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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Jan 30. 2022

퍼스널 브랜딩의 배신

무엇을 위해 퍼스널 브랜딩을 하는가?

지난 1년 동안 퍼스널 브랜딩을 열심히 공부했다. 작년 4월에 출간한 에세이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책 판매에 큰 도움이 될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1,400명
커리어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 글 기고
2개 브랜드와 브랜디드 콘텐츠 제작
자체 기획한 온라인 유료 모임 런칭/운영
뉴스레터 발행 시작 & 스티비 크리에이터 선정
북저널리즘 <저널> 작가 선정


포트폴리오에 기록할만한 경험이 하나씩 쌓일수록 뿌듯했다. 이 성취감이 더욱 퍼스널 브랜딩을 열심히 공부하게 만들었다. 온라인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유명한 퍼스널 브랜드를 가진 인플루언서의 콘텐츠를 구독했다. 영향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생태계를 조금씩 이해해간다고 느꼈다.


인플루언서 집단에 아주 살짝 발을 들여놓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상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처음에는 공부와 실행을 너무 열심히 해서 번아웃이 왔다고 생각했다. 이번 일만 마무리하고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약만큼 중독성 강한 퍼스널 브랜딩 성취감 때문에 새롭게 들어오는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콘텐츠 대부분이 채소생활, 책, 글쓰기에 대한 것들이었고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제안들이었다. 직장인으로서 병행할 수 있는 제안이라면 모두 수락했다.


/

언제나 열심히

그게 문제야


어느새 회사 일처럼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치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것도 너무나 열심히. 맞다 '열심히'하는 것, 언제나 그게 문제였다. 콘텐츠 시장은 INPUT과 OUPUT이 절대 비례하지 않는다. 짧은 콘텐츠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들이는 노력, 시간, 정성은 어마어마한데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소득은 너무 적다. 아주 소수의 크리에이터만이 부와 명예를 가질 수 있는 시장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조금의 소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달려왔다.


친한 지인과 통화를 하다가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네가 기획한 모임과 콘텐츠를 보면, 정말 너-어어어무 정성이야. 꾹-꾹 눌러 담겨 있어. 알아주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말 좋고 감동이지.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깊이 생각하고 오래 읽는 거 힘들어해. 허탈할 만큼 가벼운 이야기를 찾아다녀." 맞는 말이다. 꼭 그가 미디어 회사에 다녀서가 아니라 정말 현실이 그러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기획한 트레바리(국내 최대 독서모임 플랫폼) 독서모임에 하루 놀러 온 멤버가 모임이 끝나고 개인 카톡을 남겼다. "열심히 모임 리딩 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파이팅입니다!" 열심. 이번에도 나의 키워드는 열심이었다.



/

즐기는 마음

VS 해내는 마음 


그동안 내가 기획한 모임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임 전후로 연락을 하거나 공지를 하면 반응이 뜨뜻미지근한데 막상 모임을 하면 생각보다 참여도 활발하고 분위기도 좋았다. 모임의 주제가 독서, 내면 탐구 같은 것들이라서 모인 멤버의 성향이 낯을 가리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지금까지는 그게 맞았다. 멤버들은 모임이 끝나고 서로 SNS를 지켜보며 일상을 응원하는 친구로 남았다. 몇 번의 반복 경험을 통해서 나의 정성 가득한 모임 기획이 멤버들의 끈끈한 내적 유대를 만들었다고 믿었다.


진실은 변화의 순간, 분명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대형 독서모임 플랫폼인 트레바리 파트너 리더로 활동하면서 진실의 순간을 맞이했다. 기존에는 내 콘텐츠를 지켜봐 온 4~6명 소수의 멤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임에 온 참가자들은 이미 나와 내적/외적 친밀감이 형성된 상태였다. 반면 트레바리 독서모임에서는 15명이 넘는 멤버들이 내 콘텐츠가 아닌 트레바리라는 거대 플랫폼을 통해 모였다. 내가 쌓아둔 콘텐츠라는 갑옷을 벗어던지고 맨 몸으로 전장에 나섰을 때 내 마음은 이랬다.


모임을 즐기기보다는 잘 해내야 한다는 마음


이번에도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정성을 쏟으면 잘 될 거라고 믿었다. 한두 번 모임을 지나고 나면 서로 내적 친밀감을 형성하게 될 거고, 마음을 터 놓는 따뜻한 친구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상했다. 나의 정성과 노력이 무색할 만큼 멤버들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독서모임 외부활동으로 모인 몇 명의 멤버들에게 용기 내어 물었다. "왜 멤버들 반응이 미적지근할까요?" 한 멤버가 독서모임을 하는 날 끝나고 바로 집에 가지 말고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작 나는 트레바리 모임이 끝나면 너덜너덜 지쳐서 바로 집으로 직행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멤버들은 그게 아쉬웠던 것이다.


트레바리에서는 매 순간 나의 스토리를 새롭게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기존에 SNS로 모집했던 독서모임은 나를 아는 사람들만 왔기에 '증명'의 과정이 필요 없었다. 열심과 정성만으로도 분위기가 활활 타올랐다. 그 뜨거운 분위기에 덩달이 신이 나서 즐길 수 있었다. 열심히 하면 성과가 나고 즐기는 경지에 이른다는 나만의 공식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러나 퍼스널 브랜딩으로 구축한 세계 바깥에서는 달랐다. 일단 내가 진심으로 즐겨야 열심히 할 판이 조성되고 그 시간이 쌓여 성과가 나는 것이었다. 이 세계 밖에서는 내가 출간 작가라는 것이,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400명이라는 것이, 브런치 구독자가 2,200명이라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 공중파 방송에 출연하는 유명한 작가님이 모임에 깜짝 게스트로 왔을 때에도 "오늘 작가님을 알게 되어서 좋았어요!"라는 코멘트가 나올 정도였으니까 내가 쌓은 작고 귀여운 퍼스널 브랜딩이 외부 세계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보다는 정말 이 시간을 즐기는 마음. 그게 중요했다. 정작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새로운 퍼스널 브랜딩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

제대로 된

퍼스널 브랜딩이란?


