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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무리한 작전

by 아레테 클래식

작전 당일 아침 / 06:27 / 소초


무전기에서 잡음이 흘렀다. 중대장은 이어폰을 빼내어 옆에 내려두고, 천천히 손가락을 비볐다. 손끝이 차가웠다. 하지만 이 추위는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중대장님, 각 팀 출발 대기 완료입니다.”


작전계원이 말했다. 그는 무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전술지도에 눈을 내렸다. C2, C3. 그 지점에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던 한에녹의 손이 어제 아침에 떠올랐다. 그 단단하고도 절박한 목소리.


“지휘관인 우리는, 따르기 전에 판단해야 합니다.”


그 말이 귓가에 다시 울리는 순간, 중대장은 본능적으로 무전기의 채널을 돌렸다.


“브라보, 여기는 알파. 현 상황 보고할 것.”


“알파 여기는 브라보. 수로 건너편 진입 중. 시야 불량, 수위 상승 중 이상.”


“경로 변경 가능한지?”


“우회 경로는 진창화되어 차량 진입 불가, 도보로는 최소 40분 지연예상. 이상“


“…현 위치에서 즉시 철수 건의.”


무전이 잠시 끊겼다. 중대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철수? 그건 결국, 아침 브리핑에서 사령관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했던 단어였다.


‘도피’


그는 손을 들어 무전기를 잡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무전기 건너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알알, 알파 여기는 브라보, 이 지역은 예상보다 빠르게 범람 중. 이대로 밀고 들어가면 병력 손실 발생 가능성 예상됨. 작전 일시 중지 요청함. “


정적. 지휘소 안의 모든 시선이 중대장에게 꽂혔다. 그는 천천히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목 안쪽이 서늘해졌다.

‘이 지시가 거짓말이라는 걸, 난 알고 있었다.’


그 순간이 지금이었다.


“… 전 소대, 일시 정지. 재확인 후 판단하겠다.”


작전과장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중대장, 이렇게 하면 사령부 쪽에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사들이 빠져나올 수 없다면, 선초치해도 되지 않습니까? “


몇 시간 뒤 / 소초


중대장은 홀로 작전지도 앞에 서 있었다. C2, C3 지대 위에 놓인 붉은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메모지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종이를 구기듯 쥐었다. 하지만 곧 다시 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 안엔 에녹이 밤새 작성해 가져온 ‘대체 진입 경로’ 보고서가 있었다. 어젯밤, 그는 그걸 단 한 번도 읽지 않았다. “쓸모없는 저항”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 메모는 어떤 작전 지도보다 정직하게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날이… 내일일 수도 있잖아.”


에녹의 그 말은, 오늘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던 것이다.


07:52 / C3지대 수색 현장


비는 예보보다 일찍 내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전까지는 부슬비였던 빗줄기가, 지금은 헬멧 위에서 웅크리듯 쏟아지고 있었다.


에녹은 쪼그려 앉아 지도와 컴퍼스를 확인했다. 하지만 이제 지도는 거의 쓸모가 없었다. 수위가 예상보다 50센티미터 높았고, 물골과 물길의 방향은 완전히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대장님. 후미 쪽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무전도 끊겼습니다!”


박중사의 다급한 외침. 에녹은 곧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여긴 브라보 3, 여기는 브라보 응답 바람. 응답바람.”


… 정적.


그 순간, 귓가에 찢어지는 듯한 비명 한 줄기.


“소대장님! 인원 2명이 급류에 휩쓸렸습니다!”


에녹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뛰었다. 흐려진 시야 속, 병사 하나가 급류에 휘말린 채 기둥을 붙잡고 버티다 미끄러지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줄! 생명줄! 로프 어디 있어!!”


하지만 그 순간 이미, 두 번째 병사가 진창 속으로 뛰어들었다. 우직한 동기애였고, 동시에 치명적 판단이었다.

비명, 물보라, 그리고 순간적으로 고요해진 그 구역.


“두 명… 실종입니다!”


박중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에녹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눈앞에서 무너진 건 병사 둘이었지만, 사실은 구조 전체였다.


08:34 / 중대 CP


중대장은 무전기로 상황을 보고받았다. ‘실종’이라는 단어가 처음 들리는 순간, 손끝이 떨렸다. 그는 담배를 꺼내 들었지만, 불을 붙이지 못했다.


“작전과장님 현경로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수색 지점 재조정 요청드립니다.”


작전과장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1 소대장은 뭐 하고 있나?”


“…, 현재 사고 지점 인근에서 직접 구조 지휘 중입니다.”


중대장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젯밤 에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냥 따르지 마세요. 판단해 주세요.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닙니까?”


그는 작전지도 위에 있던 플라스틱 자를 천천히 부러뜨렸다. 작은 균열이 손가락을 타고, 가슴으로 흘러들었다.


09:17 / 수색 지역 밖 임시 통제선


비는 그칠 줄 몰랐다. 군은 곧바로 ‘기상 악화로 인한 현장 통신 오류와 경로 착오’라는 명목으로 상황 보고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현장에 있던 병사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몸을 말았고, 에녹은 머리를 감싼 채,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그의 전투복은 물과 진흙으로 얼룩졌지만, 무엇보다도 그 안에서 한 인간의 신념이 무너지는 소리가 뚜렷했다. 그때, 중대장이 조용히 다가와 섰다.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에녹은 그를 보지도 않았다. 대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중대장님,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다 알고 있잖아요.”


그 말에 중대장은 돌아서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한 선택이, 누구의 침묵을 유도했고, 누구의 목숨을 앗아갔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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