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1.
잡지사는 지극히 평범했다.
평범하다는 말 이외에 표현할 수식어가 마땅하지 않은 그저 그런 지방 잡지사였다.
이 지역에서는 중심도시라고 하지만, 서울에 대부분 모여 있는 주요 잡지사들을 생각하면 이 지방도시에서 잡지사가 제대로 운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나마 잡지사는 유동인구가 많은 시내의 상가 2층, 꽤 넓은 자리에 터를 잡았다.
잡지사의 발행인은 이 도시의 유지임이 분명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는 잡지사와 기자들을 거둘 수가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서울에서 발행되는 알려진 잡지를 볼 뿐이었다.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 발행한다고 해서 애향심을 가지고 그 잡지를 돈 들여 읽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런 잡지를 다달이 만들어 낸다는 건, 무엇도 담을 수 없는 깨진 항아리에 물을 꼬박꼬박 들이붓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잡지에 광고업체의 홍보기사와 광고면을 많이 할애해야 그 광고 수입으로 사무실 월세와 기자들 월급과 책 인쇄비를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방의 이름 없는 잡지에 돈을 들여 광고를 싣겠다는 사람이 많지 않겠다는 것은 누구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발행인은 자신의 부의 원천인 이 지역에 애정이 남다른 듯했다. 적어도 그렇게 보이고 싶은 의도가 강하게 느껴졌다. 지역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은근 알부자들이 많으며, 그중엔 돈을 싸 짊어지고만 있는 촌부들이 많으니 그들을 잘 끌어들인다면 이 잡지사업도 그렇게 나쁘진 않겠다 생각했을 것이었다. 어쩐지 대박 날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상상까지 들었을지도 모른다.
초기 자금만 자신이 댄다면 뒷작업은 그에게 월급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와서 그럴듯하게 잡지를 만들어줄 것이고, 어쩌면 생각보다 그럴싸한 잡지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긍정회로를 돌렸을지도.
명진아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함과 동시에 편집스쿨을 다니면서 언론출판인이 되고자 꿈을 키워왔다. 이번 잡지사 기자 모집공고에 그녀는 눈이 번쩍 뜨였다.
일단 뭐든지 저지르고 보는 성격인 명진아는 며칠만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잡지사에서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꿈꿔오던 기자가 된다는 생각에 들뜨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를 먹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인의 추천으로 신문사 조사실에서 1년여 일했다. 전국 주요 일간지들을 기사의 주제별로 스크랩하고 분류 보관하는 업무였다. 기사별로, 사진별로, 주제별로 묶어내야 하니 그 자료의 방대함이 엄청났다. 몇 년 지난 것들은 전자책으로 묶어내긴 하지만, 매일매일 쏟아지는 전국의 기사들을 빠짐없이 스크랩하는 일은 끝이 없었다.
조사실은 직원들 간에 오붓하고 가족같이 일하는 분위기였다. 안정적인 월급에다가 개인적 사정이 아니면 중간에 그만둘 일이 없는 좋은 근무조건의 직장이었다.
그렇게 안정적인 것이 명진아에게는 무료하게 느껴졌다. 직원들과 즐거운 시간도 좋았지만 좀 더 활동적인 직장을 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 생겼다. 그래서 퇴근 후에는 하고 싶었던 일을 배우러 다녔다.
처음부터 기자를 꿈꾸었던 건 아니었다. 책자를 편집하고 발행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매일 자료실 퇴근 후 편집스쿨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마침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이 지역 내에서 언론계통의 마당발이셨다. 그 사실은 선생님의 추천으로 방송국 다큐작가로 들어가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첫날부터 명진아에게 방송국은 활력이 넘치는 곳, 아니 정신을 차리기 힘든 곳이었다.
사회경험이 적은 명진아에게 대형 방송국의 빡빡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은 설명만 들어도 뜨악한 느낌이었다.
신참이고 수습기간이 있다고 하지만 말뿐이지 사정을 봐주는 게 없었다. 노동의 강도는 똑같아 보였다. 새끼작가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그녀 말고도 줄사탕처럼 많았다.
TV화면에 맞춰서 원고작업을 한번 테스트해 보고 쓸만하다 싶으면 바로 현장투입해서 방송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날 밤 퇴근도 못하고 PD가 할당해 준 원고 초안작업을 12시까지 하다가 명진아는 빠른 판단을 내렸다.
'이건 내가 감당할 일이 아닌 거 같은데',
'이건 정말 아닌 거 맞잖아'
선배 작가에게 말하고 그가 안내해 주는 방송국 쪽문으로 나와 야간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거대한 방송국 시스템의 수레바퀴 안에 들어가 보기도 전에, 단 하루 만에 지레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섰다.
글솜씨가 좋다며 명진아를 방송국에 추천해 주신 선생님 뵐 낯이 없어 며칠을 두문불출하고, 죄송하다는 전화 한 통만 남기고 그 뒤로 연락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이야말로 그 무렵 그녀에게 유일한 사회적 지원군이었던 것을 그때 그녀는 몰랐다. 알았다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선생님이라는 동아줄을 절대 놓치지 않았을 텐데.
인생은 단 한 번의 기회를 던져주고 재촉하다가 '네가 선택했잖아' 하고 매정하게 뒤돌아 가버리는 것이었다. 어차피 인생이란 게 그 기회를 잡아도, 놓쳐도 매번 후회의 연속인 것은 아닐까. 그러니 기왕이면 기회는 일단 잡고 봐야 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은 명진아였다.
인생의 기회를 스스로 박차고 나온 멍청한 자신이 싫어 이불을 뒤집어썼다 걷어찼다를 반복하던 그 무렵에 잡지사 창간 공고를 보았다. 기자 경력이 없어 걱정하며 지원했다가 뜻밖에 합격통보를 받고 그녀는 자기소개서의 글이 통했나 보다 하고 자신의 글발을 칭찬하며 한숨 돌렸다.
잡지사는 위치도 꽤 번화한 지역인 데다가 사무실도 오래되지 않은 번듯한 외관이었다. 잡지 실무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었던 명진아에게 그 외부적인 조건들이 먼저 눈에 들면서 마음에 들었다.
명진아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기대감과 다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마음을 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