐츠와 커뮤니티가 유지될 수 있다.
진정성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꾸준함이다.
꾸준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변화에 대한 믿음이다.
브랜드/콘텐츠/플랫폼/커뮤니티는 스스로 자신들의 오디언스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거라고 믿어야 한다.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하는 콘텐츠를 믿어줄 오디언스는 없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을 지키듯이, 자신만을 위한 리추얼을 행하듯이, 콘텐츠는 쉬지 않고 반복해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모든 콘텐츠가 말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같다.
"더 좋은 곳으로 가자"
어떻게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는지 방법론이 다를 뿐이다.
유튜브 채널 <드로앤드류>는 끊임없이 말한다. 제시하는 도구는 SNS다.
"내가 좋아하는 것 = 잘하는 것 =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서 꾸준히 개발하면 콘텐츠로 독립할 수 있어요."
자아성찰 커뮤니티 플랫폼 <밑미>도 끊임없이 말한다. 제시하는 도구는 리추얼이다.
"하루 중 잠깐, 나를 위해 시간을 내세요. 매일 반복해서 하다보면 일상을 지지해줄 단단한 힘이 생깁니다."
운동, 명상, 요가, 요리, 베이킹, 영화, 책... 도구는 수도 없이 많다. 모든 콘텐츠 커뮤니티는 자신만의 도구를 선택해서 꾸준히 말한다. 계속해서 함께 한다면 당신은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그렇게 커뮤니티는 오디언스를 단단히 붙잡아둔다. 오디언스는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 기대감을 갖는다.
믿음은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이 있다. 콘텐츠는 스스로 "믿는" 메시지 전달을 지속한다. 오디언스는 그 "믿음"을 믿는다. 그렇다. 믿음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다. 믿음은 믿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믿음은 꾸준한 반복으로 전달된다.
동류집단을 구성하는 것에서 커뮤니티의 역할이 끝나서는 안 된다. 콘텐츠는 오디언스를 연결시켜야 한다. 오디언스가 자신과 잘 맞는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대중이 사라진 시대, 더 이상 친구/동료와 접점을 찾이 어려운 시대에서는 커뮤니티가 친구를 찾아줘야 한다.
사람들은 순전히 "마음맞는 친구를 찾기 위해" 커뮤니티를 찾기도 한다. 그것도 꽤 비싼 돈을 내면서 말이다. 커뮤니티는 오디언스가 잘 맞는 친구를 단번에 찾을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머신러닝, AI, MBTI, 심리테스트... 가능한 모든 도구를 동원해서 오디언스의 교류를 성공시켜야 한다. 이 단계에서 실패한다면 아무리 열심히 오디언스를 분석하고, 꾸준히 콘텐츠를 만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인스타그램은 오류가 잦은 편이다. 가끔은 활동이 제한되기도 한다. 2년 전, 인스타그램으로 워크샵 멤버 모집을 시작한 날이었다. 갑자기 인스타그램 계정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경고 메시지가 떳다. 모든 게 멈춰버렸다. 콘텐츠 생산과 유통, 홍보의 모든 활동을 인스타그램으로만 했기 때문에 대안이 없었다. 서비스팀에 메일을 보내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때 알았다. SNS는 결국 남의 부동산이라는 것을.
유튜브도, 네이버 블로그도 본질은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크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플랫폼이라고 할 지라도 결국은 그 기업의 자산이다. 꼬박꼬박 월세를 낸다고 해서 내 집이 되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의 정책과 산업, 의사결정에 내가 애써 쌓아온 콘텐츠, 커뮤니티, 오디언스를 단번에 잃을 수도 있다.
콘텐츠를 만드는 궁극의 목적은 독립이다. 독립된 플랫폼을 갖는 것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브랜드나 개인이 자신이 하나의 플랫폼이 되기를 바란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연결하기를 원한다. 기업 뿐 아니라 개인도 브랜딩을 해야 하는 시대가 온 이유다. 회사를 벗어나 경제적 독립을 하고 싶은 것처럼 콘텐츠도 결국은 플랫폼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처음에는 플랫폼에 맞춰서 콘텐츠를 만들며 성장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성장을 만든 후에는 더 이상 플랫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회사를 다니면서 개인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것은 시대의 파도를 열심히 탄 결과였다. 내가 가진 세계관을 공감해줄 오디언스를 찾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연구해 콘텐츠로 만들고, 콘텐츠를 지속해서 생산하면서 커뮤니티를 강화하고 있다. 뉴스레터는 개인의 메일함에 발송되는 매체라는 점에서 비교적 독립적이다. 물론 메일링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독립된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메일 주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SNS와 다르다. 메일링 서비스를 바꿔도 독자들을 그대로 가지고 갈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플랫폼이 아니다. 나와 잘맞는 플랫폼은 좋은 도구일 뿐이다. 사람들은 커뮤니티의 콘텐츠를 통해 "자신이 믿는 세계를 지지하는 데서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들의 정체성과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아야 한다.
그들의 성장을 돕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앞으로의 콘텐츠, 커뮤니티, 플랫폼, 브랜드, 그리고 우리 개인 모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그러니 지금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믿고 싶은 세상은 어떤 세계인가?"
"무엇이 우리의 일상을 더 낫게 만들어주는가?"
이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도구를 찾아서 계속 말해야 한다. 오디언스가 모이면 그들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신뢰를 절대 저버려서는 안 된다.
앞으로의 콘텐츠는 크리에이터의 일과 삶 자체로 검증받을 것이다. 일의 성과와 삶의 모습으로 평생 증명해야 한다. 그러면 그가 만드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모인다. 그렇게 커뮤니티가 된다. 그리고 그 커뮤니티는 플랫폼이 되고, 커머스가 될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일이 되고 돈이 벌리는 방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