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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Apr 01. 2024

네 번째 고리: 조용한 폭압의 논리

단테신곡 7곡 중반부

1.   Read Me & Note Me


1-1. 충분한 돈은 없다.


앞서 인색한 자들과 방탕한 자들이 바위를 굴리며 고통받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부를 관장하는 플루토는 어리석게 부를 사용했던 자들과 부의 노예가 된 자들에게 이런 일침을 놓는다.



달 아래 있거나 존재했던 모든 황금은 이들 지친 영혼들 중에 하나에게라도 한 순간의 쉼을 사주지 못할 것이다.

<지옥 7:64~66>



나는 20대에 직장에 입사하며 이런 결심을 했다. "충분한 돈을 모이면 하고 싶은 공부를 해야지. 나이 40이 넘으면 수레 2대에 책을 가득 싣고 낙향할 것이다"

그러나 40일 훌쩍 넘은 지금까지 그런 허황된 시간은 오지 않았다. 황금은 언제나 부족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황금이 부족한 게 아닌 것 같다. 수도권에 집도 있고 괜찮은 차도 생겼다. 급여도 직위도 괜찮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뇨와 고혈압을 진단받았다. 신장에도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주치의는 무엇보다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때 충분한 돈과 괜찮은 지위를 가진 후 무엇을 하겠다는 그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황금과 황금 알을 낳는 거위는 나를 지치고 병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황금은 나에게 한 순간의 쉼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더 높은 곳으로 오르라고 경쟁하게 하고, 더 많이 가지라고 충동질했으며, 지금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자고 유혹했다.


몇 달을 고민하다 투자자에게 그만하겠다고 통보했다. 창업 당시 받았던 꽤 많은 지분을 아무런 대가 없이 법인에 반납했다. 더 이상 돈이나 성공이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사업의 시작이 나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고, 내가 토목, 건축, 사업의 설계, 인재의 영입, 총괄 기획을 책임졌으므로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투자자는 안 된다고 만류했다. 처음에는 몇 달 쉬었다가 합류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몇 달을 휴직하고 나는 완전히 퇴직하기로 마음먹었다. 미련 없이 더 이상 경쟁하며 사는 삶을 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존재의 기쁨과 슬픔을 오롯이 대면하며 사는 것이다. 돈이나 명예는 삶을 지탱하는 하나의 도구 일 뿐이다. 돈 자체를 모으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삼는 것은 온전한 삶을 포기하고 하나의 전형과 자신의 전인적 삶을 교환하는 일과 같다.


많은 사람들은 돈의 진정한 가치를 인식하지 않고 소비하고 몰두하며 살아간다. 주중에는 힘들게 돈을 벌거나 월급 루팡(태업하며 월급 훔쳐가는 자를 뜻함)의 삶을 살고, 주말이 되면 불금을 즐기고, 맛집 투어를 하거나, 쇼핑을 하고, OTT 서비스를 소비하며 기쁨을 찾는다.


하지만 그런 것은 사람에게 쾌락을 주는 동시에 모두를 소진시키기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부에 대한 과도하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입시에 시달리는 것도 같은 이치다. 남보다 나은 직장을 갖고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성공의 척도로 여겨진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이 나중에 좋은 직장을 갖는다고 해서 행복해질리 없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어리석게도 폭주기관차를 타고 끝없는 욕망의 질주를 응원하거나 강요하고 있는 것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될수록 각자에게 기쁨을 주기는커녕 소진되고 허무에 빠지게 된다. 성숙을 위한 도구로서 부를 사용할지 모르는  사람은 평생 부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돈으로 교환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 성장을 경험할 수 없다면 거슬러 오는 카리브디스(시칠리아에 있는 메시나 해협의 북쪽 끝 벼랑에 산다. 하루 세 번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켜 배를 난파시킨다는 전설의 괴물이다.)의 파도와 같은 욕망의 소용돌이에 빠져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오늘 본문은 부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준다. 달 아래에 황금이 놓여있다고 한들 그것이 황금인지 돌덩이인지 구분할 수는 없다. 신은 천지를 창조하면서 온 하늘 모든 곳을 밝게 빛나게 하셨다. 세상의 부도 이와 같다는 것이다. 인간 부를 소유하려 다투며 싸운다. 밀치고 당기며 무시무시한 전쟁을 벌인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금을 다 갖는다 해도 이 전쟁에 지친 영혼들 중 하나라도 잠시 쉬게 할 수 없다. 그게 돈의 속성이다. 많은 돈에 대한 욕망은 우리를 들끓게 하고, 더 가지게 만든다. 인간은 정작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을 차지하면서 무한한 소유를 욕망하는 어리석은 존재이다.


1-2. 인도하고 다스릴 자(ordinò general ministra e duce)



73 Colui lo cui saver tutto trascende fece li cieli, e diè lor chi conduce sì ch'ogne parte ad ogne parte splende, 76 distribuendo igualmente la luce. Similemente a li splendor mondani ordinò general ministra e duce 79 che permutasse a tempo li ben vani di gente in gente e d'uno in altro sangue, oltre la difension d'i senni umani; <inferno 7곡, 73~79>


무한함을 아시는 지혜로우신 분이

모든 하늘을 조성하셨고, 각자에게 안내자를 주셨고,

빛나는 각각의 구는 다른 모든 구를 비춘다.