그러나 이 깨달음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퍼스널 브랜딩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내가 퍼스널 브랜딩을 대하는 태도는 이랬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 열심히 정성스럽게 계속하다 보면

→ 사람들이 알아주고 좋아해 주겠지?

→ 그 마음이 모여 팔로워가 늘고 영향력이 늘면

→ 퍼스널 브랜딩이 알아서 되고 인플루언서가 되어서

→ 나에게 새로운 일의 기회를 가져다주겠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이 생각 메커니즘이 이 시장에서 소수만이 승리를 독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이 충돌했다. 팔리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던 이유를 알았다
- 콘텐츠 바이블



많은 퍼스널 브랜딩 전문가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먼저 찾고 - 거기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연결점을 찾아서 - 꾸준히 지속하다 보면 퍼스널 브랜딩에 성공한다>고 말한다. 이때 전문가들이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연결점을 아주 철저하고 온전하게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닿으려는 순간부터는 내가 아니라 상대(오디언스)가 먼저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많은 퍼스널 브랜딩 지원자들이 길을 잃는 것 같다. 이렇게까지 오디언스에게 맞추면 내 고유 매력을 잃는 것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방식 말고 오디언스가 원하는 방식에 맞추는 게 재미가 없는 데 어떻게 지속할 수 있지?


나 또한 지금 바로 이 벽 앞에 가로막혀 있는 상태이다. 이 구간을 돌파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알고 있다. 이 과정 또한 즐길 수 있는 마음. 철저히 오디언스의 입맛에 맞추어도 재미를 느끼고 계속할 원동력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것.


/

번아웃의

진짜 원인


일단 지금은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이 구간을 돌파하지 못한 나에게 주어진 것은 '번아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에서도 번아웃이 찾아와 이중 번아웃 상태가 되었다. 


내가 내린 번아웃의 정의는 <자율성 상실로 인한 좌절감>이다. 원하는 삶의 형태가 분명히 있지만 외부의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애쓸 때 번아웃이 온다. 반대로 진정한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쉴 때 가만히 TV를 보는 것보다 운동이나 취미 활동을 하는 것이 더 에너지가 나는 이유이다.


퍼스널 브랜딩이 번아웃을 가지고 왔다. 퍼스널 브랜딩으로 소중한 기회를 얻고, 작은 성취를 연결해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번아웃을 맞이했다. 퍼스널 브랜딩으로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방식으로 자유롭게>하면 안 되고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애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면서 오디언스의 입맛을 맞추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스타트업의 성장 전략은 두 가지이다. 카테고리를 확장하거나 채널을 확장하는 것.

퍼스널 브랜딩의 성장 전략은 반대이다. 카테고리를 좁히거나, 채널을 좁히는 것.


더 깊이 파고드는 것. 지금까지는 퍼스널 브랜딩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야기 범위를 넓히고 (카테고리), 여러 플랫폼(채널)으로 영역을 넓혔다. 그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확장 전략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모를 수밖에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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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놀이처럼

놀이를 일처럼


일과 놀이에 대해 브런치에 올린 글이 있다. 


일과 놀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무엇이 일이고 무엇이 놀이인지 한참을 찾아 헤매던 2021년이었다. 이제야 눈에 보인다. 무엇을 일이라고 할 수 있는지, 무엇을 놀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어떠한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누군가를 위해 반복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일’이다. 그것이 돈이 되지 않아도, 인정을 받지 못해도, 재미가 있건 없건 간에.

어떠한 일을 할지 말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고 싶지 않을 때는 놓아버려도 된다면, 아무런 결과물이 남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은 놀이이다. 설령 그것이 돈이 되고, 큰 인정을 받는다고 해도.

그러니 놀이를 일처럼 하려면 꾸준히 결과물을 만들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일을 놀이처럼 하려면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어야 한다.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아야 한다.


이 글을 쓸 때까지도 그래서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돌파구는 <정리>다. 그동안 끝없이 확장해 온 사이드 프로젝트를 저글링 하듯이 돌리고 있었다. 하나라도 떨어지면 안 된다는 위기감 때문에 '열심히 정성을 다해 달려가는 것'에 집중했다. 그 방식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딱 여기까지 였다. 이제 더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축소 전략이 필요하다. 브런치/블로그/인스타그램/저널/뉴스레터/퍼블리/밑미/트레바리... 끝도 없이 확장해 온 나의 커뮤니케이션 툴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꾸준히 업로드해야 하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정말 내가 쌓아 올려야 할 이야기에 집중할 때가 왔다. 남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찾느라 정말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잊고 있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집중해야겠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이다. 퍼스널 브랜딩 시장에서 멈춤은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도태되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번아웃이 올 때까지 달릴 수밖에 없었다. 멈추는 순간 바로 이 경기장에서 퇴장당할 테니까.


퇴장당해도 좋다는 배짱.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 배짱이다. 그만한 용기가 있어야 내가 가진 것을 오디언스가 원하는 이야기로 끄집어낼 수가 있다.


2022년 새 해,

내가 찾아 헤매던 용기는

퍼스널 브랜딩을 그만둘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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