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은 해결되는 게 아니라 해결하는 것이다
처음 비대면 세상을 맞이했을 때, 새로운 방식이 어쩌면 차별의 벽을 허물어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몸이 불편한 사람, 멀리 사는 사람, 육아로 인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사람들이 한 데 모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배달되기 시작했고 온라인으로 가능하지 않을 것 같던 서비스들이 이제는 비대면으로 제공된다.
특히 문화와 교육 분야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가 컸다. 질 좋은 문화 교육 콘텐츠들이 서울에 집중되어있지만 모두가 평등하게 온라인으로 누리는 세상이 된다면 차별의 그림자가 희미해지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서울에 살고 있는 나 또한 방 안에서 편리하게 다양한 온라인 워크숍과 강의에 참여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이 보고 들을 기회가 있었고, 활동할 수 있는 온라인 모임이 늘어났다. 이전에는 모임을 하려면 모임 진행 시간 외에도 외출 준비와 이동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지금은 노트북만 켜면 되니까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
비대면 세상을 산 지 꼭 1년이 지났다. 과연 차별의 벽은 허물어졌을까?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비대면 시대에 어떤 차별들이 새로이 생겨나고 공고한 벽을 세웠는지를. 비대면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이 밀려났다. 공부방과 전자 기기를 가질 수 없는 아이들이 교육 기회로부터 멀어졌고, 배달을 할 수 없는 서비스들은 문을 닫았다. 온라인과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은 코로나 이전에도 이후에도 역시 소외되었다. 홍익대 정문 앞 산울림 소극장에 위치한 자연주의 식당 수카라가 14년 6개월의 역사를 뒤로하고 영업 종료를 알렸을 때 확인 도장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차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대상을 바꾸었을 뿐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좌절은 변해가는 세상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미리 변화에 준비하고, 흔들리지 않을 내공을 쌓고, 빠르게 시도하고, 위험을 분산했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 말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미처 시도하기도 전에 등을 돌려야 했던 많은 눈빛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취업을 준비해야 했던 사람들, 당장 업을 바꾸기가 어려워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에게 '더 열심히 했어야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누리는 오늘의 평안이 오롯이 내가 열심히 산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마음속에서 헤매다가 새로운 SNS 플랫폼 클럽하우스를 소개하는 기사를 보았다. 글과 이미지, 영상 기반의 기존 플랫폼과 달리 클럽하우스는 '말이 오가는 대화의 회복'을 내세우며 빠르게 영향력을 확산하고 있다. 유명인들이 클럽하우스 체험 후기를 남기면서 그 흐름이 가속화되었다. 거기다 초대장을 받아야만 가입이 가능하고 IOS 기반 기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제약이 이 플랫폼을 더욱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주었다.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입장할 수 있는 이 곳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과는 달리 '피드'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팔로우한다면 그 이유는 플랫폼에서 차곡차곡 쌓아 보여준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팔로우할 만한 영향력'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플랫폼에서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마이크는 소수에게 돌아간다. 누구나 들을 수 있지만 누구나 말할 수는 없다. 심지어 들을 수 있는 '누구나'도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나는 지금 클럽하우스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클럽하우스가 비대면 시대의 산물이라는 가정하에 우리가 맞닥뜨린 이 시대의 차별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클럽하우스를 통해 본 비대면 시대의 관계란 소수가 말하고 다수는 듣는 방식이 된 것이다.
인스타그램이 생겨나고 가장 큰 변화는 인기 카페 앞 줄은 더 길어졌고, 나머지 카페 앞은 한산해졌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비즈니스나 콘텐츠 제작을 하는 사람들만 체감했던 이 '쏠림과 상실'은 이제 우리 모두에게 다가왔다.
비대면 시대의 직전 우리는 한창 로컬 문화의 가능성에 고양되어 있었다. 감각적인 동네 카페와 취향이 다양한 동네 서점에서 다양한 콘텐츠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독립 서점에서 열리는 소소한 문화 행사들은 콘텐츠 제작자들 간의 내공 격차를 줄여주는 중간 지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곳은 다양한 규모와 깊이로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동네 기반의 작은 판들이었다. 아직 성장해야 할 사람들이 기반을 다질 수 있는 놀이터이자 훈련장이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일 때는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자신과 관련이 있는 콘텐츠인 경우
- 취향이 비슷하거나, 지인의 콘텐츠이거나, 동네의 콘텐츠이거나
수준 높은 콘텐츠인 경우
- 깊이 있는 통찰이 있거나, 유명인 또는 권위자의 콘텐츠이거나
비대면 시대가 되면서 수준 높은 콘텐츠로 사람들이 더욱더 몰리기 시작했다. 시공간의 제약, 참여 인원의 제한이 없어지면서 이왕이면 더 잘하는 사람, 더 재미있는 사람, 더 유명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또 한 번의 '탈락 현상'이 나타난다.
