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의 봄
대학로에 봄이 피었다. 연둣빛 나뭇잎이 바람결에 살랑이고, 벚꽃은 이미 흩날리다 못해 사람들 어깨에 내려앉았다. 에녹과 리사는 마로니에 공원 벤치에 앉아,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른 손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었다.
"이런 날은… 그냥 군복도 벗고 아무 데로나 사라지고 싶어."
리사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녀의 음성은 따뜻했지만, 그 안에 알 수 없는 그늘이 어른거렸다.
에녹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랬어. 가입교 때, 도망치고 싶었던 밤이 수도 없이 많았어."
리사가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근데 너, 항상 그런 말은 쉽게 안 하잖아."
"넌 내 편지를 읽었잖아."
에녹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건 너를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썼던 말이야. 너의 혼란, 너의 고통, 그걸 있는 그대로 껴안고 싶었어."
리사의 손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뭇가지 틈으로 부서지듯 쏟아지는 햇살이 그녀의 눈망울 안에서 작게 반짝였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배웠지만, 어느 날은 명령과 치료 사이에서 누군가의 생명을 숫자로 계산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고 썼던 내 말… 기억해?"
그녀가 물었다.
"기억하지. 그 말이 내 가슴을 관통했어."
"내가 네 편지를 받고… 그날, 병영 구석에 앉아 한참을 울었어."
리사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진군보다 부축을 먼저 배우는 사람’이라는 네 말… 그 말이 날 다시 붙잡았어."
에녹은 그녀의 손을 더 꼭 잡았다.
"네가 의심했던 그 길, 나는 네가 그 안에서도 여전히 사람을 지키는 쪽에 서 있을 거라고 믿었어. 그리고… 믿고 있었어."
리사는 천천히 몸을 기대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너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나를 이해해 주더라."
그녀가 속삭였다.
"그게 나한테는… 사랑이었어."
사람들의 웃음소리, 거리공연의 기타 선율, 벚꽃의 잔해들이 공기 속을 유영하듯 떠다녔다. 그 모든 것이 두 사람의 시간이 되어 흘렀다.
"리사."
에녹이 부드럽게 불렀다.
"응?"
"이 봄을 기억하자.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멀리 돌아와 여기 앉아 있는지."
그가 말하며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리사는 눈을 감았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 듯했다. 봄의 한가운데, 사랑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견고하게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