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방식 <3>

맘에 들지 않아도

by 목하

3.


최종합격한 기자들이 박편집장에 의해 뽑힌 건 맞지만 그들이 다 박편집장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경력직으로 지원한 안정식은 무언가 신경을 건드렸다. 신입보다 경력이 3년이나 더 되는데도 어딘가 안정감을 주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의 첫인상부터 박편집장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정식은 첫날 사무실에 들어설 때부터 냉소적이면서 비협조적인 인상을 풍겼다. 외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꽤 값비싸 보이는 롱 바바리코트에 명품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헤어와 피부상태가 방금 미용실에서 풀세팅을 마치고 나온 새신랑처럼 미끈했다. 도저히 잡지사에서 팔방으로 다니면서 업무를 할 사람의 용모가 아니었다.

'저거 뭐야, 흐이구'

안정식은 첫날부터 편집장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




안정식은 새로 입사하기로 한 잡지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출근을 해, 말아!'

첫날부터 갈등하다 일단 사무실 구경이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사람은 첫인상이 90프로는 먹고 들어간다는 게 안정식의 평소 신조였다.

'첫날부터 쉽게 보이면 안 되지, 때깔 좋게 하고 가서 한 번에 제압해 버리는 거지'

뭘 제압하겠다는 건지 안정식은 입술을 앙다물며 온몸에 향수샤워를 했다.


안정식은 두 군데 잡지사 기자생활과 사보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이곳에 지원했다. 이 바닥은 벌써 3년 정도 버텨냈다. 여느 남성과는 다른 섬세함과 감성적 글쓰기로 인정받아온 안정식은 학창 시절부터 시인이 되고싶은 꿈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크고 작은 시문학 공모전에서 꾸준히 입상한 경력이 있었고 언론사와 각종 문예지의 신춘문예 공모에도 열심히 응모했다. 신춘문예 당선은 상금도 상금이지만,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하는 공식적인 루트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해마다 치열한 경쟁자들에 섞여 작품을 응모해 왔다. 그러나 신춘문예 당선을 통한 등단의 관문이 아주 좁다는 것만 해마다 절감하면서, 안정식은 학창시절 처음 시를 읽으며 두근대던 자신을 서서히 잃어갔다. 차가운 자기 비하로 가득한 가슴은 따뜻한 시를 더 이상 써낼 수 없었다.


순수문학만 고집한다는 주위의 은근한 눈칫밥과 핀잔으로 안정식은 현실의 밥벌이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친구가 그랬다.

"야 인마, 다들 그렇게 살아,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내가 벌어먹고 살아야 되면 꿈은 접고 사는 거지."

너무 억울해 말고 보통사람들처럼 살라는 친구의 말이 전혀 위안되지 않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야 되는 건 맞았다.


그렇게 시작한 잡지사와 사보에 글을 쓰는 일은 몇 해가 지나도 안정식에게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지역 잡지사의 불안정한 생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을 증명하듯이 계속 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 자신이 못마땅했다.


섬세했던 성격도 냉소적으로 변해갔고 준비중이던 시집도 중단한 지 꽤 되었다. 이제 곧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가정을 꾸리는건 사치였고, 생활비라도 벌려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데 이 업계의 일이라는 게 해가 갈수록 자신의 감성을 갉아먹고 밑바닥을 보게 하는 일 같이 느껴졌다. 안정식은 길을 잃었다고 느꼈지만 계속 같은 자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첫 번째 편집회의가 끝나고 박편집장에게 할당받은 기사 꼭지들을 들여다보던 안정식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이 정도는 한 시간이면 뚝딱 쓰고도 남는 기사 같지도 않은 허접한 글이라고 생각된 데다가, 그것보다 이런 내용의 기사에 자신의 고급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쳇, 이따위 기사를 써야 하다니.. 젠장... 지금이라도 못한다고 할까..'

고민하며 옆자리를 둘러보다가 열심히 뭔가를 끄적이고 있는 명진아를 발견했다. 딱 봐도 신참티가 줄줄 나고 어리숙해 보이는 명진아는 아까 회의 때도 편집장이 지시하는 대로 열심히 받아 적고 있었다.


편집장이 자기 일에 집중하고 있는 걸 확인하고 안정식은 명진아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명기자, 잡지 일 처음이라 했지?"

