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일기) 비상약을 안 먹고 지나갔다

2024년 1월19일

by 봄부신 날

[공황장애 일기] 비상약을 안 먹고 지나갔다

2024년 1월19일


다음 달에 이사를 하기로 했다.

우리 가족에겐 지금의 집이 진짜 집이었다. 그동안 우리집은 아내의 공부방으로 인해 늘 경제적인 활동을 하는 공간이었다. 아이들도 나도 거실에서 수업하는 아이들을 피해 각자의 방에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숨을 죽였고, 어떨 땐 밥도 도둑처럼 웅크린 채 책상에서 간단하게 해결해야 했다.


2년 전 이사한 이번 집은 새 집이었고, 대단지 아파트여서 지금까지 맛볼 수 없었던 진정한 집, 주거지로서의 만족을 최대한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2년 만에 이사를 결정했다. 내게 공황을 안겨 준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 직장이었다면, 두 번째로 큰 요인이 대출 이자였다.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오기 위해 이전 오래된 아파트에서 화장실 공사와 섀시 공사를 했다. 물론 대출을 받아 했는데 그 대출금을 아직 갚아 나가고 있었고,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를 오는데 약간의 돈을 더 대출 받았었다. 그리 큰 금액은 아니었는데, 금리가 오르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고금리를 저금리로 전환대출 해준다는 정부의 홍보에 얼른 신청을 했다가 겨우 1%의 금리를 낮추면서 5년 만에 갚아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래서 기존에 내던 월 이자가 원금과 합쳐지면서 5배로 커져 버렸다.


나는 매달 급여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대출금의 압박에 늘 시달렸다. 언제나 마이너스였다. 그래서 나에게 공황장애가 찾아오면서 이 기회에 전세로 이사를 가고 남는 금액으로 대출을 갚아버리자고 한 것이다.


그래서 포장이사 견적을 받았는데, 25평 이사를 하는데 거의 400만원에 가까운 금액이 나왔다. 상위 브랜드와 중간 브랜드를 했는데 거의 차이가 없었다.


거실 한쪽 벽면을 꽉 채운 책이 문제였다. 아내와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경악스러운 이 이사 비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지혜를 찾지 못했다.



나 역시 충격을 받았고, 이 참에 책을 다 없애버려야겠다. 책은 계산에 넣지 말고 죽을 힘으로 나 혼자 다 옮겨야겠다, 같은 이성을 잃은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어제 오늘 이틀 동안 이사 견적을 받으면서 내 마음은 신경질적으로 변했고, 가슴의 답답함도 커져갔다. 빚을 갚으려고 이사를 하는데, 이사 비용과 복비를 합치면 이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너무 예상을 못했던 가격이라, 나는 계속 우울해져갔다. 가격을 전해들은 아내도 한동안 충격 속에 카톡 답을 하지 못했다.


한참 뒤에 답이 왔다.

우리 마음을 비우자.


그래. 우리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모든 물가가 올랐고, 사다리차 비용도 20퍼센트 이상 올랐다며, 하필 입학 시기에 가장 이사 비용이 비싸지는 때에 이사를 한다며 견적을 내주는 분들도 안타까워했다.


답답함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야겠다. 오늘은 한 번도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았다. 5분 아니 1분이라도 바깥 바람을 쐬야 할 것만 같았다.


외부 기온이 9도로 표시되어 따뜻하겠거니 했는데 바람이 차다. 하늘은 검은 구름이 내 마음처럼 커다랗게 뭉쳐진 채 내 시야를 가로 막았다. 오늘은 온통 모든 것이 이렇구나.




나는 어디까지 어떻게 걸을까를 생각하기보다 이사비용에 대한 생각 때문에 그냥 정처없이 걸었다. 그리고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은 구름을 찍었다. 그러자 구름 사이에서 태양이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강렬한 햇빛은 역시 죽지 않았다. 구름이 밀려나면서 햇빛이 더 강하게 밀어붙이자 따스한 햇살이 내 몸을 감싸안았다. 바람이 세게 불면서 구름이 밀려갔는지 파란 햇살이 나타났다. 얼마 전 창가에서 나무에 오랫동안 앉아서 나무를 쪼던 직박구리가 떠올랐다. 여기 나무에 뭐가 있지? 하면서 보니 말라 비틀어졌지만 작은 열매가 여기저기에 매달려 있었다.


아, 죽은 것 같지만 생명을 살리는 열매가 있었구나. 죽은 겨울 나무에 매달려 있는 작은 열매가 여러 생명체들의 젖줄이구나. 그 뒤로 파란 하늘과 흰구름이 내게도 뭔가를 말하는 듯했다.



나는 사진을 찍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찬 나의 산책은 과호흡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약간의 불안정한 호흡이 있었지만 비상약을 먹을 만큼 크지는 않았다.


처음이었다. 나는 얼굴을 씻고 침대에 누워 잠시 호흡을 고르며 내 생각을 다른 곳에 빼앗기기 위해 텔레비전을 켰지만 비상약을 먹지는 않았다.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어제처럼 2천보를 걸었지만 심한 과호흡도 없었고, 비상약도 먹지 않았다. 지난 주 이번 주 합쳐서 아침 저녁으로 먹는 고정 약 외에 비상약을 7번이나 먹었는데, 이번 주 끝 금요일 걷기에서는 비상약을 안 먹었다.


오늘 밤 금요기도회에 갈 때도 왠지 비상약을 안 먹어도 되지 않을 것만 같다. 이사 비용 때문에 엉망이 된 내 마음은 비상약을 먹지 않은 것으로 인해 다시 좋아지고 있다. 마지막까지 계속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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