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일기] 비상약을 두 번이나 먹다

2024년 1월17일 (2)

by 봄부신 날

[공황장애 일기] 비상약을 두 번이나 먹다


2024년 1월17일 (2)


어제는 무기력함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은 정말 이상했다. 책 읽기도 싫고 텔레비전 보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무작정 잠이 오는 것도 아니었다. 오전은 잠을 잤으나 하루종일 잠을 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무력감이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후가 되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자 이렇게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억지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억지로 설거지를 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왔다. 설거지를 할 때마다 말없이 묵묵히 설거지를 나보다 더 많이 하는 아내에게 참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지만, 생색내지 않고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크고 존경을 받아 마땅한 일인지. 이제 설거지는 집에 있는 내가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설거지를 할 때마다 허리에 통증을 느낀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숨을 쉬어야겠다. 밖으로 나가야겠다.

나는 무기력을 떨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숨을 쉬기 위해서 바깥을 선택했다.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아파트 아래 도로 건너편 마트를 갔다 오기로 했다. 샴푸가 마침 딱 떨어졌다고 했던 터였다. 나는 천천히 우산을 들고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중간에 신호등이 있어 쉬어가기에 맞춤했다. 마트 안에서도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걸었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힘들었지만 첫 시도였고 성공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무기력감을 떨치고 일어났다는 것만으로는 스스로에게 칭찬하기 충분한 일이었다. 하지만 급히 비상약을 먹고 잠시 누워 호흡을 골라야 했다.


수요일 저녁이었다.

수요예배가 있는 날이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고 있다. 작은 개척교회인 우리 교회에는 이런 날 나와 아내가 가지 않으면 목사님과 사모님만 앉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얼마나 상심하실까, 하는 생각에 감기에 걸려 골골거리는 아내에게 얼른 가자고 부추겼다. 아내는 오늘 내가 힘든 상태였다는 걸 알기에 포기하고 있었다고 했다.


사실 비도 오고, 오늘 힘들게 걷기도 했고 해서 나는 아내만 내려주고 가능하면 그냥 차 안에서 기다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아내를 교회 앞에 내려주고 주차가 가능한 아래로 내려갔다. 다행히 쉽게 주차를 했다.


아무래도 예배당이 너무 썰렁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용기를 냈다. 우산까지 들고, 어깨에 가방을 매고 차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갔다. 빨리 바뀌는 신호등은 언제나 긴장된다. 천천히 걷는 나는 줄어드는 숫자 앞에서 안간 힘을 쓴다. 몇 번이나 쉬었는지 모른다. 팔순 넘으신 어머니와 함께 길을 걸을 때처럼, 몇 걸음 걷고 쉬고, 몇 걸음 걷고 쉬고 하며 교회로 가는 언덕길을 올라갔다. 결국 언덕 꼭대기에 다다랐다. 거기에 교회가 있다. 그 다음은 다른 길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이다.


예배당 문을 열자 강단에서 목사님은 기타를 치고 있었고 아내 혼자 앉아서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사모님도 독감이 걸려 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비상약을 꺼내 물과 함께 삼켰다.


아내와 목사님이 찬양을 부르는 동안에도, 성경 말씀을 읽고 목사님이 설교 말씀을 전하는 중에도 나는 계속 호흡을 고르며 들숨과 날숨을 이어갔다. 성경책을 보다 목사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들면 순간적으로 어지럼증으로 멍해지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겨우 안정을 되찾았을 땐 거의 설교가 끝나가고 있었다. 목사님께서는 다시 개인적으로 간절하게 나를 위해 기도해주셨다. 비는 계속 내렸고 날씨는 차가웠다.


내려가는 길은 이상하게 편안했다. 비상약을 먹고 걷는 길이라 그런지 몰라도 내려갈 때는 올라올 때처럼 그렇게 가슴 압박과 과호흡이 생기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걸어서 그런 것일까.


어제는 그렇게 오후와 저녁에 비상약을 먹었다. 약을 먹기 시작한 뒤로 하루에 두 번의 비상약을 먹기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비와 함께 시작된 무기력은 저녁에는 많이 사라졌다. 아내와 오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비가 오면 아무래도 우울감이 커지는 모양이라고.

사람은 날씨에도 영향을 참 많이 받는 모양이라고.

내일은 햇살이 가득 해서 우울감이 모두 사라지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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