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택이 최선의 삶이 된다
4.
명진아는 정리해야 할 자료들을 먼저 취재하기로 했다. 처리해야 할 분량이 꽤 많았지만 자료수집만 잘된다면 정리하는 것은 금방 될 것이었다. 도서관에 들렀다가 자료들의 분량에 맞춰서 일정을 짜볼 참이었다.
그리고 지역 문화인들을 인터뷰하는 기사도 맡았다. 첫 호에는 편집장의 추천으로 농악을 전승하고 있는 분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아직 운전면허가 없는 명진아는 이동수단이 늘 걸림돌이었다. 운전면허증이 생겨도 자동차를 끌고 다닐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기도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큰 불편함은 없었다.
근데 이번 인터뷰는 외곽지역이라 차량이 필요한데 여느 때처럼 사진담당 정기자에게 사진도 부탁하면서 같이 이동해 볼까 생각했다.
"미안해 할거 없어요, 어차피 내 업무 때문에 가야 하니까요. 언제든 말만 해요"
정기자는 명진아가 미안해하지 않도록 늘 먼저 말해주었다.
하지만 사진 몇 컷만 건지면 되는 정기자 입장에서는 명진아가 인터뷰하는 2시간 여를 함께 있어야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명진아는 기동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혼자 움직이면서 일하고 내년에는 소형차를 하나 마련해야겠다 생각했다.
인터뷰는 도시 외곽지역의 농악인을 만나야 했다. 전통 농악의 명맥을 이어오는 농악꾼에 판소리도 하신다는 무형문화재 고덕구 어르신을 만나기로 했다. 이동거리가 상당한 인터뷰라 오늘 하루는 종일 여기에만 집중해야 했다.
시내버스가 한참을 외곽지로 나가더니 한산한 시골마을버스 종점지에 명진아를 내려놓았다.
초겨울에 접어드는 시골 풍경은 삭막하고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다. 농사철이 아니면 오가는 사람도 적고 대낮인데도 겨울 초입의 시골은 을씨년스러웠다.
버스 정류장부터는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지는 시골의 진흙길은 경운기나 자동차가 만들어 놓은 바퀴자국들이 모양 그대로 얼어서 울퉁불퉁했다. 생각 없이 납작한 단화를 신고 온 명진아는 걷기가 힘들었다. 자칫 발목을 접질릴까 온 신경을 집중해 땅을 내려다보며 걸었다.
마을은 꽤 깊었다. 인터뷰를 얼른 마치고 해지기 전에 도시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걸었다. 어두워지면 무서워서 이 길을 어찌 나올까 싶은 걱정에 걸음이 빨라졌다.
드디어 마을이 보였다.
나란히 붙어 있는 단층집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저만치 대문 앞에 서있는 어르신이 보였다.
'저분인가' 얼른 뛰어갔다. 명진아는 명함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했다. 흔한 시골 농부의 모습을 한 분이라 처음 좀 놀랐다. 예술가의 이미지를 예상했는데 첫인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고덕구 선생님이시죠, 안녕하세요. 생각보다 머네요, 그래도 헤매지 않고 잘 왔어요"
숨을 몰아쉬며 씩씩하게 인사했다.
"오느라 고생하셨네"
반겨주는 어르신의 검붉게 그을린 얼굴에 주름이 깊게 잡혀있었다.
고덕구 어르신이 안내하는 집으로 들어섰다. 따뜻한 아랫목에 앉으라고 권해주셨다. 명진아가 잠시 숨을 돌리는 틈에 어르신이 먼저 말을 꺼냈다.
"농사짓는 늙은이한테 뭐 궁금할 게 있다고 여기까지 오셨나"
"아, 농악의 전통을 이어가시는 몇 안되시는 분 중에 한 분이 계시다고 해서요. 요즘 사람들은 농악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안 가지는 편인데 선생님은 농악의 맥을 놓지 않고 후손들에게도 전통의 소리를 들려주려 하신다는 게 정말 소중한 일 같아요. 농악과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들어보려고 합니다"
어르신이 건네는 물 한잔을 받아 들고 바로 본론을 얘기했다.
어르신은 원래 어릴 때부터 소리를 곧잘 했고 장구, 꽹과리 등도 잘 다루었다고 한다. 타고난 예술가의 끼가 있었던 것이다. 소리꾼이 되려고도 생각했지만, 그것만 해서 먹고살 수가 없으니 전업 예술가는 포기하셨다고 한다. 옛날에는 예술가라면 오히려 천대받던 때라 그런 대접을 받을 바엔 농사를 짓고 조용히 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소리꾼이 되기를 포기하셨다고 한다.
