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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없는 위로도 괜찮아

채널예스 에세이 공모전 <나도, 에세이스트> 가작 수상

by 단단

* 예스24의 문화 웹진 채널예스에서 매달 진행하는 에세이 공모전 <나도, 에세이스트> 3월 가작 수상작입니다. 아래에 김신회 작가의 수상작 심사평도 남겨 두었습니다. 김신회 작가님, 따뜻한 칭찬의 글 감사합니다.




나는 위로에는 재능이 없다. 친구가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사람이다. 뻔한 위로가 오히려 무성의하게 느껴질까봐 머리에 떠오르는 말들을 삼키고 단어를 다시 고르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몇일이 흘러버리면 이미 위로를 건네기에는 늦어 버렸다. 혼자서 속으로만 그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보다 표현하지 못하고 끝이 난 것이다. 결국 뻔한 위로도 건네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위로를 하는 것만큼 듣는 것도 어색하다. 기분 좋은 칭찬을 들을 때처럼 ‘고맙다’고 말하면 될 텐데 그 이상의 답을 해야 할 것만 같아서다. 적절한 대답을 찾는 진지한 내 얼굴을 보고 상대는 ‘위로가 도움이 안 되었나’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사실은 정말 힘이 되었는데, 그렇다고 말을 하고 싶었는데. 반대로 어떤 때에는 상대의 위로에 지나치게 긴 답신을 보내기도 한다. ‘부담스러울까?’ 고민 끝에 보낸 문자가 전송되고, 정성스러운 답장을 확인하고서야 안심한다.


텔레비전, 책, SNS에는 위로의 말이 많다. 당사자도 아니면서 그들의 위로를 보면 따뜻해진다. 괜히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까지 하고 그 말을 노트에 옮겨 적기도 한다. 위로를 안하는 게 아니라 너무 잘 하고 싶어서 문제인 것이다. 내 말 한 마디가 친구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기를, 내 눈빛이 따뜻한 포옹으로 느껴지기를, 내가 고르고 고른 말이 쉽게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꾸만 위로를 무겁게 만든다.


얼마 전 친구가 이별을 했다. 처음으로 먼저 좋아한다고 고백한 남자였다. 이별 즈음 친구는 갑상선에 이상이 생겨 몸도 안 좋아졌고, 코로나 때문에 일도 잘 풀리지 않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려던 차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 헤어졌어.” 친구들 모임의 단체 카톡창이었다. 이십 대에는 친구의 이별 소식에 “왜 헤어졌어?” “누가 헤어지자고 그랬어?” 질문을 쏟아냈는데, 서른이 넘어서는 묻지 않게 되었다. “괜찮아? 걱정된다.” 고르고 고른 말을 건넸다. “만나고 헤어지는 게 뭐 별거 있겠니.”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힘들 때일수록 감추려는 오랜 친구의 속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코로나로 연말 모임이 어려워지고 줌으로 모이자는 제안이 나왔다. “나는 다음에 모일게. 즐거운 시간 보내”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하는 화상 채팅인데도 못 온다고? 덜컥 걱정이 되었다. 위로를 건네야 한다. 이번에는 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 “너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나에게 너를 위로할 기회를 주면 좋겠어. 지금 당장 어렵다면 말하고 싶을 때 알려줘. 언제든 괜찮아.”


“위로가 되었어.” 한참 뒤 친구로부터 답장이 왔다. “너가 나를 생각하며 해준 말이 따뜻하게 느껴지더라. 고마워.” 위로가 되었다는 그 말이 그 순간 나에게 훅 하고 다가왔다. 안도감이었다. 오래 준비한 일이 잘 마무리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과도 비슷했다. 이 안도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시간이 조금 지나고 알았다. 위로를 받은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내 말이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쓸만한 위로만 건네려다 보니 위로가 어려워진 것이다.


애초에 위로는 ‘쓸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위로다. 도움을 주는 게 위로의 목적이 아니다. 어차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문제 해결은 결국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니까. 위로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위로를 주고 받는 일이 한결 편해졌다. 힘든 일이 생기면 마음 편히 친구의 호의에 기대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친구들에게 위로의 말 대신 안부를 묻기도 했다.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그것이 위로를 주고 받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 김신회 작가의 심사평

위로가 필요한 순간, 제대로 된 위로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 우리를 위해 이 글이 필요합니다. <쓸모없는 위로도 괜찮아>는 진정한 위로는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위로할 때도 우리는 ‘위로 잘하는 내 모습’을 신경 쓴다고 하신 부분, 내 위로의 말이 ‘쉽게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꾸만 위로를 무겁게 만든다.’는 문장에서는 심리학적인 통찰마저 느껴졌어요! 이 문장들에 밑줄을 그으면서 저도 모르게 ‘그렇지. 정말 그렇지!’를 되뇌게 되었습니다.

‘위로는 쓸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 ‘위로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주는 것’이라는 문장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숙연해졌습니다. 그동안 제가 해온 위로의 말들을 되돌아보게도 되었고요. 일상적인 이야기를 통찰력 있는 글로 완성하신 글쓴이의 재능에 응원을 보냅니다!




** 올해 2월부터 매달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에 글을 내고 있어요.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 두번 떨어졌지만 저는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제 글이 필요한 분들께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크고 작은 기회들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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