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정말, 기술이 있어야 되?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돼"
우리 회사원들이 늘상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기술자'들이다. 빵을 만드는 기술, 미용 기술, 디자인 기술, 코딩 기술... 우리는 그 기술이 없어서 매일 이렇게 회사에 출퇴근하는 것 아니냐고. 점심을 먹으며 자주 우리는 기술없음에 대해 농담삼아 한탄한다.
정말 기술이 있으면 되나? 기술이 있으면 뭐가 되는데?
곰곰히 생각하며 온갖 의문을 던지길 좋아하는 나는, 또 이렇게 의심을 품고야 만다. 책을 읽다가 나와 같은 의심을 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기술은 그것을 가진 사람이 일할 때 필요에 의해 해석하고 사용하는 요소지, 그 자체로 전문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전문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기술을 중심에 놓는 경우가 많다. 어떤 업무를 수행할 때 개인이 사용하는 능력을 기술의 측면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곧 전문성을 갖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전문성은 대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대체 가능한 것이 된다. 지금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높은 기술을 연마한 누군가가 나타났을 때 나는 너무나 쉽게 대체 가능한 인력이 되어 버린다.
자비없네 잡이없어, 희망제작소
'기술' 그 자체만으로 보면 사실 가장 '대체 불가능함'에 취약한 것일지도 모른다.
평소에 좋아하던 비건 베이커리 사장님이 인스타그램에 파트타이머 모집 공고를 올렸다. 공고 마지막 줄에는 단호하게 이렇게 쓰여 있었다.
레시피를 얻기 위한 목적이시거나 짧은 기간 근무 후 창업을 계획 중이신 분들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레시피 유출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계약서 작성을 할 예정입니다.
비건 베이커리는 '레시피'가 생명인 분야이다. 일반 베이킹보다 작업 공정이 까다롭지 않지만, 레시피의 배합을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따라 식감과 맛이 다르다. 제품의 디자인도 일반 베이커리보다 한계가 있다보니, 서로서로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인스타그램에서 베이커리 사장님들이 디자인과 레시피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성토하는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기술은 우리의 생각보다 ‘복제'와 '대체'에 취약하다.
물론, 고유의 독창성을 가지고 개발한 모든 기술과 창작물은 그 저작권을 인정 받아야 하고, 도용과 복제에 대해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이 점에서는 단호하다. 그러나, 법적인 보호와 개인의 양심이 필요할만큼 기술은 대체 가능성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기술 자체는 정말이지, 대체 가능하다.
그러면, 독창적인 비건 베이커리 메뉴를 만든 사장님의 아이디어와 실행력, 포기하지 않는 열정은 어떨까. 내가 대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분야는 바로 그런 지점이다. 단순히 '기술'만을 배우려고 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대체될 수 밖에 없다.
대체 불가능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생각과 가치관같은 것들 그러니까 '마음'이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는지, 그 마음이 어떤 행동의 변화들을 만들어내고, 그 변화가 무엇을 지속가능하게 하는지.
따라할 테면 따라 하세요. 저는 언제나 한발 앞서서 저만의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나갈 겁니다.
메뉴 복제에 지친 또 다른 사장님이 올린 글이다. 이 문장을 쓰기까지 얼마나 속상했을지, 고민했을지, 노력했을지. 너무나 잘 알기에 마음이 안 좋았다. 그럼에도 나는 아 저 마음이야말로 대체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속으로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다시 회사원으로 돌아와서, 그러면 나는 어떤 마음이어야 할지 생각해본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야말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회사가 운영하는 쇼핑몰에 상품을 전시하고, 프로모션을 기획하고, 행사의 타이틀을 정하고, 비용을 얼마나 투입할지, 그에 따른 매출 목표는 어느 정도일지 계산한다. 이것은 정말이지 누구나 한 달이면 배울 수 있는 일이다.
퇴근 후, 빵을 굽고 글을 쓰고 요가를 하고 차를 우리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회사원으로서의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언제든 무용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 아쉬움, 서운함. 늦은 시간까지 쿠키 반죽을 만들어 쉴새없이 오븐을 돌려대야만 했던 것은 그 공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왜 일을 하는지를 생각했다.
너무나도 중요한 '먹고사니즘'은 너무나도 당연하니까, 그 다음으로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세상. 그 고유한 세상을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인정받고, 그것을 계속해 나가고 싶었다. 그것이 일이 될 수 있다면, 일과 나를 동일시하는 꽤나 구시대적인 삶의 방식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나의 시기를 정의해보자면, 그럴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를 계속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이것도 조금 해보고 저것도 조금 해보면서.
누군가는 평생 일을 해도, '잘할 수 있고, 좋아하고, 잘 어울리는 일'을 찾기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국 나에게 일을 한다는 것은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꼭 맞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실패할 줄 알면서도, 계속 해보는 마음.
나에게는 그것이 대체 불가능한 기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게 결과적으로 뭘 가져다 줄 건데? 라고 묻는다면 글쎄,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닐까?
또 모르지. '계속 해보는 것', '이것저것 해보는 것'에 대한 기술을 전수하며 살게 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