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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문제 있는 장교

바둑판식 수색정찰

by 아레테 클래식

04:50


희뿌연 새벽안개가 철책 위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멧비둘기 울음소리와 함께 기온이 떨어지며, 군부대의 하늘도 서서히 흐릿해졌다. 하지만 상황실은 이미 그 어떤 전투 중인 소초보다 침묵으로 뜨거웠다.


“사령관 도착 15분 전입니다.”


소초장의 말에 간부들의 어깨가 일제히 경직됐다. 이 순간, 그들은 실전을 준비하는 병력들이 아니라 ‘사령관 지침’에 투입된 전시물에 가까웠다. 책상 위에는 작전지도와 지뢰지대 표시, 수로와 경계 코드들이 빽빽하게 배열되어 있었고, 회의의 핵심을 뜻하는 단어 하나가 굵고 붉게 적혀 있었다.


〈전면 수색 – 바둑판식 전개〉


04:55

브리핑 직전, 에녹은 중대장을 찾아갔다. 작전 팀장으로서, 그는 이 작전에 직접 병사들을 투입하고 지휘할 의무가 있다.


“중대장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지금 타이밍에?”


“지금 아니면… 너무 늦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작전지도 위를 짚었다.


“C2, C3 지대는 수로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지형입니다. 물수가 높아지면, 진입병력은 물골과 물골 사이의 뻘밭에서 완전 고립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C2는 지난달에도 지뢰 경고가 뜬 곳입니다. 바둑판식 전개는 사실상 병사들을 위험에 전면 노출시키는 겁니다.”


중대장은 말없이 에녹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묘하게 복잡했다. 조금의 연민, 그러나 더 많은 체념과 피로.


“한 중위, 그 얘기 사령관님 앞에서 할 건가?”


“…아닙니다. 먼저 중대장님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작전 상황을 고려해서 지시를 일부 조정해 달라고…”


“나도 알고 있어. 그 구역 위험하다는 거.”


중대장은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말이야, 사령관님께서 직접 내려오는 날은 ‘논리’보다 ‘의지’를 보여야 해. 그분이 원하는 건 반론이 아니라 ‘충성’이야. 한 중위 너도 이제 알만하잖아”


에녹은 목소리를 낮췄다.


“저는… 설령 명령이라 해도,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상관에게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제 있는 장교’가 되겠다는 거야?”


중대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에녹은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눈빛이 흔들림 없이, 아주 잠깐 중대장의 얼굴을 정면으로 꿰뚫었다.


“그럼… 저는 그렇게 불려도 상관없습니다. ‘문제 있는 장교’ 면, 문제를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중대장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에녹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더 나아갔다.


“병사들은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지휘관인 우리는, 따르기 전에 판단해야 합니다. 그게 이 계급장을 단 이유 아닙니까?”


“1 소대장, 지금 이건”


“무리한 작전입니다, 중대장님.”


에녹의 목소리는 더 이상 조심스럽지 않았다. 단정했고, 거의 선언처럼 들렸다.


“작전은 항상 기상상황과 물수를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합니다. 현시점에 C2, C3에 인원을 넣는 건, 지시가 아니라 위험을 전가시키는 무책임한 결정입니다. 실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책임은 지휘관이 지는 게 아니라, 당사자인 용사들이 피해를 입을 뿐 입니다.”


말 끝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중대장은 담배를 쥔 손을 멈췄다.


“저는 오늘, 용사들에게 이 작전을 설명할 겁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이 지시가 ‘안전한 작전’이라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중대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낮게 말했다.


“…그 말, 사령관 앞에서는 절대 하지 마라. 넌 그 말 한마디로, 전속 보직도 날리고, 평정도 물 건너갈 거다.”


에녹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 실종자 이름 불러야 하는 사람은 중대장님이잖습니까.”


중대장은 담배를 입에 문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침묵은 허락도, 동의도 아니었지만 에녹에게는 단 하나의 의미로 다가왔다.


‘지금부터는 네 책임이다.’


중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녹아. 그런 이상주의로 버틸 수 있는 구조였으면, 우리가 진작에 이런 작전 안 했지.”


그 말은 곧 묵살이었다. 에녹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뒤돌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단 하나였다.


“어쩌면 이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일지 모른다.”


05:13 / 소총 상황실


사령관은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다. 합참에서 막 올라온 별 둘. 야망과 긴장, 그리고 자신만의 정답을 확신하는 눈빛이 얼굴에 박혀 있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정찰은 곧 탐색이고,

탐색이란 ‘전면적’이면서도 ‘통제 가능한 위험’을 받아들이는 거다.”


그가 꺼낸 키워드는


‘바둑판식 전개’

‘위험지대 포함’


이었다.


에녹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보고 드립니다. 중위 한에녹입니다. 현장 판단 차원에서 건의드립니다.”


그 순간, 공기가 굳었다. 사령관의 시선이 꽂혔고, 간부들의 숨소리가 가늘게 흔들렸다.


“C2, C3 구역은 최근 강우로 인해 수로의 흐름이 불규칙하게 바뀌었습니다. 급류 발생 가능성이 크고, 병사들의 하중 대비 이동속도 역시 느려질 수 있습니다. D2 역시 지뢰 밀집 경고 지역입니다. 바둑판식 전개는 구조상 병사들의 안전 확보가 어렵습니다.”


사령관은 팔짱을 끼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훈련이 부족한 병사들이 문제인가, 지형이 문제인가?”

“… 양쪽 모두 위험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전을 못 하겠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작전은 하되, 물수를 고려해 작전 시건을 변경하거나, 위험지역을 회피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


“야, 작전이 무슨 병정놀이인 줄 아나?.”


사령관의 목소리는 이제 명확히 적의를 담고 있었다.


“작전이라는 건 원래 위험한 거다. 우리가 적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가능성’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에녹은 입술을 다물었다. 무수한 말들이 목구멍에서 걸렸다.


‘우리는 가능성이 아니라 사람을 책임지는 자리입니다.’


그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사령관은 마무리했다.


“그대들의 책임은 한 가지뿐이다. 지시를 실행하라.”


브리핑 종료 후 / 복도


에녹과 박중사는 조용히 복도를 걸었다. 말이 없었다. 침묵은 도리어 말보다 큰 저항이었다.


박중사가 입을 열었다.


“소대장님, 좀 위험했어요. 중대장님도 그냥 넘기시라 했는데…”


“그러면 아무도 말 안 해.”


“근데… 말해도 안 바뀌잖아요.”


에녹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형광등이 번쩍이며 깜빡이고 있었다. 그 작은 빛의 진동이 마치, 희미하게 구조의 무게에 짓눌린 생명처럼 느껴졌다.


“그거 알아, 박중사. 우리도 다 알고 있는 거야. 물수가 조금만 올라오면 못 빠져나올 수도 있다는 거.”


박중사는 눈을 피했다.


“그날이… 내일일 수도 있잖아.”


에녹은 낮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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