"근데 사람이 자기 끼를 숨기고 사는 것만큼 힘든 게 없더라고, 사당패 놀음이나 농번기 농악패들을 볼 때면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지. 사당패 따라 집을 나가기도 몇 번이나 했었어. 가족들 얼굴이 자꾸 떠올라 다시 돌아오고, 또 나가고... 반복하다가 결국은 다 포기하고 가족들 곁에 남기로 했지"
"그런데도 농악과 소리를 잊지 않고 계속하셨다니 재능이 대단하셨나 봐요"
한 개인의 타고난 재능과 끼가 오롯이 농악의 전통을 잇게 한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아. 농사일은 워낙 힘이 드는 일이라 늘 노동요를 흥얼거리게 되지. 그래야 힘든 것도 잊고 일에 속도도 붙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소리를 좋아하고 흥이 넘치는 사람들인 것 같아.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흥을 내려놓지를 않아. 가장 바쁜 모내는 철에도 농악패들이 온 동네를 돌며 사람들에게 기운을 올려주잖아, 바쁜데 왜 이리 정신없는 풍물패를 하냐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 살기 힘들고 팍팍해도 소리 내서 노래하고 풍물소리에 어깨춤도 추고 그러면서 힘든 고비를 넘어가는 사람들이야. 그래서 나도 그 덕분에 소리를 놓지 못하고 계속하게 된 거 같아"
고덕구 어르신은 농악패 활동하시던 사진들을 여러 장 꺼내서 보여주셨다.
너른 논밭에서 십여 명의 농악패가 북, 장구, 꽹과리, 징을 둘러메고 색색이 고운 고깔을 쓰고 풍물놀이를 하는 사진들이었다. 생동감 넘치는 사진 너머로 꽹과리 소리가 실제로 경쾌하게 귓가를 울리는 느낌을 주었다.
풍물패 주변에서 동네 사람들이 들썩들썩 어깨춤을 추며 놀이에 신나게 동참하고 있었다.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도 저렇게 밝은 표정들을 하고 있다니,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말간 웃음을 웃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우리 지역의 신명 나는 농악의 명맥이 이어지는 걸 이렇게 알아주시는 양반들도 있고 뿌듯하구먼"
"선생님, 하고 싶은 게 따로 있었는데 처음엔 포기하신 거잖아요, 선생님을 지탱해 주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 처음엔 일만 하는 게, 사람 사는 것 같지 않더란 말이지. 이 시골바닥이 지옥 같았지. 그땐 다 원망스럽기만 하고 그랬는데 농악을 알고 장구를 치면서 이 농사짓는 이곳이 내 삶의 진짜 터전이구나, 이 터전이 없으면 내 장구는 내 소리는 얼마나 공허했을까 하고, 나중에 알게 됐어. 사당패 따라 소리만 할 때보다 나는 이 터전에서 더 자유롭게 장구를 치고 소리를 할 수 있었어. 일터에서 일도 하고 좋아하는 소리도, 농악패도 하고... 여기 터전을 떠나려고만 하던 때보다 여기 발이 굳건하니까 이게 더 사람답게 사는 거라는 걸 알게 됐지"
일과 놀이... 삶이 뿌리내린 들에서 신명 나게 놀듯 고된 노동을 놀이로 풀어낼 줄 아는 자유로운 사람들. 그래서 저런 표정이 나오는 걸까.
명진아가 요청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어르신은 '소리를 한 자락 해보겠다'고 했다. 사진의 사람들 생각에 빠져있던 명진아는 어르신이 뽑아내는 소리 첫마디에 깜짝 놀랐다.
마치 최고의 오디오 시설이 갖춰진 콘서트홀에서 듣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의 울림이 엄청난 소리였다. 인간의 목소리가 이런 울림을 낸다는 것이 사실인가.
어르신의 70 평생이 한 소절 한 소절에 녹아있다는 게 느껴졌다.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던 명진아는 어르신의 소리가 이어질수록 서서히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명진아는 당황스러웠다.
한적한 시골 어느 작은 방에서 이런 하늘이 내린듯한 목소리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연주되고 있다니... 명진아는 황송한 마음으로 어르신의 절절한 소리에 몰입했다. 소리에 집중한 어르신은 자신의 켜켜이 쌓인 인생을 펼쳐 보이는 듯했다.
인생의 회한과 상처회복의 과정이 소리에 고스란히 배어 있는 느낌이었다. '정말 삶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구나, 예술은 지금 어르신의 삶 속에 있구나, 자유로운 영혼 위에서 삶은 저렇게 반짝이는구나...'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려 어르신은 얼마나 오랜 세월을 노력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을까.
고덕구 어르신의 소리와 삶 뒤에는 그를 떠받쳐주는 사람들의 온기가 함께 있었다. 함께 하는 연대의 느낌이 소리보다 장구보다 어르신을 지탱해 주었을 것이다.
예술보다 삶을, 개인보다 함께하는 연대를 선택한 고덕구 어르신의 삶을 생각했다. 울림이 큰 그의 소리 안에 자신을 갈무리해 낸 삶을 생각했다.
오후의 노곤한 햇살이 다 넘어가기 전에 마을을 나섰다. 어르신이 경운기에 명진아를 태워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해 준덕에 수월하게 마을을 나왔다.
아무도 없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서 버스창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마을과 논밭들을 바라보았다. 생명이라고는 모두 땅속으로 숨어든 초겨울 들녘에 덩실덩실 농악무를 추며 신명난 놀이를 하는 풍물패가 환상인 듯 나타났다. 저물녘 들판이 어느새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따뜻함으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