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끝에 반짝이는 윤슬이 있었다
책을 읽다가 '윤슬'이라는 단어에서 시선이 멈췄다. 뜻을 모르는 단어였다. 사전을 찾아보니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라고 한다. 바다 위에 있는 것이 파도라고 생각했는데 파도보다 더 자주 물 위에는 윤슬이 일렁이고 있었던 것이다.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파도 | 큰 물결
한자사전에 '파도'를 검색하니 '큰 물결'이라는 뜻이란다. 파도의 앞 음절인 '파'는 '물결 파'라는 한자이다. 물결 파를 앞 글자로 쓰는 단어들은 <파도 파문 파고 파장 파란 파동> 이 있다. 모두 거세게 부딪치는 소리이다. 피읖 소리를 낼 때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굳게 닫혔다가 날카로운 숨에 마지못해 열린다. 그 숨을 내쉬기 위해 복근이 순간 힘을 준다.
파도는 철썩철썩하고 친다. 철썩의 치읓 소리는 방파제에 파도가 부딪치는 것처럼 혀가 윗니 안쪽에 부딪히며 난다. 수영장 레인 끝까지 헤엄친 다음 벽을 힘껏 밀어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앞 혓바닥이 센 입천장을 도움닫기 하듯 밀어재끼며 뒤로 물러난다.
윤슬은 부딪힘이 없는 소리이다. 윤슬의 초성은 이응과 시옷이다. 두 소리 모두 풍선 바람이 빠지듯 소리가 새어나간다. 부서지지 않고 지나간다. 파도가 철썩철썩 소리를 내는 반면 윤슬은 소리 없이 반짝인다.
거대한 몸 위로 파도와 윤슬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다이다. 바다는 제 기분에 따라 거센 파도를 일으켜내기도 하고 잔잔한 윤슬을 일렁이게도 한다. 바다의 비읍은 파도의 피읖보다 입안의 기압이 낮은 상태에서 나오는 소리이다. 비읍을 예사소리, 피읖을 거센소리라고 한다. 피읖을 초성으로 가진 단어에 비해 비읍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은 순하다. <바람, 보람>을 보면 그렇다.
삶의 모양이 파도가 아니라 윤슬이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많다. 부딪히고 깨지고 터질 일 없이 아롱거리며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바람을 보란 듯이 무너뜨리며 인생은 때 맞춰 쨍그랑, 철썩, 삐걱 댄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이 답답할 때 바다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누구도 말릴 수 없을 만큼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를 지나 저 멀리 육지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 바다에 나가면 파도보다 더 넓게 윤슬이 일렁인다. 햇빛과 달빛에 반짝이며 움직이는 물결을 상상한다. 고요한 물의 흐름을 지켜본다.
파도를 건너 윤슬에 당도하고 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고개를 돌려 지나온 여정을 거꾸로 본다. 파도 너머 윤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윤슬이 파도에서 왔음을 알게 된다.
그제야 파도의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파도는 정체성을 만드는 험난한 과정이었다. 이리저리 휩쓸려 육지에 떠내려간 줄 알았는데 잘게 부서진 파도의 끝에 반짝이는 윤슬이 있었다. 파도의 시간 없이 윤슬이 찾아올 수는 없다.
포기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먼저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진 것 없이는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다. 이긴 적도 없으면서 이기기를 포기하면 처음 시작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셈인데, 그것이 바로 실패자인 것이다. 정체성을 포기하기 전에, 자신을 위해 먼저 그것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자아를 잃기 전에 당신의 자아를 발달시켜놓아야 한다.
- 아직도 가야 할 길, 스캇 펙
파도도 윤슬도, 모두 바다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파고보다 깊고 윤슬보다 넓은 바다가 없었다면 그 무엇도 생겨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자아가 닳고 부서지고 무너진다는 생각이 든다면 스스로를 칭찬해주어야겠다. 그 전에 자아가 형체를 갖추고 서 있었기 때문에 닳을 수도 부서질 수도 부딪힐 수도 있었던 것이라고. 잃어버릴 자아가 애초에 나에게 있었던 것이라고. 그러니 파도가 몰아쳤을 때 조금 덜 원망하고 억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