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효능
며칠 전,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 내 카페에 들렀다. 자주 오는 편은 아닌데, 그날은 유난히 날이 흐리고 기분도 가라앉아 있었던 듯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툭 한마디를 던졌다. “나는 아직도 커피를 왜 마셔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냥 써. 그걸 왜 좋아하는 거야?” 그의 말투는 도발적이라기보다는 진심에 가까웠다. 그에게 커피는 습관이 되지 못했고, 필요도 느끼지 못한 음료였던 것이다. 나는 그 말이 반가웠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어떤 것의 이유를 묻는다는 건, 아직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는 말 대신, 오늘 아침 갓 볶은 에티오피아 내추럴 빈을 천천히 그라인더에 넣었다. 물 온도를 체크하고, 종이 필터를 접고, 핸드드립을 시작했다. 천천히 추출되는 커피의 향이 퍼질 때쯤, 나는 잔을 내밀었다. “먼저 이걸 마셔봐. 이야기는 그다음에.”
커피는 단순히 졸음을 쫓는 카페인 음료가 아니다. 누군가에겐 잠에서 깨어나는 방식이고, 누군가에겐 스스로를 위로하는 루틴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세상과 거리 두기를 위한 장치다. 나에게 커피는 시간을 마시는 방식이다. 아무리 바쁜 아침이라도, 커피를 내리는 시간만큼은 서두르지 않는다. 물줄기를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부으며 나는 나 자신을 재정렬한다. 그 시간만큼은 휴대폰도 울리지 않고, 외부의 소음도 사라진다. 커피는 그렇게 우리의 내면으로 향하는 작은 입구가 되어준다. 어느 계절, 어느 시간에도 커피 한 잔은 자신을 다시 불러내는 조용한 의식이 된다. 커피를 마셔야 하는 이유는 어쩌면 여기에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예의를 갖추는 가장 단순하고 따뜻한 방식이라는 점. “지금 이 순간, 너는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한 잔의 힘.
사람의 몸은 아침이 되면 코르티솔이라는 각성 호르몬을 자연스럽게 분비한다. 이것은 마치 인체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일어나라, 움직일 시간이야”라는 신호와 같다. 이 호르몬은 혈압을 높이고, 혈당을 올리며, 신진대사를 가속시켜 하루의 시작을 준비한다. 그런데 여기에 커피, 특히 카페인이 더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카페인은 아데노신이라는 피로 유발 신경전달물질의 수용체를 차단해 우리가 느끼는 졸림을 줄인다. 동시에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 분비를 증가시켜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집중력을 높인다.
특히 나는 요즘 매장 오픈 직후 내추럴 커피에 버터를 곁들여 마신다. 버터와 MCT 오일을 넣은 커피는 일반 커피보다 더 오래, 더 맑게 나를 깨운다. 공복 상태에서 마시는 버터 커피는 간에서 빠르게 케톤체를 생성해 뇌에 연료를 공급하고, 오랜 포만감도 함께 선사한다. 피곤하지 않으면서도 배가 고프지 않고, 정신은 맑은 상태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커피. 그건 단순한 기호의 차원이 아니라, 몸과 뇌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선택이다. 더불어 맛도 좋다. 풍미 있는 커피 향에 더해진 고소힘과 짭조름한 맛은 언제라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카페를 운영하다 보면 손님들의 커피를 대하는 표정과 자세를 통해 그날의 상태를 느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책을 펼쳐 들고 한 모금씩 음미하며 자신을 정돈하고, 어떤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말은 없지만 그 커피 한 잔은, 분명히 그 사람의 내면과 대화하고 있다. 커피는 조용한 방식으로 우리의 무언가를 들춰낸다. 잠시 잊고 있었던 감정, 쌓여 있던 생각, 외면하던 피로감까지도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리고 잔이 비어갈 때쯤, 우리는 조금은 정리된 마음으로 다시 세상과 마주할 준비를 한다. 커피가 하는 일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대신 아주 정확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단 몇 분이라도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커피라는 음료가 가진 섬세한 배려다.
나는 그 지인에게 말했다.
“커피를 마셔야 하는 이유는 많지 않아. 단 하나면 충분하지. 하루에 한 번, 너 자신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라는 것.”
그런데 그 한 잔은 아무 커피가 아니라, 정성껏 내린 맛있는 커피였으면 좋겠다. 대충 마시는 커피는 그냥 습관이 되지만, 좋은 커피는 삶의 질을 바꾼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하는 우리들은 이탈리아인들이 왜 그렇게 커피에 진심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에스프레소로 마셨을 때 너무 쓰지 않고 좋은 향미를 가진 커피를 선호한다. 거기에 커피 양보다 더 많은 물과 얼음을 섞는다는 것은 상상하는 것조차 힘들다.
원산지에서부터 좋은 체리를 엄선해 오랜 시간을 잘 관리한 특별한 생두, 잘 볶은 원두, 적절한 물 온도, 알맞은 추출 시간. 그 모든 과정을 지나 잔에 담긴 커피는, 그 자체로 모두의 피와 땀이 어린 노력이자 삶을 돌오보는 쉼표다.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차린 식사가 따뜻한 마음을 전하듯, 제대로 내린 커피 한 잔은 나에게 전하는 따뜻한 환대이고 애정이다. 우리는 하루에 수십 번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고 반응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을 위해 조용히 한 번 멈추는 일은 잊기 쉽다. 커피는 그걸 기억하게 만든다. 당신도, 당신의 하루도, 충분히 소중하다고.
커피를 마시는 일은 타인을 위한 게 아니라 오로지 나를 위한 일이다. 그것도 아주 직접적이고, 간결한 방식으로. 커피는 기분을 다독이고, 생각을 정리하며,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아준다. 외부로 향했던 시선을 안으로 돌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라고 말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손님들에게도 그런 커피를 내리고 싶다. 더 바쁘고 더 무심한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는 커피 한 잔을 통해 스스로를 존중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주고 싶다. 나는 그게 커피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내 사명이라고 믿는다.
커피를 꼭 마셔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왜 커피를 마시는지를 알게 된다면, 어느 날 불쑥 당신도 그 대열에 끼고 싶어 질지 모른다. 그때 내가, 또 여러분이 사시는 곳 근처에 있는 어느 카페 주인이 당신의 지친 하루를 북돋고 위로해 줄 수 있기를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