비대면 시대에 적합한 콘텐츠로 관심이 집중되었다. 비대면 시대에는 '언어적 소통'이 중요하다. 말과 글이 그것이다. 많은 마케터들이 비대면 시대에는 글쓰기 능력이 중요하다고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의 변화만 봐도 알 수 있다.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바뀌었다. 회의를 잡고 직접 만나서 간단히 설명하면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바로 옆자리 동료에게 몇 마디 물어보면 해결되는 일들도 있다. 이전에는 얼굴을 보고 해결하던 일들을 이제는 메일을 쓰고, 메신저를 남기고, 문서로 정리한다. 몇 마디 말에는 언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비언어적 소통들이 있었다. 방금 임원 회의에서 나온 팀장의 표정, 옆팀에서 소리 높여 언쟁하는 사람들의 대화 같은 정보들이 복합적으로 만들어내는 '비언어적 메시지'들이 있기 때문에 몇 마디 말로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돌리며 "뭔지 알지?"가 가능한 상황들이었다. 이제는 그런 비언어적 맥락을 제외하고 명확한 언어로 표현해야 이해할 수 있다. 언어 사용 능력이 업무 능력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것이다.
친구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봐도 그렇다. 비대면 시대 이전에도 "아, 이건 만나서 해야 하는 이야기인데." 라던지 "문자로 이야기해서 감정이 잘 전달되지 않나 봐. 화난 줄 알았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 우리는 말을 하고 글을 쓰며 소통을 하고 있지만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촘촘하고 넓은 '맥락과 분위기'로도 대화해왔다. 분위기와 맥락이라는 비언어적 메시지 자리에 언어적 메시지가 들어오면서 언어 능력으로 일상에서의 소통 능력 지위가 나뉘게 되었다. 말하는 지위와 듣는 지위로.
우리는 상대의 눈을 바라보지 않아도 주변시로 상대의 존재와 움직임을 알아챈다. 말없이 손을 잡아 주는 것이 때로는 그 어떤 말보다 나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비언어적 소통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갑자기 자신에게 익숙한 도구를 잃은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껏 비언어적 메시지 전달에 뛰어난 사람들이 존재감을 드러내 왔다. 매력적인 아우라, 강렬한 카리스마, 따뜻한 온기를 뿜어내는 사람들을 이끌리듯 바라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글쓰기, 팟캐스트 진행, 유튜브 제작에 뛰어난 실력을 갖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 중 실제로 만났을 때 카리스마 있게 관계를 이끌기보다는 차분하게 대화하는 경우가 많다. 비대면 시대는 이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마이크를 잡을 기회, 말하고 쓰는 것으로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었다. 퇴근 후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나에게도 비대면 시대는 기회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 기회를 떠올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시도들을 생각하던 즈음 연달아 관심 갖고 지켜보던 가게와 사업들의 영업 종료 소식을 접했다. 일하는 여성 커뮤니티인 <빌라 선샤인>, 자연주의 식당 <수카라>, 서촌 채소 식당 <경우의 수>까지.
수카라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갈 때, 특유의 따뜻함과 함께 묘하게 다른 세계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밝은 조명 아래 한쪽 벽면 가득한 채소 절임과 말린 곡물들. 주문한 음식을 바로 앞에서 조리하는 모습과 냄새, 사람들의 대화가 울리며 음식 조리 소리와 섞여 공명하는 파장, 매실주의 톡 쏘는 맛. 이것은 비대면으로 구현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매장에 가야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그래서 코로나가 확산되고 수카라 매장은 텅 비었다. 수카라의 음식을 집에서 먹는 것과 매장에서 먹는 것은 차원이 달랐으니까. 수카라는 테이크아웃 서비스로 업종을 변경했지만 매장을 유지할 만큼 손님이 오지는 않았다. 물론, 수카라 스태프들은 여전히 새로운 시도들을 준비하며 잘 지낼 것이고, 앞으로도 그들의 매력을 보여주며 살 것이다. 그러나 빌라 선샤인, 수카라와 같은 사업을 <꿈꿔온>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직업을 구하는 대학생들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비언어적 매력을 가진 사람들, 아직 작은 시도들을 쌓아야 하는 사람들, 대형 서점이 아닌 동네 책방에서 북토크를 진행했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서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다. 처음 재택근무를 경험하고 기대에 부풀어 재택근무가 열어줄 차별 없는 일터에 대해 쓴 글이 있다. (아래에 일부 인용)
재택근무를 할 수도 있게 된다면 지금까지 어쩔 수 없이 함께하지 못했던 다양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게 된다. 몸이 불편한 사람, 멀리 사는 사람, 아이를 키우는 사람, 그리고 우리가 생각지 못한 더 다양한 사람들을 우리의 '일터'로 끌어들일 수 있다.
다양성은 '당신도 함께할 수 있음'을 보장하는 사회적 안전망이다. 새로운 변화, 혁신, 시도, 발전은 안전성을 토대로 나온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란 어렵다.
우리가 각자의 방식대로 일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함께 일할 수 있게 된다.
- '재택근무를 해보니' 중에서
우리는 과연 각자의 방식대로 더 함께 일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아닐 것이다. 기회를 상실한 사람들에게 '시대에 발맞추지 못한 사람'이라는 시선을 던지기 전에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재택근무로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다양한 모습으로 일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꼭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만 일해야만 했던 이전 시대의 '차별'과 지금의 '차별'은 다르다. 그러나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세상이 변하면서 차별이 해결되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차별은 상황이 바뀌고 시대가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누가 차별의 경계에 있는지 끊임없이 바라보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분위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눈빛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같은 말을 해도 몸으로 다르게 표현해내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이 지치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계속 걸어 나갔으면 좋겠다. 나의 안전한 울타리에서 그저 비겁하게 마음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