"아, 네"

"처음이라니까 알려주는 건데... 너무 열심히는 하지 마."

"네?"

"이쪽 일이 그래. 너무 사람 진을 빼는 일이야. 기운만 쪼옥 빨아먹고 충전은 각자 알아서 해야 되거든. 요령껏만 해. 최선을 다하는 거, 그거 정말 비추천한다"


어려 보인다고 첫날부터 말을 놓던 안정식은 명진아에게 선심 쓰듯이 조언을 늘어놓았다.

"그런가요, 전 잘 모르니까 일단 열심히 해야죠, 뭐."

"뭐 그럼 한번 겪어보던지... 나중에 힘들면 말해"

"감사합니다"

의외로 고집스러운 대꾸를 하는 명진아를 바라보다가 '말 안 통하는 애네'하는 표정으로 맞은편 정기자를 쳐다보았다.


사진기자인 정기자는 책상 위에 카메라와 부속품을 주욱 늘어놓고 부지런히 닦고 있었다.

정기자는 사진을 전공하고 자신의 몸처럼 아끼는 카메라를 둘러메고 사진 출사 다니는 것을 즐겼다. 시간이 날 때마다 맘에 드는 장면을 담기 위해 다양한 장소에 출사를 다니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 카메라는 그에게 현실의 답답함을 견디게 해 주고 렌즈를 통해 새로운 출구를 보여주는 해방구이기도 했다.

정기자가 포착하는 세상의 순간들은 모두 현실보다 따뜻한 감정이 덧씌워져 있었다. 정기자의 긍정적이고 활기 있는 모습이 그대로 사진에 담기는 듯했다. 작은 잡지사지만 정기자는 자신만의 해석이 담긴 사진 결과물들로 잡지를 채워보고 싶다는 기대감으로 지원했다.


안정식은 성격이 둥글둥글해 보이는 정기자에게 말을 걸었다.

"정기자는 어디서 일했어?"

"다른 지역에서요, 작은 잡지사에서 근무했었어요. 아직 미혼이기도 하다 보니까 지역을 옮겨오게 됐네요. 이쪽 지역은 첨이긴 한데 첫인상은 아주 좋습니다"

"얼마 안 된 사람들은 참 긍정적이라 좋구나. 계속 좋으면 좋겠네.. 정기자, 내 기사 사진들 잘 부탁할게"

이쪽도 말이 통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에 안정식은 몸을 돌리며 말을 짧게 마쳤다.


"편집장님, 여기 괜찮을까요? 내용이 참신하지도 않은데 광고가 들어 올려나 모르겠네. 뭐 좀 눈에 띄는 내용을 많이 넣어야 될 텐데.. 너무 구닥다리야.. 벌써부터 걱정되네요"

존대와 반말을 섞어가며 안정식이 편집장에게 멋모르는 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


그런 걱정을 편집장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잡지의 발행의도는 발행인이 이미 정해놓았고 거기서 다른 방향으로 바꿀 수는 없으니 그 내용 안에서 편집장의 의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개인 사업장 같은 잡지사에서 편집장의 기획의도나 방향은 의미가 없었다. 잡지의 방향성과 취재기자의 열정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편집장은 기자들에게 그 시작점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박편집장이 모르진 않았다.


박편집장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선망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사무적인 말투로 업무지시와 지적만 했다. 그 젊은 기자들이 자신에게서 어떤 희망의 메시지도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덤덤하게 상사로서의 역할만 다했다. 그들에게 부정적인 말을 늘어놓지는 않지만, 어설프게 긍정적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모두들 이곳에서 허우적대지 말고 눈치껏 빨리 더 크고 넓은 곳에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안기자, 일단 정해진 거니 그 방향으로 가보자고. 조금씩 변화를 줄수도 있겠지. 원고마감이나 잘 지켜"

"허 참, 이건 저한테 일도 아니죠. 그런 건 걱정을 마세요"

잡지사의 방향성을 무시하는 듯한 안정식의 태도가 마땅치 않았지만 이해되는 면도 있었다.

박편집장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자, 편집회의에서 결정된 대로 일단 우리는 첫 호를 만들어보자고. 각자 할당된 기사들 마감은 잘 지켜주길 바라고 1차 원고 마감날은 일주일 후 라는 거 잊지 말아. 부지런히들 뛰어야 돼."

keyword
이전 02화살아가는 방식<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