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의 개념을 넘어선 질서와 조화의 공간
한가한 주말 오후, 맑게 갠 날씨를 확인하고 외출을 준비합니다. 익숙하고도 낯선 골목길을 걷다 신촌 기차역 앞에 다다르면 여름의 나뭇잎처럼 선명한 녹색의 조각이 눈에 띕니다. 반듯하게 정돈된 테이블이 옛것과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는 이곳 파티션 WSC에서 나눈 진솔한 대화를 독자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Q. 파티션 WSC라는 이름이 독특해요. 그 뜻과 의도를 소개해주세요.
A. 실제로 파티션이라는 물건이 있잖아요. 사람들이 보통 인식하고 있는 그대로 구획을 나누는 도구를 의미해요. 국가 간의 분리를 의미한다고도 하고요. 분리의 개념을 공간 그리고 시간에 대입해 보고 싶었어요. 실제 물리적으로는 워크룸(W), 쇼룸(S), 카페(C)로 구획을 해놨어요. 시간대에 따라서는 시시콜콜(sisikolkol)이라는 모임을 진행하기도 하고 워크숍이나 영화 상영도 지속할 거고요. 뭐랄까요, 여러 행위에 따라 탄력적으로 쓰일 수 있는 공간인 거죠. ‘이곳은 카페다’라고 한정 짓지 않고 사람들이 모여서 공간을 규정한다는 느낌이에요.
Q. 파티션 WSC를 운영하기 이전의 아케 워크룸(AKE workroom)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A. 과거 약 1년 정도 운영했던 아케 워크룸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우리가 좀 더 잘할 수 있는 것과, 또 지하를 벗어나 2층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 봤어요. 저희가 전개하고 있는 ‘공예가’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선보일 것인지도 함께요. 그런 여러 가지 요소를 고민했을 때 파티션이라는 단어가 생각났고 지금 이곳과 같은 공간이 탄생한 거죠.
Q. 전체적으로 미니멀한 무드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패션 관련 서적들이 눈에 띄어요.
A. 아무래도 패션 브랜드에서 일을 시작했다 보니 거기에서 출발했던 것 같아요. 스물한 살 때부터 일하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당시 그 나이에 할 수 없는 것들을 많이 경험하기도 했고요. 원래 제가 가진 취향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일하면서 많이 다듬어진 것 같아요. 사실 옷을 너무 좋아해서 중학교 때부터 옷에 미쳐 살았는데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가구라든가 다른 요소에도 눈이 뜨게 되었어요.
Q. 당시의 경험을 통해 생겨난 관점이 있다면요.
A. 가령 하나의 패션 브랜드가 쇼룸이라는 공간을 운영하고 그곳에서 비즈니스가 일어나잖아요. 옷이라면 어떻게 보면 수단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은 거죠. 나아가 비주얼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글로 싣는 목소리도 중요하고요. 옷 자체에만 포커스를 두기보다는, 그 외에 디테일한 세부까지 집중을 해야지 온전한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어요.
Q. 파티션 WSC와 같은 공간을 운영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있을까요?
A. 일본에서 일을 하면서 하루에 거의 열두 시간 동안 재봉틀을 만졌던 것 같아요. 같은 동작만 반복하다 보니 오히려 머릿속이 정화되고 제가 살아온 과거에 대한 생각들이 정리되더라고요. 결국에는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데 장차 무엇을 할 것이며,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지점에 이르렀어요. 카페 운영에 있어서는 일본의 몇몇 전통 찻집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무엇보다도 그곳의 접객 태도가 너무 좋았어요. 별다른 장식적인 요소 없이도 손님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이 공간이 편하다는 느낌을 저희 또한 가져가고 싶었죠.
Q. 곳곳에 배치된 빈티지 제품들이 눈에 띕니다. 컬렉팅의 계기가 궁금해요, 그리고 주로 어떤 경로로 아이템을 수집하시나요?
A. 수집이라기보다 실제 일상에서 사용하고 싶은 제품들을 찾아온, 오프라인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구했어요. 주로 일본에서 지내면서 취득한 것들이 대다수인데요, 당시 여건상 원하는 빈티지 제품들을 오프라인으로 구하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주로 온라인을 통해 알아보았는데, 워낙 일본 내 컬렉터가 많아서 그런지 배송에 유연하기도 했고요. 모르는 것들은 안 되는 일본어를 써가면서까지 로컬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Q. 파티션 WSC의 관점에서는 미니멀리즘을 어떻게 정의 내릴지 궁금해요.
A. 패션으로 치자면 헬무트 랭이나 질 샌더를 떠올려요. 하지만 문학이나 건축으로도 미니멀리즘을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가령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보면 그 문체에서 묻어 나오거든요. 그걸 완서법(litote)이라고 하는데 굳이 말하지 않아도 침묵으로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거죠. 일상의 작은 행동으로도 가능하고요. 불필요한 말이나 행동 없이도 상대방이 원하는 걸 해준다거나 소통할 수 있죠. 건축에서도 이를테면 루이스 칸의 빛이 들어오는 건물 같은 거예요. 그만의 건축 개념이 있더라고요.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what it wants to be)'와 그 과정인 '어떻게 이루어졌는가(how it was done)'에 대한 질문이요. 건축이란 아시다시피 구현하기가 어렵잖아요. 욕심 내서 더하고 싶지만 덜어내고 덜어내어 최종 합의 하에 만들어진 결과물이 건축이고, 그게 또 하나의 미니멀리즘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 정진욱 Chung Jinwook
사진 | Anastasia Doynikova, Roman Permiakov
장소 | 파티션 WSC(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88-9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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