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추억은 시시하다는 거짓말

요가매트에 누워 떠올린 추억

by 단단

1학년 대학 축제 때였어. 유명한 가수가 마지막 곡을 부르고 있었고 (싸이인지 박진영인지 10년이 넘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는 집에 가려고 가방을 찾고 있었어. 그때 우리 집이 파주로 이사를 가버려서 9시만 넘으면 집에 갈 준비를 해야 했거든.


마음은 급하고 마지막 차가 떠나기 전에 어서 나가야 하는데 가방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서 망연자실하게 둘러보는데 저 옆에 가방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언덕이 있더라. 일찌감치 노천극장에 자리 잡고 첫 대학 축제를 즐기느라 내 가방 위로 차곡차곡 몇십 개의 가방이 쌓여가는 것을 몰랐던 거야.


가방을 꺼내려면 모든 사람이 다 나간 후에야 가능하겠구나, 싶어서 그냥 포기할까 하던 차였어. 나를 보던 네가 친구들을 제치고 달려와 있는 힘껏 가방 더미들을 헤집는 거야. 만화에서 보면 물건 찾을 때 팔이 안 보이게 휘젓잖아. 정말 그 광경이었어. 나는 순간 또 멍해져서 멈춰서 서서 바라보기만 했는데 공중에서 너의 팔이 몇 번 더 휘저어지고 나니 드디어 가장 아래에 깔린 내 가방이 보였어.


“이거지?”


나는 정말 그때 네가 영웅 같아 보이면서도, 신기한 거야. 나라면 그냥 보고만 있었을 텐데, 찾는 시늉을 하다가 못 찾겠다고 포기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열심히 찾아줄 수가 있지?


요가매트 위에 누워서 편하게 호흡을 내쉬다가 문득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어. 왜 갑자기 아주 오래된 그날이 생각났을까 궁금했는데 갑자기가 아니었어. 나는 어제부터 네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


오랜만에 전화로 안부를 묻던 네가 나한테 코로나에 육아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사람들을 못 만나는 거라고 했잖아.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나와는 달리 사람들과 함께일 때 힘을 얻는 너니까. 단단한 머리로는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도 말랑한 머릿속에서는 그 말을 계속 생각했나 봐.


추억이 힘이 약하다는 것은 잘난 척이거나 거짓말일지도 몰라. 추억에만 기대어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문제겠지만, 공유한 기억이 있기에 더 이해하고 싶어 지니까. 그래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더 노력하고 싶어 지니까.


나는 우리의 그날 밤을 추억하며 너를 이해해보려고 했던 것 같아. 유달리 공감을 잘하고, 감정이 풍부한 너는 그 마음이 넘쳐서 힘들어할 때도 있잖아. 그때마다 나는 중요한 건 남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힘들 땐 너 생각만 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건 단지 내가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식이었던 거야.


과거를 후회하는 마음과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을 저울질한다면 나는 혼자 올라탄 시소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사람이니까. 앞으로 어떻게 하지, 내일은 어쩌지 이 걱정이 앞선 나에게 추억은 힘이 약하다고 생각했거든. 나는 매일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데 과거에 매여있고 싶지 않기도 했어. 그래서 추억을 시시하다고 생각했어.


추억을 내 마음대로 취사선택해 보면 어떨까. 오늘의 내가 기억에서 다 지웠던 부끄러운 자의식 과잉의 대학 생활을 넘치는 우정으로 기억했듯이. 너는 이 척박한 코로나 육아 시절을 너대로 다르게 기억해보는 거지. 무엇이 좋을까, 나중에 좋은 생각이 나면 알려줘.


또 한 10년쯤 지나서 같이 추억해보자.

keyword
이전 02화언어는 불완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