그리하여 빛은 동등한 분배로 퍼져 있다.

세상의 영화를 위해 그분은 동등한 것을 명하셨고

인도하고 다스릴 자를 임명하셨다.


그녀는 재량 껏 세상의 헛된 부귀를 민족에서 민족으로

핏줄에서 핏줄로 인간의 방해를

초월하여 움직인다.

<지옥 7곡, 73~81>




단테는 신은 인도하고 다스릴 자(ordinò general ministra e duce, 행운의 여신: Fortuna)에게 세상의 부귀를 다스리게 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신은 하늘을 창조할 때, 신성한 빛이 하늘에 고르게 퍼지도록 하는 안내자를 세웠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성한 포르투나(행운의 여신: Fortuna)에게는 지상의 재화를 고르게 분배하는 역할을 주었다. 그분은 인간의 욕망을 거슬러 민족에서 민족으로, 가족에서 또 다른 가족으로 재물을 옮기는 일을 하신다.


그녀는 어떤 신들보다 바쁘다. 인간은 부귀에 대한 헛된 욕망을 품고 있지만, 신은 인간의 방해를 초월하여 운명을 수레바퀴를 돌리는 일에 여념이 없다. 그런 이유로 행운의 여신은 인간에게 멸시를 받는다. 그녀를 찬미해야 하는 사람들조차 그녀를 비난하고 분별없이 모욕하며 여러  십자가에 매달기도 했단다. 인간의 욕망은 이렇듯 리를 거역하며 폭주한다. 그러나 그녀는 복이 충만하여 아무런 불평도 듣지 않았다. 다른 천사들처럼 그녀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히 인간의 운명을 결정할 원을 돌리며 자신의 복을 즐기고 있다.


재물은 그 자체로 나쁘거나 좋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맡겨진 부에 대해 옹색하거나 낭비하는 것이 문제이다. 인생을 살면서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우리에게 많은 재물이 생긴다면 우리는 그것을 선한 일에 사용할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우리가 많은 재물을 잃게 되더라도 그 자체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 주어진 모든 부 중 원래 내 것이었던 것은 없다. 그것을 내 것으로 부둥켜 안고 있는 것은 마치 태양이 온 세상을 비춰주는 빛을 나 혼자만의 것으로 향유하겠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어리석은 짓이다.


특히 부자들은 그 많은 재산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부자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은 단순히 그들의 재산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부자들이 지나치게 쓰고 지나치게 모으는 그 순간 그들은 이미 천국을 빼앗기고 분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그 자체가 지옥과 다름없는 상태인 것이다. 인생의 사건들은 그 자체로는 행운이나 불행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삶에서 얼마나 성숙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행운과 불행을 결정하게 된다. 삶에서 오만(hubris 휘브리: 그리스어로 오만이라는 뜻)해 질 때 행운의 여신은 어김없이 운명의 물레를 아래 방향으로 돌리게 될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어진 삶을 직시하고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1-3. 조용한 폭압의 논리


자기만 잘 살겠다는 생각, 자기만 옳다는 생각, 유명해지고, 인정받고 싶은 모든 욕망은 화를 불러온다.


사랑 없고 타인에 대한 배려 없는 세상의 모든 옳은 것들은 틀렸다.


아니 세상을 질식시키고 죽여왔던 악마의 모습이 그와 같았다. 바른 일을 하려는 자는 그 가슴에 진정한 사랑을 품지 않으면 안 된다. 돈, 권력, 명예, 지식 등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내 것이 아니다.


나만 잘살고, 나만 옳고, 나만 바람직한 것으로 세상은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도 나아갈 수 없다. 여신의 가장 중요한 일은 오만한 자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것이 바른 일을 하는 행운의 여신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자신의 오만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는 더 이상 구제할 수 없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지옥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만한 인간이 처한 현실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이 아침 스승님의 말씀이 더 가슴을 파고든다. 독선에 빠지지 않으려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오만한 자리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사랑 없이 섣불리 앞으로 나아가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해 본다. 죽을 때까지 마음에 아로새겨질 말씀이다.




바른 신념을 갖기도 쉽지 않지만, 겨우 바른 신념을 가졌을 때 그것이 얼마나 쉽게 독선으로 발전하곤 하는가요. 자기 혼자만 옳다는 독선에는, 온 세상을 차단해 버리는 이 조용한 폭압의 논리에는, 제가 아끼는 젊은이들이 빠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니, 어느 젊은이든, 어느 늙은이든 빠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전영애, 문학동네>

   



2.   Remember Me


#김밥할머니 #괴테할머니 #운명의 여신 #운명의 수레바퀴 #회복 #괜찮아 잘 될 거야 #다시 시작하는 힘 #독선 #관용 #연민 #공감 #경청 #여백서원 #괴테도서관 #10년 후의 꿈 #유림 #여백학파


3.   참고 문헌

The Devine Comedy by Dante_Inferno, Dante Alighieri, the classic

La Divina commedia, Inferno, Dante Alighieri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전영애, 문학동네

신곡 지옥(인페르노), 단테(이시연 역), 더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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